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묶고 다녀라,
에서 더운데 좀 잘라라, 로 발전한 성화가 있다. 가족들의 그 성화는 불같이 타올랐고, 나는 그 성화를 들고도 몇 개월을 더 버텼다. 직장을 다니기 전 어깨를 살짝 넘는 길이였던 내 머리는 두 번의 다듬기 커트를 지나쳐 오면서도 결코 긴 머리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그 성화를 들고서 ‘성화봉송’이라도 하듯 나는 내 머리를 아끼고 아끼며 계속해서 달아났다. 나에게는 ‘머리발’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여름이 되었다. 나는 7월의 마지막 날까지도 한창 버티는 중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버틴다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외모인가? 때 아닌 자아성찰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목덜미에는 늘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조선시대 도령이 되어 갔고, 머리를 빗을 때마다 빗살이 툭툭 끊어지곤 했다. 입사하며 샀던 그 빗이었다. 입사 전처럼 내 머리는 자꾸 엉켰다. 마침내 나는 때가 왔음을 느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미용실 원장님이 묻는다. 아, 잘라 주세요. 조금 묶을 수 있을 정도로만요.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살짝 떨린다. 사실 등뼈를 덮는 아주 긴 머리였다. 미용실로 향하는 걸음걸음 중에도 나는 갈등을 했다. 지난 1년 8개월을 거의 동고동락해 온 내 동료였다. 때로 엉키고 때로 뒤틀리고 때로는 질끈 묶어 버렸다. 이따금 내 외모를 돋보이게, 는 아니고 가려 주었고, 겨울이면 내 목을 감싸는 목도리로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고만 그 녀석을,
“잘라 주세요.”
라고 말하고 만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다. 싹둑. 내 1년 8개월은 뭉텅 잘려 나간다. 원장님의 가위질 소리가 생각보다 너무 경쾌하다. 나는 내 세월이 동강 나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가위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석석’ 거리는 소리가 어쩐지 잠을 부른다.
그냥 두면 썩는다고 흘려보내라 했던 종교 지도자의 쓴소리가 문득 떠오른다. 그 말을 듣고도 고백성사실에서 끝내 ‘잘 썩힐 테다’라고 반항을 하고 나온 내가 어렴풋이 보인다.
“피해자 마인드에서 벗어나세요.”
퇴사 전 6개월 동안 동영상을 참 많이도 찾아봤다. 정말 퇴사를 해야 하는지, 퇴사를 하면 정말 삶이 끝장이라도 나는지 궁금해서 먼저 퇴사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때로는 달콤한 조언이었고 때로는 씁쓸한 고언이었다. 그 와중에 명상이나 치유를 이야기하는 채널들도 있었다. 평소에는 별 관심이 없던 동영상들이었지만 마음이 마음인지라 처음 본 사람들이 전해 주는 조언이나 위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러다 오늘 ‘정〇 마인〇풀 tv’라는 채널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습관’이라는 제목을 클릭해 봤다. 거기서 말한다.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 자신을 위해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라고.
나는 그동안 나만 억울하고 나만 슬펐고 나만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해자 마인드에서 벗어나라’는 동영상을 보면서, 그리고 이 퇴사일기를 쭉 써 오면서 세상 어디에도 ‘왜 나만’이라는 말은 통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뿐 아니라 너도 억울했고 너도 꽤 괴로웠고 너 역시 잃은 이야기가 있었을 터였다. 나도 아끼던 직장을 떠났고 너도 네 역사의 일부였던 직장을 내던졌다. 너나 나나 새로운 생 앞에 다시 1부터, 아니 0부터 시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너도 ‘인간’이라는 종자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을 테고, 그 6개월 동안 사람을 미워하며, 또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나만큼 너도 곤혹스러운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머리 감으실게요.”
(속으로 ‘감으실게요’가 아니라, ‘감으세요’라고 해야 하는데요, 라는 생각을 하며) 그새 감았던 눈을 도로 뜬다. 그러고는 머리 감는 곳으로 이동하여 동네 미용실 원장님께 내 머리를 맡기려고 벌러덩 드러눕는다. 물이 축축이 내 머릿결을 적시고 엉켰던 내 과거도 수돗물에 술술 빠져나간다. 흘려보내지 않고 그냥 두면 썩는다던 고백성사실 너머의, 그 신의 대리자가 또다시 떠오른다.
“이제 시원하시겠어요!”
나보다 더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원장님이 웃는다. 거울 속에 있는 웬 낯선 여인네도 긴 단발의 머리를 하고서 나를 보며 웃는다.
“이제 머리 엉킬 일은 없겠어요!”
내 머리를 보고 하시는 말씀인지, 내 인간관계, 혹은 직장생활을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제 내 삶, 더는 엉킬 일은 없으리라. ‘너도나도 엉켰던 그 소용돌이’는 점점 더 고운 빗질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미용실을 나선다. 빗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내 삶은 이제 30g쯤 가볍다. 아니 1.8년치만큼 더 가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