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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29. 2021

다른 이를 짜증(?) 나게 하는 내 가수

[입덕 2일 차]

오늘은 친구의 생일이다. 단체방에 생일 축하 인사를 가장 먼저 남긴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축하 테이프를 끊은 듯해 괜스레 뿌듯하다.


“고마워.”

자, 친구의 응답이 왔으니 슬슬 작업을 시작해 볼까?


사실 요새 내 가수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마지막 경연을 앞두고 사전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주변에 널리 널리 알려야 하건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심지어 동생에게 부탁하는 일조차 눈치가 보여 관둔다. 일하랴 애들 보랴 바쁜데 내가 거기에 더 보탠다면? 시집 안 간 언니를 쯧쯧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그래도 친구들한테 부탁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온라인 투표 링크를 우선 복사한다. 아, 그전에 노래부터 투척해야지. 나는 이 동네 친구 단체방에서 그 나름 디제이 역할을 맡고 있다. 음악 좋아하는 아이로 몇십 년 전부터 찍힌 상태다. 오늘도 축하 겸 사리사욕도 채울 겸 내 가수의 노래를 던져 놓는다. 지금까지 음원으로 나온 다섯 곡 모두? 아니, 이건 좀 오버겠지? 나는 엄선된 두 곡을 골라 축하 인사 밑에 띄워 놓는다. 내 가수의 경연 영상도 보내고 싶은데 괜찮으려나? 그때 들려오는 소리, 까똑.


"나도 요새 이 프로그램 재밌게 잘 보고 있어."

라고 시작하는 친구의 문자가 얼핏 휴대폰 창으로 보인다. 오호 좋았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친구가 있군. 카톡창을 열고 들어가 보니 생일 당사자인 친구가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본단다. 반가운 마음에 다음 문장을 냅다 읽어 보니…….


“자꾸 딸내미가 ◯◯◯ 보고 △△△ 닮았다고 해서 짜증 나긴 하지만 ㅋㅋ”


하아……. 그랬구나. 


온라인 투표까지 엮어 보려던 나의 계획은 처참히 무너진다. 내 결연한 의지는 뒤꽁무니를 빼며 물러선다. 여기서 ◯◯◯는 내 가수님이고, △△△는 내 친구의 가수님이다. 친구는 △△△ 콘서트에 다녀올 정도로 그분을 응원한다. 물론 나 역시도 그분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가 은근 시적이어서 한때는 밤낮으로 빠져 들은 적도 있다. 좋은 노래를 만드는 분이다. 그, 그렇지만……. 내 가수가 짜증유발자... 라니.


“어케ㅋㅋ 나 ◯◯◯ 광팬인데. 걱정 마. ◯◯◯, △△△ 안 닮았어.”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생일 당사자를 위로(?)하고자 내 마음을 비하하는 말을 기어이 던져 버린다.


“△△△가 더 잘 생겼을지도 모르지. 목소리도 다르고ㅎ”

(물론 속으로는 절대 네버 결코 낫앳올,,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의 호불호는 이렇게 쩍쩍 갈라지는 것 같다.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내 가수도 강요할 수는 없다. 함께 좋아해 주면 좋겠지만 생각의 길이 다르고 마음의 결이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그 여정을 같이 즐겨 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



사전 투표 링크 주소는,,

그렇게 내 휴대폰 속 클립보드로만 남는다.


소심해진 아마추어 오타쿠는 이렇게 험난한 여정에 봉착하고야 만다.

(그나저나 누구를 꼬여서 사전투표를 다시 독려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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