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숭한 환대 뒤 가려진 너의 그림자

[돌고 돌아 재입사]

by 봄책장봄먼지

"정말 선생님이 와 주셔서 너~~어어무 너무 다행이에요!"

"진짜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메일을 딱 주셔 가지고! 아, 진짜 귀인 만났어요, 귀인."




봄땡땡 선생님, 안녕하세요.


메일 회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질문을 해 주셔서 더욱 감사드리고요,


당연히 궁금하신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래 보내 주신 메일에 답변을 달아 보내 드립니다.

혹시 추가 질문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에게서 받은 메일에는 '감사'라는 낱말이 세 번이나 등장했고, 게다가 '감사'를 꾸미는 말로는 '정말' 혹은 '더욱'과 같이 감정을 더 꾹 눌러 전하는 부사까지 등장했다. 여기서부터 직감했다. 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구나.



메일을 주고받은 후, 첫 상견례 자리. 익숙하던 2층 중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웬일인지 연구관님도, 그리고 용역업체 소속의 과장님도 나라는 사람을 심히 반기신다. 나는 그들에게 웃어 보인다. 그러나 곧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이러면 조짐이 좋지 않다. 누군가 내 앞에서 융숭해지면 일단 의심을 하고 봐야 한다. 나의 역사는 내게 그렇게 가르쳤다. 나는 과거를 잊지 않는 자다.





2013년.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 살금살금 다가와 내 넓적다리를 물어뜯고 내 숨통을 끊어 버리려는 자. 먹이사슬이 제대로 움직여야 생태계가 교란되지 않는다고 믿는 자. 순한 양이나 멍 때리던 토끼 한 마리가 그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당연한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자.


여성장애인가정폭력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 원장님이, 아니 원장이라는 여자가, 아주 말도 못 하게 나를, 아니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일하고 있던 동료 셋을 가리키는 것뿐 아니라, 여기서 탈출해 나간 전 직장 동료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는 숙직을 하면서 옛 동료와도 회식을 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만나자마자 '어이쿠 애쓰십니다'로 통했다. 그리고 통성명 후 바로 원장 욕을 안주 삼아 고기를 구웠고 서로의 맥주잔을 부딪쳤다.)


그 여자는 그런 '위대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 의식을, 단합력을, 연대 의식을 강력하게 조장하는 사람이었다.


원장의 얼굴은 육두문자 같을 때도 있었고, 원장의 입은 달콤한 뱀 같을 때도 있었다. 맞춤법을 틀린 내 서류가 갈가리 찢겨 내 얼굴로 날아든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 종이 쪼가리는 속력을 잃고 내 무릎 앞에서 푸시시 떨어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일하는 8개월의 시간 동안 두세 번쯤 점심을 굶었는데, '일을 이따위로 해 놓고 밥 먹을 생각'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굶게 되었다. 조리사 아주머니가 해 놓으신 그때의 우리 밥은, 점점 차갑게 식어만 갔고 반면 내 퇴사 의지는 점점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때 나는 월급을 미끼로 초식동물을 자처했다. 그 누구의 탓도 못 한다. 나는 급했다. 환대에 목말랐다. 1년 가까이 빈손으로 허덕이는 중이었다. 밀어내기만 하는 세상에 둘러싸여 있을 때, 박수를 치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곳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차차 나는 이성을 잃었다. 앞과 뒤를 잘 재지 않고 희희낙락한 표정의 그들에게 기어코 내 생을 던져 버렸다. 그들이 처음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빨리 와서 일했으면 좋겠는데! 괜찮은 사람 같아서 그래요. 숙직은 한 달에 한 번만 하면 돼요."


면접을 보러 간 첫 자리에서 99%의 긍정을 담은 표정으로 친절히 웃어 주던 부원장. (그녀는 원장의 친동생이면서 그 혈연관계를 직원들에게 까맣게 속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직원들 앞에서 쇼를 했다. 직원들이 모두 이 사실을 모를 줄 알았겠지만, 원장과 부원장, 그리고 원장의 사촌동생인 팀장만 빼고 직원들은 모조리 아는 공공연한 '안 비밀'이었다.)


그들이 말한 대로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들이 잡아먹기에 괜찮은 사람, 그리고 데리고 놀기에 딱 적절한 장난감 같은 '괜찮은 사람.' 숙직은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한 주에 세 번까지도 이어졌다. 다른 기관 같으면 숙직을 마친 다음 날은 집으로 퇴근했어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바로 몇 걸음 걸어 숙직실에서 사무실로 곧바로 출근해야만 했다. 당연히 숙직수당 같은 것은 없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늘었고 입에서는 생전 담아 보지 않았던 걸쭉한 욕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환대'에 섣불리 손을 잡지 않으려 한다.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다. 이유 없는 환대는 없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융숭도 없다. 환대를 1회 받았으면 그보다 몇 배는 더 심한 노동 100회쯤을 토해 내야 한다.






"선생님을 엄청 환영하던데요, 연구관님도 그렇고요. 다들 환대 분위기더라고요."


퇴사 전 내가 소속되어 있었던 용역업체의 이사님께서, 회의 후 마련한 카페 티타임 자리에서 웃으며 내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나를 반갑게 맞아 줄수록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계산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 극진히 나를 대접할수록 훗날 내가 겪을 후회의 농도를 가늠하게 된다.



일의 세계에서만큼은 있는 그대로 그들의 진심을 믿기 어렵다.

이것이 내 과거를 다녀간 이들이 내게 가르쳐 준 단 한 가지의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융숭한 환대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 목소리가 필요하다. 나조차 제대로 들어 보지 못한 나의 목소리에 나만의 색을 입혀야 한다.



"저기, 연구관님. 주 강사 주도로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주 강사와 보조 강사를 나누면 학교에서 단체로 체험을 왔을 때 진행이 힘들 수도 있어서요. 저는 주 강사의 강사료가 깎이더라도 주 강사 2인 체제로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똑 부러지게는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말, 하려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돌고 돌아 재입사 상황에 와서까지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를 가리던 그림자,

나의 적이자 스승이었던 그들의 그림자를 밟고 일어서야 할 시간이 왔다.

퇴사의 긴긴밤이 그렇게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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