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그(?)에게서 연락이 오다

by 봄책장봄먼지

이게 무슨 일일까? 헤어진 그에게서 난데없이 우편이 도착했다. 내게 미련이라도 남았던 걸까? 1년이나 지난 일인데?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다 흐릿해지는 지금 이 시국에?



◯◯◯ 선생님, 안녕하세요.

(주)◯◯◯◯ 조◯◯입니다.


2020년에 ◯◯◯◯원에서 발주한 ◯◯◯ ◯◯교육프로그램 운영 위탁 사업을 수주한 업체입니다.

기억을 하고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올해에도 ◯◯◯◯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을 하는데,

선생님들께 강의를 부탁드리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예전에는 상주하면서 운영과 강의를 같이 진행을 했었는데요,

올해에는 운영인력을 따로 두고, 수업이 있을 때만 강의를 진행하는 형식으로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혹시 프리랜서로 활동하시면서 ◯◯ 교육프로그램 강의를 진행해 주실 수 있는지요?


보수는 주강사: ◯◯0,000원, 보조강사: ◯0,000원입니다.

시간은 90분 수업입니다.

메일 확인하시면 회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헤어진 직장에서 난데없이 1년 2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메일 제목은,


◯◯◯◯원 ◯◯◯ ◯◯ 강의 요청 - ㈜◯◯◯랩



그냥 씹을까?

읽고 씹을까?


읽씹과 안읽씹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버리더라도 확인을 하고 버리라는 친구의 충고를 상기하며 메일을 열었다. 두근거렸다. 그를 다시 만날지 안 만날지 아직 성급한 결정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뭐라고 유혹하는지 말이나 들어 보자는 심정이었다. 듣고 나서 'bye'를 외쳐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혹시 프리랜서로 활동하시면서 ◯◯ 교육프로그램 강의를 진행해 주실 수 있는지요?


새로운 방식의 구애였다. 조건이 나쁘지 않다. 매일 나가지 않아도 된다. 주강사를 할지, 보조강사를 할지 내가 먼저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보릿고개 시기에, '돈'을 준단다.

그, 그런데.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메일을 찬찬히 다시 읽으니 그 문제가 가장 커다란 문제 덩어리로 보인다.



선생님들께 강의를 부탁드리고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선생님들께 강의를 부탁드리고자 연락을

선생님들께

선생님들

선생님들

들들들들



'선생님들'이라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선생님이 아니고 선생님들. 선생님'들'이라, 선생님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들'이 있다. 나 말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 나보다 훨씬 이 일에 이골이 난 자.



'답장'이라는 글자를 누르려다 말려다 한참을 모니터 화면만 쳐다본다. 그리고 '돌고 돌아 퇴사일기'를 쓰는 퇴사자답지 않게 다시 '입사'를 한다, 라니 이건 뭔가 말이 안 되고 좀 웃긴 것 같다. (그러나 마냥 또 웃을 수 만도 없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버는 일이 요즘 너무 힘겹긴 하다.)



나,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돌고 돌아 입사를 해야 하는 걸까?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돌퇴>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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