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나와 M의 인연은 단 한 번뿐이었다. 두 번까지는 필요 없는 인연이었다.
지나가는 내 인사에도 메마르고 까칠한 고개를 빳빳이 들던 사람. 내가 오답을 말하면 끝까지 정답을 감추고 교묘히 나를 조련하던 사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6개월을 넘게 고민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어떤 느낌표도 찾지 못한 채 물음표투성이였다. 나는 대체 얼마큼 부족한 인간이었기에 그녀, M을 만났던 것일까. 아니 M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스스로를 쉬이 모진 사람으로 만들어 버려야 했던 것일까. 단지 나라는 동료가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전에 썼던 글, '돌고 돌아 퇴사일기'에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긴 했지만 그것은 나에 관한 변명에 가까웠다. 나는 아직 한 꺼풀의 이야기조차 제대로 벗겨 내지 못한다. M의 이야기를 하려거든 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고 나의 그 이야기에는 다소 주눅 든 말투와 소심하게 굽은 어깨, 자신감 없이 흔들리는 내 눈빛 따위가 고통스러운 양념처럼 반드시 첨가되어야만 한다. 나는 사실 M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던 직장 동료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퇴사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니 ‘우리’라고 말할 수 있던 사이였을 때만 허락되는 그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좀 걷다 들어갈까요?’와 같은 말을 나누며 회사 근처를 배회하듯 걸었다. 가끔은 얕은 산을 타기도 했는데 M은 느리게 따라오는 내 발걸음을, 나는 슬리퍼를 신고 산에 오르는 M의 발뒤꿈치를 걱정했다. 그때는 걱정이 통하던 사이였고 그 좁은 통로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서로를 ‘동료’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왜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러던 M은 점차 다른 말투와 전에 보지 못하던 눈빛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전면에 나서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자신이어야만 하고, 달랑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합을 맞추어야 하는 업무의 구조 속에서 나라는 철딱서니는 그녀에게 어수룩하고 별 도움도 안 되는 존재임이 기어이 들통이 난 것이다. 나도 분투하며 M의 수준까지 오르려고 그 나름 애를 쓰고 머리와 마음을 있는 힘껏 굴렸으나 M은 만족하지 않았다.
“제가 하는 게 선생님 눈에는 아직 부족해 보이는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다시 '내 주눅'을 꺼내 들었을 때,)
“왜 제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을 잘하기 위한 기준에 맞추자는 건데 왜 선생님은 사람을 이상하게 몰고 가요?”
(M의 대답은 위와 같았다.)
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진 정확한 착지 지점을, 나는 퇴사자가 되고서도 여전히 찾지 못한다. 다만 내가 그녀에게 기대는 것도 그녀가 나를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1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인 나 같은 동료를 성내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기엔, 그녀의 인내도 바닥을 향했고 나의 억지스러운 노력도 곧 곤두박질을 쳐야 했다.
내 기억으로는, 태어나 거의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많이' 미워했다. 코 앞에 들이대는 미움은 여간 견디기 메스꺼운 일이 아니었다. 단둘이 밥을 먹으면서도 단 한 마디를 나누지 않았다. 단둘이 수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눈 맞춤 없이 서로 다른 곳만 쳐다봤다. 내가 둔하게 일을 처리할 때마다 M이 내뱉던 가시는 나를 구석으로 몰고 또 몰았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을 문다 했지만 나는 쥐만도 못했다. 한 번도 성내 보지 못한 채 뭉개진 발톱으로 제 살만 파먹었다. 기어이 나는 M에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해요. 오늘부터 점심은 따로 먹을게요.”
그 마지막 점심으로부터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M 역시 바싹 나를 뒤따라, 나와 같은 처지인 퇴사자가 되었다. M의 인생도 나의 인생도 예상과 다른 시나리오로 다음 장을 넘기고 있었다. M의 소식을 멀리서 들었을 때 문득 우리의 관계가 그 회사에서 영원히 퇴사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만나면 딱 한 번쯤은 나도 묻고 싶다. 왜 우리는 그때 서로를 그렇게나 미워했는지, 왜 서로를 그토록 비난해야만 했는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던 그녀, M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못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나를 후미진 구석에서 혼자 울게 했던 M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웃으며 다정하게 일을 하고 있을까. 나 빼고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다정했던, 아니 처음에는 나에게도 매우 예의가 발랐던 M은 지금 어디서 어떤 사람으로 이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
어쩌면 내게 그녀는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진흙투성이 인연의 고리를 제대로 끊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더 만나서 '허심탄회'를 나눠 보아야 할 사람, 오해와 억울이 뒤섞인 그 육 개월의 구덩이를 함께 파고 또 파 봐야 할 사람...
M은 내게 '두 번쯤 다시 만나 이유를 묻고 싶은 사람'이자, 동시에...
여전히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절대, 네버, 결단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과장님, 혹시 강사 제안 메일, 누구누구한테 보내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선생님이랑 M선생님, 그리고 K선생님이요."
'MMMMMMMMMMMMMMMMMMMMMMM......'
'그럼 그 선생님들은 이 일을 하신,, 다고 하셨나요?"
(그렇다고 하면, 제가 어제 보낸 메일은 도로 거둬 들일 거거든요.)
"아, K선생님은 지금 임신 중이셔서 못 하신다고 했고요, M선생님은 메일을 확인도 안 하셨어요."
'확인도, 확인조차도 안 했구나.'
이것으로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은 다음으로, 혹은 다음 생으로 미뤄질 예정이다.
미룰 수 있다면 그 인연,
가능한 한 영원쯤으로 미뤄도 좋겠다.
웬만해서는...
두 번 만나 좋을 인연이란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