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_네? 지옥의 원인을 분석해 봤냐고요?

퇴린이의 슬기로운 지옥탐구생활

by 봄책장봄먼지

허둥지둥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황급히 문을 닫았다. 2018년은 나에게 그랬다.


“넌 참, 나약해 빠졌구나.”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대도 상관없었다.



“네가 좀 더 '일'이란 것을 잘 알게 되면 그 사람도 너를 무시하지는 못할 거야. 조금만 더 일을 하다 보면...”

그런데 그 ‘조금만 더’조차 숨이 막혔다. 난 만류하던 주변인들의 귀한 조언조차 견디지 못했다.



빠져나오기 급급하여, 구석구석 내가 남겨 놓았던 마음들을 미처 다 챙겨 나오지 못했다.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두고 나왔다. 사실 그 좋은 사람들이 나의 원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 있음이 어쩐지 좀 슬펐지만 그건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내 동료가 나를 좋은 사람에서 나쁜 사람으로 뒤바꾼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시선의 결에 따라 한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었다가 급작스럽게 다른 시선에 휘둘리며 ‘몹쓸 사람’이 된다. 그러니 나는 깨달아야 한다.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었겠지. 일을 못하는 내가 답답하고 싫었겠지. 이렇게 깨우쳐야만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 이젠 그 h선생이 너에게 왜 그랬는지 원인은 분석해 봤어?”

그제, 아침밥을 먹다 말고 아버지의 질문 하나로 내 밥공기 속 밥알들이 갑자기 모래 알갱이들이 된다.



“뭔 분석이요? 뭐, 분석했으니까 퇴사일기라는 책까지 만들고 있는 거긴 하겠죠.”

난 조금은 가시가 돋는 억양으로 문장을 끝낸다. 그전까지 우리의 밥상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사람이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고, 누가 나에게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거, 그거 정말 힘든 거라고, 사실 나 그 마음 잘 안다고 말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아버지의 질문 하나로 다른 사람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시답고 아픈 내 이야기로 둔갑한다. 아무렇지 않게 그 동료의 이름을 먼저 꺼낸 건 사실 나다. 그러나 내가 극복하려고, 내가 잊어 보려고 상처를 꺼내는 건 괜찮다. 하지만 타인이 내 상처를 들추고 까 보는 것은 어쩐지 좀 아직도 아프다. 대답이 곱게 안 나간다. 괜히 심사가 뒤틀려 퉁명스러운 문장을 기어이 만들어 내고 만다. (어쩌면 잘못은 그 선생이나 내가 했을 텐데 나는 지금 애꿎은 아버지를 뾰족하게 탓한다.)



내 마음 상태는 약해 빠진 관계로 ‘아직도’의 상태이다. 그러나 주변의 온도는 다르다. 그 감정, 써먹을 대로 많이 써먹었으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란다. 그도 그럴 것이 반년이 넘어 1년이 다 되어 가는 퇴사 이야기다. 가족들에게는 그저 해프닝일 터였다. 그 감정과 그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다는 것에 가족들은 혀를 찰지 모른다. 하지만 지옥 해프닝은 나에게 차원이 좀 다른 문제였다.



지옥의 원인을 분석해 봤냐고요?


지옥을 요리조리 뜯어봐야 내 부족을 깨닫고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다는 아버지의 성장지향의 논리가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아픈 일을 겪었으면 그것에서 교훈을 얻고 마땅히 더 나은 나로 나아가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 아버지. 내가 왜 지옥에 있어야 했는지, 그 지옥의 냄새가 어떠했고, 어떤 고행의 장치가 나를 괴롭혔는지, 나는 어떤 과오로 그 나락에 떨어져야 했는지 처절히 깨닫고 과거의 나를 깨트려야만 그 지옥을 두 번 다시 경험하지 않는 건가요? 정말 그런 건가요, 아버지?


극복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 극복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극기훈련 중이다. 이 극기훈련에는 나만 들리는 BGM(배경음악)이 있는데, 가사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람과 갈등이 있다고 회사까지 저버린 것을 두고 스스로 벌을 내리는 1절의 가사, 그리고 내가 너, 이렇게 경제적 압박과 심리작 풍파에 시달릴 줄 알았다고, 꼴좋다며 비꼬는 2절의 가사. 후렴구에는 자책과 후회와 원망의 목소리가 가득 나오는 가사.


난 지금 '간주 점프'도 못 한다. 내 손안에는 리모컨도 버튼도 없다. 이 배경음악은 고스란히 본방송이므로 나는 이 지옥의 BGM을 끝까지 들어야만 한다. 퇴사 후 나의 삶을 조롱하듯 연민하듯 내 일상 곳곳에 울려 퍼지던 이 BGM을, 퇴사의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내내 틀어 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점점 소리가 잦아들고 이 음악이 끝난 것 같은데도 주변은 계속 어둡다.

왜지? 뭐지? 무슨 일일지?



회사지옥을 나오니 퇴사지옥. 아, 이곳은 퇴사지옥이로구나.



안타깝게도 지옥 다음은 천국이라는 순번이 아니었다. 빠져나올 때는 내가 있던 곳이 지옥인 줄 알았는데 빠져나오고 나니,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문들이 어째 죄다 천국으로 위장한 지옥문들 뿐이다. 그저 또 세상에 속으며 날 속이며 다음 문을 열 수밖에 없는 걸까.



그래. 아직도 난 멀었다. 이미 어른의 나이지만 어른이 되려면 멀었고 애어른이 되는 것도 이번 생엔 어렵겠다. 어른이 아닌 자는 다음 단계의 지옥문을 열 자격도 없을 테니까.



-월급 넣었다. 한 달이 참 빨리 간다, 그치?

겨우 글자 다듬는 소심한 능력 하나로 이제는 이런 문자를 받긴 한다. 책편집 일감이 생겨 아르바이트 정도는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내 지난 백수의 시절을 다 상쇄할 수는 없다. 풀칠도 다행이지만 정말 풀칠만 하고 카드 회사나 텔레콤 회사가 싹 다 가져가 버린다. 백수 시절 동안 천근만근 늘어난 내 짐들은 어디서부터 청소를 해야 할까. 제로에서 시작하고 싶은데 내 감정의 빚도 내 생활의 빚도 제로라는 출발선 앞에선 당당하지 못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지옥의 원인은 대체 어디 숨어 있을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내 뇌에 있을까,

그깟 무시와 멸시와 가시를 참지 못해 눈물이나 흘리던 내 가슴에게 죄가 있을까?



그저 어딘가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올 뿐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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