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해야 할 필요성 98%

[돌고 돌아 재입사]

by 봄책장봄먼지

지금 내가 슬퍼해야 할 필요성 98퍼센트.


안 슬퍼해도 되는 비율이 아직 2퍼센트나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오늘의 슬픔이 98퍼센트로 치솟은 정확한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오늘 하루 만에 나에게서 양 백만 마리가 출몰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아니 사실은 '모르겠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 안에 새드니스sadness가 98퍼센트까지 올라가 버린 이유를 난 안다. 이유는 꽤 정당하다. 방금, 강사 워크숍과 학년별 교안 발표가 있었고 또 한 마리의 양, 혹은 염소가 내 입에서 나타났다. 매애애애애애~~ 음매애애애애. 야아앙앙양~~~ 말끝이 초식동물 울음소리 같이 계속해서 떨렸다. 누구나 눈치챘고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내가 눈치챘다. 이럴 땐 사전에 뭔가 직감이 온다. 아, 나 조금 이따 좀 떨겠구나.


나의 양 같은 혹은 염소 같은 목소리, 미세하게 갈라지고 흩어지는 안쓰러운, 발표불안의 목소리. 이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듯 1년 만에 회귀한 목소리이자, 10년 전 내 일터에서도 겪어 본 딱 그때 그 목소리이다. 공간과 시간과 내 주변 사람들만 다를 뿐 양 한 마리인 나는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 그대로다. 발표를 하겠습니다아아야야앙양~~~~~



워크숍이 모조리 끝나고 강사계약서에 사인을 하는데도 조금 전 그 떨림이 내 손끝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정신줄을 붙잡으며 내 불안을 받아들이자고 손가락에게 당부했다. 괜찮아, 손꾸락아.. 그런데 내가 놀랄 일이 또다시 살며시 벌어졌다. 이번엔 계약서 안에서 그 불안을 목격할 수 있었다. ㄷㄷㄷ 작년에 비해 자문비가 훌쩍 줄어들었다. 그리고 강의 45분에 해당하는 내 강사료가... 흠... 이것도 꽤 줄었구나.


오늘은 발표도 날 떨게 하고 급여도 나를 떨게 한다. 지난해보다 조금 더 늙었고 조금 더 노하우가 늘었을 텐데 왜 나는 지금 저 좁은 페이pay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돌이켜 보니, 업체가 바뀌기 전 엄청난 보너스를 받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옛 회사는 옛정을 생각해서 내게 두둑이 노잣돈을 챙겨 주었던 셈이다. 즉 작별의 예의를 다하려던 거였다. (사람들이 좋으시고 내겐 너무 익숙한 곳이라 많이 아쉬웠다. 안녕히 계세요, 이 이사님, 윤 선생님.)

어쩌면 코로나 시국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남들이 '그래도'를 앞세워 '그래도 다녀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나의 '그래도'는 다르다. 잘하지 못하는 일로 이렇게까지 심장 조여 가며 심폐소생술 하듯 이 일을 이어 나가는 게 과연 맞나 싶다.



-너. 그래도 강의 빼곤 다 잘하잖아~!

평소 엄마의 말이다. 학년별 표준 시나리오를 교과서와 연계해서 작성해 달라는 ○○원 측의. 요구가 있어 작성을 했고, 너무 잘해 주셔 가지고요,라는 소리를 지난번에 듣긴 들었다. (이 칭찬은 내 돈으로 초등중등 교과서, 교사용 지도서, 문제집 들을 사서 나른 대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강사가 강의 빼고 다 잘하다니, 그게 무슨 험한 상황인가.. 반대로 '강의만'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강의만이라도 말이다.


-너 임용고사 빼고 다 잘 보잖아.

이 또한 평소 엄마의 말이다. 교원 임용고사를 그렇게 기를 쓰고 떨어졌는데(여섯 번? 일곱 번? 너무 많이 떨어져서 기억도 안 남.)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나 운전면허는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운이 좋아 단번에 합격했다. (쓰고 보니 자랑 같다. 또 다른 자격증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자. 현재 쓰고 있는 자격증은 하나도 없으니...) 아무튼 난 이런 식이다. 정작 잘해야 하는 건 죽어라~~ 못한다.


물론 오늘의 발표 폭망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오늘의 발표를 망했을 뿐, 내 남은 인생 전체의 발표를 망한 것은 아니니까. (아닌가;;) 그간 이런 일은 한두 번도 아니었으므로 한두 번이 서너 번이 된다 한들 큰일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날 때면 늘 했던 대로, 조금 무너지는 척을 하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 조금 있으면 이 ‘서너 번’이 곧 ‘대여섯 번’이 될 텐데 예방 주사 빵, 맞았다 치자. 실패도 경험이다, 라고 위로하자고.

긴 출퇴근시간이 외려 다행이다. 돌아오는 시간이 짧았다면 내 방구석에서 나는 또다시 슬픔을 곱씹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다시 도진 이 발표불안 증상, 이 지긋지긋한 우울을, 이 긴 퇴근길에 냅다 내다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좌절하고 다시금 회귀하는 이 개미지옥 같은 '발표불안 지옥'.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과 버스의 '교통지옥' 시간이 무려 2시간 반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슬퍼하는 것 자체에 나조차도 고만 지쳐 버린다. 슬픔도 시간의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잠깐, 내가 뭘 위해 슬퍼했지? 가만, 내가 여태 뭐 때문에 슬퍼한 겨?


내 안에서 슬퍼해야 할 필요성 98%와 슬퍼하지 않아도 될 필요성 2%가 아웅다웅 겨룬다.

이 경기의 승패는 대체 어떻게 판가름 날까?

내 슬픔이 이기든 내 기쁨이 이기든 어차피 이기는 편 우리 편이다.


그냥 대충,

오늘은 그냥 2%라도 행복하게 지내 보자.

그게 이기는 거다.



이전 21화이런 용량 초과는 두 팔 벌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