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편집자가 어쩌다 작가에게
좋은 글은 오타가 없던데.
이 이야기는 작가님 지인이 작가님께 전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님이 편집자인 나에게 전한 이야기다. 나아가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나무라며 이 지면에 전하는 이야기다.
“○○쪽에 오타가 있더라고요.”
내가 편집한 글에 오타가 남았다. 나는 오타 하나로 작가님의 좋은 글을 망친 셈이 되었다. 공을 들여 쌓은 편집의 탑이 조사(助詞) 하나로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아끼던’
이라고 출간되었어야 할 문장은 ‘내기 아끼던’으로 세상에 나왔다.
내기: 금품을 거는 등 일정한 약속 아래에서 승부를 다툼.
(#표준국어대사전)
내가 말하려던 것은 이 ‘내기’가 아니었다. 명백한 초보 편집자의 실수였다. 내가 집어내지 못했고 세 곳의 맞춤법 검사기도 잡아내지 못했다. 그 검사기 친구들은 ‘내기’를 그저 명사 ‘내기’의 뜻으로만 해석했고, 나처럼 무사안일했다. (딱히 검사기 친구들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물론 아주 부수적인 거름망일 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걸러 주었어야 할 조사이긴 했다.)
편집 당시에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크게 믿었다. 그런데 외려 나를 믿은 게 더 큰 패착이었다. 믿는 도끼에 두 발등이 모조리 찍혔고 도끼 든 편집자의 이 두 손은 급기야 작가님의 발등까지 찍고 말았다.
한 번 오타가 생기고 나니 숲보다는 나무들만 보였다. ‘내기’가 내게 던진 후폭풍은 점점 그 부피를 부풀리고 있었다. 이 단어가 표준어가 확실한가, 또 띄어쓰기에 어긋남은 없는가, 어이없는 조사 실수는 없는가……. 어느새 이런 지엽적인 것들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로 꾸미는 일, 시대가 원하는 소재에 눈독을 들이는 일, 사실 관계에 의거해 내용을 꾸리는 일, 오류가 없는 서사를 이어 가는 일, 가장 돋보이는 제목을 찾는 일 따위는 조금쯤 제쳐 두었다.
주격 조사와 목적격 조사, 부사격 조사, 보격 조사, 서술격 조사 등에 집착했고, 꺼진 불 다시 보듯 꺼진 조사를 다시 들여다보느라 눈이 빨개질 정도였다. 주격 조사 ‘가’가 ‘기’가 된 순간,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깔끔한 마무리를 낳지 못한다. 독자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거품 잔해만 잔뜩 남은 그 책은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좋은 책’이 되지 못한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변명할 시간에 노트북을 켜야 한다. 보고 또 봐야 한다. 그리고 가제본을 해 보고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나의 실수를 찾아내야 한다. 내가 무심코 내려두고 간 실수를, 그들이라도 탐색할 수 있게 가끔은 주변을 채근하고 종용해야 한다. 종이(紙)라는 물성으로 작가님 및 독자님들 손에 놓이기 전까지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만 한다. 앞당겨지는 눈의 노환쯤은 각오해야 한다.
나만 믿어요.
아니다. 나만 믿진 마요!
작가님께 “저만 믿으세요!”라는 말은 안 한다. 작가와 편집자의 발등에 나란히 도끼 자국이 난 채로 절뚝거릴 수야 없지 않은가. 되레 나는 나만 믿지 말고 작가님도 꼼꼼히 확인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함께 오타 탐험 여행을 떠나 달라고 제안해 보는 것이다. 결국 목적은 우리의 ‘책’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책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작가님도 나도 눈을 시뻘겋게 뜨고 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오타의 강을 건너야만 한다.
편집자 혼자 가려 했더니 자꾸 오타가 난다.
책도 인생도 어쩌면 이런 이유들로 오타가 나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는 오타의 강을,
두 손 잡고 같이 건너야 한다.
건너간 그곳에서 ‘좋은 책’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