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Sep 02. 2022

편집권을 요청합니다

어떤 글은 인테리어로만 끝나고, 어떤 글은 재건축까지 들어간다.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나는 당당히 외친다. 


작가님, 이 지면에서는 저도 할 말이 좀 있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책을 편집하다 보면 ‘이건 아닌 것 같을 때’가 있다. 작가님 본인의 이미지도 있고 출판사 이미지도 있는데 ‘아닌 것만 같은’ 것을 다 안고 갈 필요는 없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사전에 차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꼭지는 전체 글의 주제와 맥락상 어울리지 않는 부분 같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괜찮으시다면 삭제나 수정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에둘러 메시지를 전하며 작가님의 답변을 조심스럽게 기다린다. 기다림의 결과는 의외로 7:3. ‘7’은 놀랍게도 편집자 쪽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한 수치이다.) 자기 글을 도려내겠다고 하는데 좋아할 작가님이 어디 계시랴. 그러나 많은 작가님이 이러한 요청을 수락해 주었다. (아니, 사실은 처음부터 수락해 주신 셈이다. 출간 계약서를 체결할 때부터 나는 이 부분을 조금 더 확실히 명시한다.) 책을 빛내기 위한 편집자의 고군분투로 여겨 주신 듯하다. 믿어 주시는 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물론 그 책임감은 온전히 활자로 드러나야만 할 것이다.


편집자는 안다. 내 책이 아니다. 결국 작가님의 책이다. 전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작가님뿐이다. 뒤에서 조용히 배경이 되어 드리는 게 편집자의 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책이 나오고 나서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기 전까지 작가님과 함께 이 무대를 휘젓고 다녀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편집자다.


“이 부분은 제가 좀 다듬어도 될까요?”

“이 부분은 좀 덧보태도 될까요? 이런 것을 제안하고 싶어서요.”

“들어가는 글의 분량이 좀 많은 듯합니다. 좀 줄여 주시겠어요?”



문제는 그 판단이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일 때도 있다는 점이다.



안녕하세요, 편집자님.

잠들기 전에 1차 수정 원고를 읽어 보았는데요 편집자님의 의도가 느껴지는데 제 머리가 뒤죽박죽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스타일의 글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정성껏 수정해 주신 흔적이 보여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답변을 드릴게요.



부랴부랴 작가님의 초고를 다시 읽는다. ‘아. 내가 너무 나갔구나.’ 섣불렀던 1교를 취소하고 오탈자나 문법 위주로만 손을 보고 어색한 문장 구조들을 몇 부분 다듬는다. 덜 건드리려 노력해도 종이 위에만 서면 자꾸 내 마음이 앞서 나간다.



작가님. 제가 작가님 글을 더 빛나게 할 생각에 손을 많이 댔나 봐요. 좋은 초고로 이리저리 즐겁게 고민하다 보니 작가님의 처음 의도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편히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작가님께 메시지를 보내 드렸다. 발끝까지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한 사람의 원고를 작업할 때 난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손으로 문장 끝을 다듬는다. 그러나 결국 난 그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다시 말해 편집자는 편집자고 작가는 작가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달(?)’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에 일부러 다가간다. 다가가서 그 선을 내 손으로 직접 들어 올린다. 그때부터는 줄다리기다. 편집자의 선과 작가의 선이 반대편에 마주 선 채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어느 한쪽이 너무 잡아당기기 시작하면 상대는 나동그라진다. 아니, 그러다 자신까지도 앞으로 엎어지고 만다. 편집자와 작가를 지키는 절묘한 무게 중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도 나는 위태위태한 그 줄다리기 앞에서 겨우 숨을 돌린다. 때로는 잡아당기고 때로는 슬슬 손에서 줄을 놓아 보기도 한다. 편집자에게는 낄 때 끼고 빠질 때는 빠지는 타이밍이 중요한 듯하다. 타이밍을 잘 맞춰 편집하다 보면 결국 ‘앞에 세울 사람’이 누구인지, ‘앞에 두어야 할 글’이 어떤 글인지 눈앞이 점점 선명해지는 날이 온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글이,

“가장 나답지 않으면서 가장 당신다운 글쓰기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조금씩 더 ‘편집자’가 될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타의 강을 건너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