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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18. 2022

연애 말고 연예

[입덕 8일 차]

공지! 본인 등판!


팬카페 전체 공지란에 느낌표와 횃불 이모티콘이 강렬하게 박힌 '본인 등판'이라는 문장이 반짝거린다.

'본인이 등판한다고? 이건 또 무슨 일이다냐.'


생각지도 않았다. 이렇게 빨리 내 가수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뭐, 물론 직접 만난 것은 아니지만...)


내 가수가 팬카페에 가입을 했다. 다들 ‘본글 사수’를 하자고 눈에 불을 켠다. 이윽고 드디어 내 가수가 카페에 글을 남겼다. 몇 달간 아무 글도 달리지 않았던, 가수님만을 위한 그 공간에 ‘N(new)’ 표시가 뜬다.

너무나 신기하고도 반가운 기분으로 내 가수님의 글을 조심스럽게 누른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는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그 글을 더 밝힐 수야 없지만) 글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멋지기도 하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크게 예상 못 한 채 팬들의 관심과 응원의 힘으로 내 가수는 지금 <제2의 음악 인생>이라는 출발선에 섰다. 평범했던 대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눈빛이 내게 다짜고짜 달려드는 일... 그 시선을 받아들이는 일은 쉬웠을까, 어려웠을까. 처음에 내 가수님은 그 일들이 낯설었다고 고백한다. (다행히 지금은 그 시선들에 고마움으로 화답하는 듯하다.)


그리고 3위가 전~혀 아쉽지 않단다. 주인공을 축하해 주는 자리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듯한 그 유려한 단어들 속에서 내가 너무 앞서서 내 가수를 걱정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우였다. 팬들에겐 매 라운드가 경연이고 경쟁이었지만 그에겐 매 라운드가 공연이었고, 그저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도 이 글에 화답하여 그동안 너무 애썼다는 마음을 내 가수에게 전하고만 싶어진다. 전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그냥 한 사람으로서 다른 한 사람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팬들이 가수에게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는 그 공간에 나도 한번 들어가 본다. (살면서 연예인에게 편지 한 번 보내 본 적이 없는 나인데 말이다.) 쓸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언제든 고민할 때는 일단 해 보는 게 후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 보았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찾아와 주시고 글도 써 주시고 마음도 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중략)


어떤 길을 가시든 중간중간 들르시는 모든 곳에서 ◯◯ 님이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도착한 곳에서 어떤 음악들을 들려주시든 저희는 행복할 겁니다. ◯◯ 님께서 음악 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하셨다면 그걸로 정말 충분합니다. 더는 바라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도 넘치도록 감사하거든요. (가시는 길 어딘가에서 잠깐 헛디디셔도, 조금 돌아서 가야 하시더라도 그 길을 언제나 응원할 겁니다. ´애벌레´와 ´나비´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 님께서는 언제든 나비가 되는 시간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겪어 내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막 리모가 된 저도 안경 없는 채로 아무 편견 없이 ◯◯ 님의 숲과 늪을 마음껏 구경하고 응원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그대로 그저 자랑스러운 아들, 오빠, 제자, 친구로서 조금씩 한 발짝씩 도전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 님에게 맞는 가장 편한 보폭으로 ◯◯ 님의 음악 길을 걸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보세요, 누구 없소."라는 두드림으로 저희 삶에 이렇게 나타나 주셔서, 그리고 저희 마음속 골목길을 이렇게나 환히 비춰 주셔서 다시 한번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 님 등 뒤에서, 조금은 소심히 ◯◯ 님을 응원하는(그러나 사전투표+문자투표에 심히 진심이었던) 리모 팬 한 명 올림-



없는 필력 있는 필력 모두 다 끌어당기고 쏟아붓는다. 전해지든 전해지지 않든 상관없다. 전면에 나서서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뒤에서 조금은 하찮고도 묵묵하게 응원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이 소심한 팬도 있어야 연예계가 잘 굴러가지 않을까? 

모두가 다 방송국 앞에서 줄을 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나는 연애편지 대신 연예인 편지를 쓴다.


그래서,

내 안에는 연애세포 대신 연예인세포만 자꾸자꾸 쏙쏙 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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