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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30. 2020

위대하고 사소한 발견을 하다

이사일지 16일 차

이사일지 15일 차_나뭇잎이 알려 준다 (brunch.co.kr)





이사일지 16일 차_위대하고 사소한 발견을 하다


    

계절의 순리가 너를 잊게 한다. 이곳 계절이 주는 산책의 묘미도 너를 잊게 한다. 나 다음으로 601호, 너를 깊이 생각하던 아버지마저 너를 잊는 중이다.  


    

“히야. 내가 방금 위대한 발견을 하나 하고 왔다~~!”     


오랫동안 운행을 하지 않고 주차장에 서 있기만 한 차를 돌보려 아버지가 밖을 나섰다. 차의 배터리 방전을 염려해 시동을 걸어 볼 겸 차를 다른 곳으로 주차하러 가셨던 아버지. 사실 내 아버지는 손자들에게 이런 이미지였다.     

“이모는 걱정 스타일, 할무니는 요리 스타일, 하부지는 밖에 보는 스타일!”     


뭐만 하려 하면 나는 우리 어린 조카들에게 ‘조심해, 조심해.’였고 하부지는 늘 601호 베란다 밖을 내다보는 게 일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사색과 ‘멍 때림’ 사이를 반복하던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새로 이사 온 곳에서도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으시더니, 지금 막 위대한 발견을 했다며 우리에게 자랑하신다. 


이유인즉슨 아파트와 통하는 나무 계단이 있어 저것이 무엇인고, 하며 그곳에 올라가 봤더니 글쎄 아주 아주 너른 동산이 펼쳐져 있더란다. 봄이면 꽃이 만개해 아주 장관일 곳이란다. 게다가 이곳에서 공원과 이어지는 산책로와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더란다. 

     

“이 집은, 건강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곳이구먼유!”     

나의 맞장구 리액션에 아부지가 호쾌하게 웃으시며 ‘아주 대단한 산책로’가 있는 곳이라며, 새 집을 치켜세운다. 


웬만하면, 혹은 어떻게 해서든 601호를 떠나지 않는 쪽으로 생의 가닥을 잡으려던 아버지였다. 오래 살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책 두 권도 집필하셨던 아버지셨다.(ISBN 이 없는 비공식 책 한 권과 ISBN이 있는 공식적인 책 한 권을 출간하셨다.) 


"생각해 봐라. 우리가 여기(601호)에서 참 무탈했다. 너도 나도 여기 있는 동안 책 한 권쯤 내 보았고, 네 동생이 시집갔고, 또 우리 귀한 쌍둥이 손자들이 태어났다. 아픈 사람 없었고 어려움도 잘 헤쳐왔다."


이렇게 601호를 추억하시던 아버지에게서 601호, 너를 ‘잊고 있는’ 소리를, 오늘 처음으로 들었다.    


 

어쩌면 철쭉이 피는 계절이 올 때쯤, 우리 가족은 아마 너를 생각보다 쉽게 보낼 수 있을 듯하다. 

모든 것은 생각보다 참 쉽다.



(표지 출처 @Markus Win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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