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재입사]
안녕, 나 M이야.
너, 그 직장에 다시 들어갔더라? 그럴 줄 알았어.
내 말은.. 네가 거기밖에 갈 데가 없을 줄 알았다고.
그곳에 아직도 내 친분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너를 봤다는 증언도 종종 들었어.
점심시간 식당에서 널 봤다는 사람이 있었지.
1층 로비에서 너와 인사를 나누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그 강사 제안 메일, 확인도 안 했어. 제목만 봐도 뻔하지. 다시 돌아와 달라는 거 아니야. 난 자존심이 있거든. 그리고 너와 달리 갈 데도 많고. (뭐, 이런 말을 하기엔.. 나도 거기에 한 번 재입사했던 전력이 있긴 하지만.)
1층 그 체험관에, 우리가 출연했던 ebs 방송, 아직도 틀어 놨나? 나는 그게 궁금하더라. 촬영은 하더라도 인터뷰는 죽어도 하기 싫어서 그때 너랑 합의해서 네가 인터뷰를 하고, 내가 다른 문화행사에서 사회를 보기로 했었지. 넌 의외로 얼굴 팔리는 걸 안 무서워하더라? 그거 아니? 아직도 인스타에는 네가 아이들과 뜀뛰기를 하는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어.
아, 그리고 그때 그 K선생은 왜 나에게 너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을까. 너는 K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고는 했지만 네가 무슨 말, 무슨 언질이라고 준 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 용의자는 너뿐이라고. 물론 넌 지금도 끝까지 부인하겠지만.
하긴, 너는 그 일터에서 친한 사람이 하나도 없긴 했었지.
넌 친한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 하나였으니까. 아니, 우리는 친한 건 아니었겠지. 1년 반을 친한 척하다가 그 뒤로 무너져 버린 관계였으니까.
어쩜 나는 이럴까? 나는 파트너 복이 지지리도 없어. 널 보면 알 수 있지. 말도 안 하지, 일도 잘 안 하지, 도무지 무슨 꿍꿍이인지를 알 수가 없어. 워낙 속을 잘 안 드러내는 사람, 그러면서 자기 못난 속은 다 뒤집어 내보였던 사람. 암튼 넌 이상해.
가끔은 생각해. 내 직장 파트너들은 다 왜 똑같은 그 모양으로 퇴사를 했을까. 너는 네 전임자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떠났어. 너도, 이전 그녀(J)도 "선생님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일을 해내지 못하니 선생님이 답답했겠죠."라는 똑같은 말을 내게 했어. 그리고 그 선생도 너도 퇴사 이유는 단 하나였지. 바로 '나'라는 사람. 기가 차네. 사람 하나 때문에 퇴사를 한다는 게 말이 돼?
너의 마지막 퇴사 날에도 당연히 인사는 안 했어. 그전부터 인사는 생략하고 살았던 사이였으니까. 인사가 다 뭐야, 너랑 나 사이에는 앙금만 남았을 뿐이었지. 선한 감정 따위는 찌꺼기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너, 아직까지 이렇게 만든 게 설마 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오, 천만의 말씀. 너의 퇴사, 네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니?
재입사일지 쓰면서 좀 어땠어? 이제야 내 심정을 좀 이해하겠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 많은 어깨들을, 그 버거운 짐들은 너도 이젠 알겠느냐고? 아직은 내 발톱의 때만큼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재입사가 오래오래 지속된다면 아마 넌 나를 이해하고 그때의 '모지란 너'까지도 뉘우칠 수 있겠지.
사실, 나도 지금은 재입사자가 되었어.
아, 물론 나도 너처럼 같은 곳에 또 입사했다는 건 아니야.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재입사자일 수밖에 없잖아. 다시 새로운 곳에 입사하고 또 부딪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모든 과정이 '또다시'의 지루한 과정들이지. 그게 다 '재입사'가 아니고 뭐겠어.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내가 과연 잘 지내고 있을까? 너 같은 사람, 또 안 만났을까? 갈등 없이 지내고 있을까? 예전의 너를 곱씹으며, 너를 욕하며, '예전에 내게 참 이상한 동료 하나가 있었다'라고 떠들어 대고 있을까? 그건 네 상상에 맡기겠어. 알려 주고 싶지 않아. 한마디만 하자면, 뭐, 피곤한 일들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지.
너의 건투를 빌지는 않겠어. 나의 건투를 빌기에도 바쁘거든.
아무튼 그때의 그 우리의 못난 인연은, 거기 그대로 두기로 하자.
다시 돌아가 들추어 보는 것도 시간이 아까우니까.
궁금하지도 않은 너에게 이렇게 긴 글을 쓰다니 이건 왠지 내가 쓴 글 같지가 않네.
뒤늦지만 재입사 축하해.
그 지긋지긋한 곳에 재입사라니, 정말 나로서는 쌤통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축하한다는 거지.)
재입사, 정말 정말 축하해.
(크크크. 재입사라니, 아, 폼 안 나게 재입사가 뭐야, 재입사라니. ㅋㅋㅋ)
(덧: 보내는 이는 나와 갈등이 있던 M, 받는 이는 '나', 그리고 이 상황은 지극히 한 사람(봄먼지)의 개인적인 가정과 상상의 나래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