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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24. 2021

폭망만 면하면 될 줄 알았다

[돌고 돌아 재입사]

오늘 수업.. 어떻게 끝마쳤는지 모르겠다. 기본만 하자, 잘할 필요 없고, 하던 대로만 하자, 폭망만 면하자, 이게 나의 평소 신조였는데...



-선생님, 수업 시작 시간 11시 맞나요? 지금 11시 10분이 넘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이전 수업을 안 끝내시는데요?


오늘은 재택으로 수업을 하는 날이고, 학급 줌 주소로 들어가야 하는 수업이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담임 선생님께서 수업 중이시다. 어제 다른 학교도 그랬다. 그래서 난 별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호스트를 안 넘겨주신다. 아... 나 수업해야 하는데....


수업 신청과 그 외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하시는 운영 인력 선생님께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답이 없으시다. 단체방에도 같은 문자를 남겨 본다. 그러다 수업 시작 시간을 10분 정도 넘기고야 만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 보자. 어제 다른 학교도 8분 있다가 시작했었으니까.'


잠시 후 다행히도 우리 쪽 운영 인력 선생님과 통화가 되었다.

"헉. 봄먼지 선생님, 아직도 안 들어가신 거예요?"


시계를 보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40분 수업인데 말이다. 봄먼지 선생님, 담임 선생님과 채팅도 안 나눠 보신 거예요? 네. 저는 기다리면 끝내실 줄 알았는데 안 끝내시더라고요... 어제처럼 늦게 시작하는 줄로 알고요..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담임 선생님께 채팅 보내려고 쓰고는 있었어요."

통화를 마치고 담임 선생님께 채팅 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저는 ** 강사 봄먼지입니다. 체험 시작 시간을 여쭙고자 연락드렸습니다. 체험 마치는 시간이 12시 20분인데 그러면 2차시만 진행해야 할까요?


담임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고 있는 도중이라 너무 조심스러워서 줌 채팅을 보낼까, 말까.. 수만 번 망설이다 보냈다. 그런데 선생님이 뭔가를 찾으시는지 내 채팅을 안 보고 계신다. 아, 으뜩하나...

나는 운영 인력 선생님께 전화번호를 요청했고 학교 번호를 알아내서 내선으로 해당 학급에 연결했다. 다행히 통화가 되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강사 봄먼지입니다. 오늘 4학년 *반  *** **체험 어떻게 할까요? 11시 시작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 그거 오늘이었어요?"



선.. 선생님....


나는 기다리면 끝내실 줄 알았고, 아까 들어오면서 얼굴 인사도 드렸었기에 내가 들어온 것을 알고 계신 줄 알았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다른 학생이 들어온 줄 알았다고 한다. 내 이름이 문제였다. 내가 줌에 들어간 이름은....


봄책장봄먼지..


아, 줌으로 접속할 때 기관 이름으로 재빨리 고쳤지만 그걸 못 보셨고,(당연히 수업 중이니 못 보셨다.) 미리 구글 계정에서 이름을 바꿔 놓았는데도 내 본명 아니면 이 별명 '봄책장봄먼지'로 들어가게 된다. 처음 설정을 잘못해서 그런가... 아 이 컴맹... 미리 이름을 바꿔 놓았는데도 해당 학급 줌 주소로만 들어가면 나는 그냥 갑자기 봄먼지가 되고 만다..



"왜 지금까지 말씀 안 하셨어요? 저는 기관 이름이 아니고 다른 이름이어서 그냥 저희 반 학생이 들어온 줄 알았어요. 긴 이름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있거든요. 미리 말씀을 하시지."



그래,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체험을 직접 신청한 선생님은 아니니까 모를 수도 있지, 내가 좀 더 일찍 채팅을 드려 볼 것을... 자책과 후회로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이다. 물이라곤 뜨거운 물만 갖다 놓고 긴장할까 봐 오늘 처음으로 내 방에 난방까지 틀고 내 의자엔 온돌 방석까지 꼼꼼히 챙겨 앉았다.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가 없다. 수업을 시작하고, 안녕하세요,라고 세상 희망찬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외쳤지만,


'으... 엄마.. 갑자기 하기 싫어...'



우리 회사 운영인력 선생님은 너무 늦어졌으니 수업 하나만 하라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담임 선생님은 생각이 다르신 듯하다. 그래서 수업 시간을 줄여서 30분씩 2개의 강의로 연달아 진행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그래, 다시 힘을 내자. 해 보자고, 해 보자, 해 보자, 해 보자.(김연경 선수 음성지원)



아.. 그런데 열심히 해 보려는데 이번에는 내 컴퓨터가 먹통이 된다. 채팅 창에 메시지를 쓸 수가 없다. 커서가 망가지고 다른 창으로 이동이 안 된다. 화,, 화면이 움직였다 안 움직였다를 반복한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아... 신이시여...  나는 담임 선생님께 다시 전화를 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컴퓨터가 지금 갑자기 먹통이 되어서 줌에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안 그래도 늦은 수업을 더 늦어지게 만들어 버린다. 호스트를 이미 나에게 넘긴 상태라 내가 다시 담임 선생님께 호스트를 넘긴다. 아, 제발.. 제발... 나는 영혼을 끌어올려 '더 보기'를 누르고 호스트 만들기를 누른다. 된, 다? 됐나? 아.. 됐다.



나는 화면이 안 움직이는 바람에 노트북을 강제로 종료한다. 그리고 다시 강제로 노트북을 켜는데 내가 설정해 놓은 암호... 암호 기입하는 부분에서 또 커서가 말을 안 듣는다. 나는 심호흡을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컨트롤과 A를 눌러 잘못된 암호 부분 점점점점을 지우고 제대로 된 암호를 기입한다. 된.. 된다... 후유.. 진짜 '후유'다....


재빨리 파워포인트 두 개를 열고 줌 주소 파일도 연다. 복사해서 해당 학급의 줌으로 들어간다. 설문조사 링크가 담긴 파일도 열어야 하는데 그건 잠시 후에 생각하자. 이따 잊어버리지만 말자. 자, 시작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저는...!"



일부러 느낌표를 가득 담아 인사한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지는 수업에 지칠 대로 지쳤다. 지친 아이들의 표정이 안쓰럽지만 나도 내 할 일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진도 빼기에 열중한다. 그러다 한참 수업 중일 때 나에게로 채팅 메시지가 도착한다.



"(봄먼지) 선생님, 저(담임 선생님)는 점심 먹으러 갈게요. 마치면 그냥 줌 화면 닫아 주시면 됩니다."



담임 선생님께 채팅이 온다. 메시지를 읽으며 시간을 확인한다. 12시 20분. 남은 수업 시간은 30분이다. 이제 두 번째 수업만 하면 된다. 자, 조금만 더 쥐어짜 보자. 열심히 기운을 짜고 또 짜고 있는데,



"선생님, 저 지금 학원 가야 해요."

한 명이 나한테 자신의 개인 일정을 알린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물꼬를 트며 일정을 공표한다.

"선생님 저도요. 1시에는 나가야 해요."


지금 시각 12시 51분. 50분에 마치기로 했는데 살짝 시간이 경과됐다. 나는 재빨리 마무리를 하고, 1분이면 끝나요!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외친 후 설문조사 주소를 찾는다. 가만,, 그게 어디 있더라.



미리 열어 놓지 않아서 나의 손과 마음은 급해진다. 어서 찾아야 해! 그러나 열고 보니 아까 컴퓨터가 멈췄을 때 링크가 없어졌다. 이럴 수가... 다시 찾아야 한다. 두뇌를 풀로 가동한다. 다른 경로로 들어가자. 어디에 저장해 놓았더라? 그래 슬라이드. 1학기 슬라이드. 그래 그 학교 수업할 때 주소를 저장해 놨었어. 그리로 들어가자.. 어서어서 빨리!



"기다려 주셔서 고마워요. 친구들! 자, 제가 채팅창으로 링크 하나 보냈어요, 바로바로 설문조사 링크입니다~!!"



하.. 끝났다. 끝이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나는 아이들을 하나씩 내보내며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준다. 수고했어요, 누구누구, 고마워요, 누구누구, 잘했어요, 좋은 하루 보내요, 누구누구. 꼭 건강한 하루하루 보내고요 누구누구...



오늘 겪은 계절은 그야말로 가장 등골 오싹한 '우여곡절'의 계절이었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계절은..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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