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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05. 2022

이렇게 스토커가 되어 가는 것인가

[입덕 6일 차]

나에게는 나밖에 모르는 나의 '덕질 루틴'이 있다.


     

1. 내 가수의 목소리와 함께 일어나 알람 끄기

'요새 왜 이렇게 벌떡벌떡 잠에서 잘 깨는 걸까?'


2. 오늘의 업무를 체크하기 전에 팬카페 전체 공지를 확인

‘아, 오늘 12시에 내 가수 음원이 나오니 다운로드하고 열심히 재생해야겠군.’     


3. 너튜브를 켜고 내 가수의 이름 세 글자를 입력

‘자, 최근 영상부터 섭렵해 줘야겠지?’     


4. '일하는 척'을 시작하기

‘자, 그럼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 일이란 것을 한번 시작해 볼까? 일을 해야 덕질도 할 수 있는 거니까.’     


5. 20분 일하고 20분 딴짓, 20분 일하고 20분...

‘20분 일하다가 20분 멍, 20분 일하다 20분 멍…. 사람들이 불 보면서 멍 때리기 하는 것을 <불멍>이라 하고, 물 보면서 멍 때리는 것을 <물멍>이라 하던데, 나는 이거 완전 <무멍>이다, 무멍. 무진멍.’     


6. 팬카페는 아예 들어가서 기거할 정도

‘들락날락하기 귀찮으니까 아예 듀얼 모니터에 창을 열어 놓자고.'


7. 저녁쯤 일을 마치고 너튜브 알고리즘에 낚이기

‘너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추천한 영상을 보니 무슨 ○○보컬이라는데 한번 눌러나 보자.’     


8. 내 가수의 과거로 기어들어 가기

‘내 가수가 대입을 위해 연습했다던 입시곡이네? 어? 이건 자작곡이라던 그 곡이군. 어? 이건 뭐지? 무슨 서○예대 입시설명회네?’ 나는 그 학교에 결코 입학할 일이 없으면서 하다 하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서○예대 입시설명회까지 경청한다. 영상 밑 댓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처럼 ◯무◯ 보려고 여기까지 온 사람 손?"

이미 ‘좋아요’가 엄청나게 눌려 있다. 나도 살포시 ‘좋아요’를 누르고 창을 빠져나온다. 

‘여기까지 오다니..  나 이렇게 사생팬, 아니 스토커가 되어 가는 것인가.’     


9. 자기 전 팬카페 글들을 다시 한번 더 확인

누군가가 쓴 글을 보니, 

“심각합니다. 중증이에요. 노래 듣고 영상 보느라 다른 일을 못 해요.”

‘이거 내가 쓴 글 아니야?’ 그와 나는 아마 머잖아 같은 병명을 얻을 듯하다.     


10. 취침 전엔 자장가 영상 하나

‘아, 자야겠다. 잠깐, 영상 하나만 더 보고, 아니 딱 두 개만 더 보고. 아니 이것만, 10분만, 아니 5분만...’    

      


오늘도 이렇게 퍽 유익(?)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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