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지, 미쳤어

[돌고 돌아 퇴사일기]

by 봄책장봄먼지

근근이 산다.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산다. 띄엄띄엄 편집자 일을 하며 글자를 고치고 문장을 다듬고 목차를 작성한다. 쥐뿔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도 이 역량을 넓게 봐 주신 분이 있어 소규모 출판사에서 자칭 ‘인디 편집자’로 일을 한다. (‘본격 편집자’라고 할 수는 없고 자유롭게 편집 일을 하므로 스스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게다가 몸 편히 재택근무. 참고로 출판사 대표님은 지방에 계시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편치 않다. 아직 자리를 잡은 출판사는 아니어서 내 임무가 막강하다. 문제는 아직 능력이 막강하지 않다는 것. 출판의 과정도 잘 몰라 출판편집학교라는 교육과정을 들으며, 가나다라의 ‘가’부터 다시 쓴다. 열 살 넘게 어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젊음과 편집을 한 번에 흡수하며 한여름을 보냈다. (흡수는 했는데 소화가 다 안 되어서인지 아직 ‘어버버 버버버’하며 버벅거린다.)


그래도 요즘 편집 일을 하기는 한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교정도 하고 교열도 보고 윤문도 한다. 글을 요리조리 배치해 보고 소제목을 즐겁게 고민한다. 어설픈 인디자인 실력이지만 내지와 표지를 대강 만들어 보기도 한다. 시간은 오래 걸린다. 아마추어 편집자에게 프로의 길이란 멀고도 험하다.

부끄럽지만 명함도 새겼다. 이름 앞에 편집자라고 써 두기도 했다. 아직은 내 명함, 누군가에게 내밀기는 쑥스럽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도망간 상태이고 아직 내가 인정할 만한 편집자 반열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주변에 ‘나 편집 일 해.’라고는 알려 놓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편집자로서 걸음마 수준이다 보니 아직 벌이는 살벌하다. 예전에 벌던 것의 1/4 수준이고, 부모님 용돈은 아예 제쳐 둔다. 나 먹고살기도 빠듯하여 절로 불효녀가 됐다. (퇴사 전 고민하고 두려워했던 나의 예언들이 놀라우리만치 딱 들어맞는다. 돗자리 깔아야겠다.)



원래 불안정한 게 삶이라지만 ‘퇴사’라는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이건 그냥 벌판도 아니고 아주 시베리아 한복판이다. (시베리아는 안 가 봤지만 안 가도 알 것 같다. 얼어 죽기 딱 좋을 정도의 추위 아닐까?) 두세 달 동안 달콤한 퇴직금을 맛본 뒤로 내 앞에 줄줄이 인생 고지서들이 나를 기다린다.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나’라는 다 큰 자식이 떡하니 들러붙어 있다. 그 자식은 먹기도 많이 먹고 게으르기는 이루 말할 것도 없으며, 겁도 없이 카드를 쓰고 백수 주제에 경제관념도 희박하다. 이런 자식을 먹여 살리려니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하다. (아오. 이눔, 잡히기만 해 봐라.) 나 하나 먹여 살리는 일이 이리 엄청난 일인 줄, 나는 퇴사 전엔 정말이지 ‘너무’ 몰랐다. (그렇게 자주 백수였는데도 백수가 될 때마다 다시 화들짝 놀란다.)



저는 행복을 선택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 일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땡땡 복지관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 (……) 최근에는 국어를 연구하는 곳에서 (……)


가끔은 위와 같은 글을 쓴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단박에 가늠하기는 힘든 글. 사람들은 이러한 글을 아마 ‘자소설’이라 부른다지? 초등학교, 중학교 학부모여야 할 나이에 다시 초등학생이 된 기분으로 이곳저곳에 자기소개를 하고 다닌다. 인디 편집자로 밥 벌어먹기에는 아직 좀 많이 부족하다. 이력서를 ‘새로고침’하며 알바의 세계를 뒤적인다.



미쳤지, 미쳤어.


그 좋은 직장을 놔두고 내가 왜 나왔을까. 후회라는 녀석은 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나를 원망한다. 이 책에서 나는 ‘되돌아갈 정도로 옛 직장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라고 콧방귀를 뀐 적이 있다. 미쳤지, 미쳤어. 어디든 마구 쑤셔 넣어도 모자랄 수준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인데 콧방귀는 왜 뀐 거지?



물론 편집자로서 발판을 제대로 마련해 보려고 바동거리기는 한다. 아직은 그 ‘바동’이 너무 위태해서 다른 어떤 줄이라도 마구 잡아 얼른 이 ‘바동’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래, 난 만만히 봤다. 나오면 길이 뚫릴 줄 알았다. 아니 뚫리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어디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막돼먹은 심정이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꼴좋다, 퇴사자여.



아니, 그 선생은 자기도 관둔다는 이야기를 미리 했어야지, 왜 안 한 거야? 너보다 먼저 말했으면 네가 안 관뒀을 거 아니야?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내가 관두고 갑작스럽게 이틀 만에 상대가 관뒀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도 나와 동시에 백수가 된 것이다. 그녀와 나. 백수라는 운명만은 같았던 것일까? 주변인들의 말을 토대로 내 심정을 유추해 본다. 나, 상대가 만일 나보다 먼저 관뒀다면 그곳을 빠져나오지 않았을까?


응. 그랬을 것 같다. 만일 그 사람이 관뒀다면 나는 그 직장을 그대로 쭉 다녔을 것 같다. 거의 2시간 거리이긴 했어도 일은 할 만했고, 하다 보면 더 익숙해졌을 것 같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천천히 더 노력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럼 정말 나, 괜히 관둔 걸까?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나?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 직장을 그냥 다닐 정도로?



응. 그런 것 같다. 그 사람이 관두지 않았다면 뭐 그냥저냥 그곳에 내 발을 묶어 뒀을 것 같다. 월급을 제때 딱딱 받으며 지금보다는 넉넉하게 지냈으리라. 가만가만,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럼 그 한 사람 때문에 내 퇴사가 좌지우지되었다는 소리야? 그건 어쩐지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결론 같다. 아니, 아니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바보인 건 맞지만 혹시 그만큼 내가 그 한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헐. 그럼 나, 정말 많이 아팠겠네.


너 같이 잘 참는 애가 퇴사한다고 했을 정도면 너 정말 참을 수 없이 힘들었던 거잖아.


처음엔 관두지 말라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사실을 깨달았다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네가 얼마나 힘들면 퇴사라는 생각까지 했을까? 나는 친구의 그 말을 듣고 집에서 또 ‘바보’처럼 울어 댔다. (‘바보처럼’은 아니다. 원래 난 좀 바보니까.)


회사는 다니고 싶지만, 퇴사는 하고 싶어. 딱 나의 심정이 이랬다. 나를 힘들게 했던 동료가 없는 회사라면 계속 다니고는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회사라면 퇴사는 꼭 하고 싶었다.


미쳤지, 미쳤어. 사람들이 고작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던 나를 보고 쯧쯧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럼 나도 이렇게 그들에게 말하련다. 미쳤어, 미쳤어. 그렇게 힘들어 놓고 대체 6개월은 왜 버틴 거야? 그냥 더 빨리 관두지. 할 일은 왜 마무리하고 나온 거야? 미쳤지, 미쳤어.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주눅’이나 ‘무시’를 연장해 가며 그 사람과 나란히 딱 붙어 앉아 있었던 거지? 미쳤군, 미쳤어. 진작 도망쳤어야지.


도망치는 것도 사실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그저 용기를 조금 냈을 뿐이다. 나에게 퇴사는 일탈도 객기도 아니다. 겨우겨우 쥐어짜 낸 용기 한 줌이다. 그 한 줌을 상대의 면전에 던지지 못하고 공손히 얹어 준 것이 억울할 뿐, 이제 더는 ‘미친 듯한’ 억울함 따위는 없다.


미쳤군, 미쳤어.

나는 누군가가 억지로 퇴사를 참는다면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그러다 병든다. 그러다 미친다. (아, 그런데 단! 만일 그가 돈 때문에 참는다고 한다면 미쳤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돈 때문에 참는 일은 세상 제일 숭고한 ‘참을성’이 필요하다.)


돈 때문에 참아야 하는 퇴사. 이는 나에게도 해당한다. 참아야만 하는 이 세상의 모든 퇴사 이야기, 혹은 참을 수가 없는 이 세상의 모든 퇴사 이야기. 그 모든 퇴사의 이유들에 각기 다른 박수를 골고루 보내고 싶다. 내 박수가 예비 퇴사자나 퇴사자들에게 아무런 힘도 되지 않겠지만, 나는 그들이 퇴사에 이르기까지 고심하고 고민했을 그 지리멸렬한 과정들에 미칠 듯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애썼어요. 이제 결정해도 돼요.

보류든 퇴사든 죄책감 가지지 맙시다.



어차피 후회하거든요.

(내가 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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