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원고를 받았다. 대표님과 상의 후 예비 작가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육 관련 콘텐츠였고 예비 학부모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우리 출판사는 고무되었다.
"인세인가, 하는 것은 얼마나 지급해 주시나요?"
일정을 맞춰 우선 한번 만나 보자는 이야기를 전하자마자 바로 예비 작가님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자신의 원고가 얼마를 받을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당연히 궁금한 부분일 터였다. 그래도 조금은 당황했다. 첫 번째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나의 당황은 편견일 수도 있다.) 얼굴을 보며 묻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 그래도 놓치기 아까운 원고라 편집자 입장에서는 언질이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대표님 생각은 또 다르셨다.
아직은 이른 질문이라 판단하셨다. 원고를 앞세우기 전에 인세부터 질문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고 하셨다. 또 출판사 개별 사정이 있으므로 초고를 투고한 작가에게 바로 지급 비율과 액수를 공개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다. 대표님은 우리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 작가가 일단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글을 써 왔는지 그 사람이 살아온 서사를 조금이라도 듣고 나서 일을 진행해도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하셨다. 작가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서로의 첫인상을 다 확인한 후에 계약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인세는 지금 당장은 알려 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직접 만나서 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의논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답장을 보낸 후 다시 올 연락을 기다렸고 그 답은,
"고민을 더 해 보겠습니다."
위와 같았다. 답장은 정말 고민을 담은 답장인 듯했고, 그 고민은 꽤 길어질 모양이었다. 그 뒤로 예비 작가님은 연락이 없으셨다. 아쉬운 원고였지만 앞으로도 ‘아쉬울 원고들’이 우리에게 다시 오리라 믿으며 피어오르던 계약의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편집자의 출장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내 원고를 투고하고서 하루나 이틀 내로 긍정적인 메일이 온다면 일단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다. 내 원고를 알아봐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투고를 하고서 출판사로부터 전화까지 온다면 이것은 더 긍정적인 신호이자 작가인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이 신호가 청신호인지 적신호인지 헷갈린다. 어느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초록 불, 빨간불, 노란불을 잘 분별하며 내 원고를 이 ‘출판계 도로’ 위에 잘 굴릴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 보자면 나도 내가 쓴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투고해 본 적이 있다. 편집자라는 세계로 발을 디디기 이전의 일이다. 투고를 한 당일 모 출판사 대표라며 전화가 왔다.
“편집도 교정도 다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냥 바로 내도 될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당시 난 출근길이었다. 평소 같으면 무력한 심장으로 출근하던 길이었을 텐데 다른 날과 다르게 그날은 나의 심장이 빠르게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대로 내 원고가 날개를 달고 비상을 하게 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다소 낚일 뻔한 셈이었다. 그 전화의 마지막 문장을 이곳에 더 보태자면,
“그래서 말인데, SNS 활동을 많이 안 하는 분인 것 같은데 ○○권 정도는 작가 측에서 사 줘야 할 것 같고…….”
물론 출판사마다 출간 성향이 다르다. 출판사가 전부 기획하고 출간 비용까지 모두 담당하기도 하고, 반(半) 기획, 반(半) 자비출판으로 출간을 하는 출판사도 있다. (자비출판만 하는 곳도 있다.) 이는 순전히 초보 작가의 선택에 달린 것인데 나는 당시 기획출판으로, 개인 비용 없이 출간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 걸려 온 출판사 대표의 전화를 거절했다. 그 뒤로 그곳에서 출간한 다른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교정과 교열 같은 기본적인 것을 해 주지 않아 다소 힘들었다고 한다.
출판사들도 내 원고를 스캔하듯 예비 작가들도 출판사를 스캔하고 검토해 봐야 한다. 내 원고를 알아봐 주었다고 무조건 ‘성은이 망극’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출판사들에 관한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정해 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입사지원서를 내듯 말이다. 회사에 들어갈 때는 연봉 못지않게 통근 거리도 따져 보고 이 회사가 재정이 탄탄한지, 그래서 내 월급을 꼬박 챙겨 줄 수 있는지, 복지는 어떠한지, 그곳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평판은 어떤지도 가늠해 본다.
출간 계약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섬세한 셈법이 필요하다. 회사에 들어가는 것처럼 내 책이 기본 5년간 그 직장에 입사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출판사의 출판할 권리(출판권)는 초판 1쇄 발행일로부터 보통 만 5년인 경우가 많다. (계약 해지 통고가 없으면 이 계약은 자동으로 연장되는데 1회에 한하여 보통 36개월 정도 그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출판사에 연락을 주지 않았던 몇몇의 작가님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작은 출판사라 그랬을까, 아니면 출간한 책이 적어 신뢰를 드리지 못했던 걸까.
작가님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어느 출판사를 선택할 것인가. 출판사 규모를 볼 것인가, 내실을 볼 것인가, 성장 가능성을 볼 것인가, 그 안의 사람들을 볼 것인가. 내 원고를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작가님들도 생각이 많을 것이다. 내 원고를 용의 꼬리에 얹을 것인가, 뱀의 머리에 앉게 할 것인가. 용의 위풍당당한 위용은 멋있다. 사람들이 절로 우러러보게 만든다. 다만 그곳에서는 그 용의 꼬리가 눈에 뜨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용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선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용’이라는 ‘네임 밸류name value’는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반대로 뱀의 머리는 어떠한가. 우선 출판사와 눈을 맞추는 일이 잦다는 장점이 있다. 내 원고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작업해 준다는 이점도 있다. 다른 책들의 출간 일정으로 인해 내 원고가 뒤로 미뤄지는 일도 적을 것이다. 다만 주변에서 “그런 출판사가 있었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내 책을 제대로 홍보해 주긴 할까,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출판사 폐업까지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정해진 답은 없다. 일단 걸어 봐야 그 길이 꽃길인지 흙길인지 안다. 원고를 계약하는 일은 사실 ‘로또’가 아니다. 시쳇말로, ‘인생 역전(人生逆轉)’이 아닌 ‘인생 여전(人生如前)’일 수 있다는 소리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책’이 나오면 편집자도 작가도 책이 나오기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산다. 편집자는 하나의 삶을 통째로 배우고 작가는 ‘책’이 연결해 주는 다리를 따라 다른 세상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건너간다. 작가님들도 훗날, 자신의 이 책 하나로 조금은 달라진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내 글의 첫걸음이 될 첫 출간 계약, 적절한 눈치와 적당한 타이밍이 필요하다.
(외람되지만) 그 눈치는 나 스스로 쟁취하고 결정해야 할 '아리송'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