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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Sep 07. 2023

출간기획서 꼼꼼히 뜯어 먹기

꼼꼼할수록 긴장한다. 찬찬할수록 더 고개를 모으고 두 눈을 부릅뜬다. 바른 자세로 파일을 열고 이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저자라면 조금 더 신뢰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데 가감이 없다거나 재치 있는 단어로 자기소개를 할 때, 편집자는 한 번 더 그 원고에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이는 다름 아닌 ‘출간 기획서’ 이야기이다.


내가  몸 담았던 출판사는 에세이를 주로 출간한 출판사이지만 투고된 작품들을 보면 그 범위가 다양하다. 교육학에서부터 고전문학, 한문학, 식물학 등을 다룬 원고까지. 또 갈래를 가리지 않고 소설을 투고해 준 분도 계셨다.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분야는 에세이 분야였다. 우리 출판사에 투고된 에세이는 ‘가족 에세이’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여행 에세이’였다. 이 에세이들은 주로 가족이나 여행을 통한 ‘개인의 성장’을 이야기했다. 이 외에 ‘자연’을 다루는 에세이들도 꽤 신선한 느낌으로 검토했던 기억이 있다.


투고된 에세이 원고들을 보면 대개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원고가 많았다. 그러나 그 개별 원고들이 달랐던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출발점에는 ‘출간 기획서’가 있었다. 눈에 그리듯 선명하게 자기 글을 설명하는 원고들은 편집자가 그다음 단계(본문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작업)로 수월히 진입하게끔 장벽을 낮춰 주었다. 그러니 작가도 편집자도 이 ‘출간 기획서’라는 것을 소홀히 다룰 수가 없다. 



초보 편집자 입장에서 작가님들이 출간 기획서에 넣어 주었으면 하는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1. 제목 및 부제

2. 핵심 콘셉트

3. 출간 및 기획 의도

4. 간단한 저자 소개(저자 이름 및 연락처, 주요 이력 외)

5. 책의 개요(압축한 책의 내용)

6. 예상 독자층

7. 원고의 강점

8. 원고의 분량

9. 홍보 방안

10. 원고의 차례

11. 기타 정보 



출판사나 편집자에 따라 취향은 다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주절주절 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는 출간 기획서를 좋아한다. 투고 당시에는 작가님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또 기나긴 원고를 읽기 전에 기획서가 ‘미리 보기’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출간 기획서는 편집자에게 귀하디귀한 자료이다. 묵직한 분량의 원고로 들어가기 직전, 작가님이 원고를 쓴 이유나 창작 배경, 길고 긴 그 개인의 서사 및 사연을 미리 맛보고 싶은 게 편집자의 마음이다.

그러나 ‘주절주절’이라고 해서 되도록 많은 양의 정보를 출간 기획서에 쑤셔 넣으라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자신의 원고를 최대한 친절하게, 그리고 넓고 깊게 포장해 달라는 이야기이다. 자기 홍보의 시대이므로 자신을 최대한 예쁘게 포장하면 좋겠다. 다만 이 출간 기획서가 실제 원고와 괴리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포장지에 들떠 상자를 열었는데 요란한 빈 수레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원고의 진심’이다. 예고편은 거창했는데 정작 알맹이가 없어 시청률이 낮아지는 드라마 사례들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도 ‘출간 기획서’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예고편이 재미없으면 본편까지 갈 용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출판사들은 원고 투고가 쏟아진다고 들었다. 그 사이에서 옥석을 가려내려면 작가도 잘 벼린 ‘출간 기획서 무기’ 하나쯤은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잘 벼리다 보면 두 번째, 세 번째 출간 기획서는 더할 나위 없는 나만의 무기가 된다. 

출간 기획서가 예비 작가님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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