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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04. 2023

출간 계약을 위한 눈치 싸움2_헐값에 넘길 원고란 없다

내게는 이런 문구를 포함하는 계약서가 있다.     

"1쇄에 해당하는 저작권사용료는 지급하지 않으며……."   

  

편집자가 되기 전 출간한 내 첫 에세이는 1쇄에 500권. 아직 다 팔리지도 않았으니 어느 창고에 먼지 쌓인 채 잠자고 있을 것이다.(현재는 출판권을 연장하지 않기로 해서 절판된 상태이다.) 책 쓰기 수업을 듣고 출판사 이메일을 백 군데 조사해 정신없이 투고를 해 보았다. (그저 무조건 책이라는 것을 쓰고 싶었던 때였다.)


아주 소수의 출판사가 내게 답을 주었고, 그중 극히 일부만이 내 초고에 관심이 있었다. 계약을 해 준다는 것, 책을 내준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감사할 일이었기에 앞뒤 따지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등기로 보냈다. (아주 일사천리였다.)    

 

내 책. 인세는 없었다. 내 저작물을 사용하여 출판을 해 주겠다는 곳에서 그리 정한 방침이었다. 나도 그에 동의했다. 실제로도 인세를 지급하지 않는 출판사가 이곳 말고도 또 있을 것이다. 아예 자비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곳도 있고, 기획출판을 하면서도 얼마간의 돈을 작가에게서 지불받는 곳도 있다. 또, 몇 권의 책을 구입해야만 출간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거는 곳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피와 땀, 거기에 정말 눈물, 콧물까지 들어간 내 원고를 나는 왜 헐값에 떠나보냈을까 싶다. 내가 ‘이모 육아’를 하던 그 시간을, 정말 태어나 1년 반 동안 내 쌍둥이 조카를 내 자식처럼, 나 자신처럼 아끼고 돌봤던 그 순간들과 ‘백수이모’이자 ‘호구이모’였던 그 행복한 고난(?)의 시간들을 왜 그리 빨리, 성의 없이 세상 밖으로 내보냈을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고 내 책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선생님. ○○○○ 출판사 편집부입니다.

이렇게 늦게 연락을 드려 정말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보내 주신 원고를 검토해 보았습니다.     

엄마가 아니라, ‘이모’만이 볼 수 있는 육아,

그것도 삶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쌍둥이 육아’라는 점이 차별점으로 생각되었고 글맛도 좋았습니다.     

하여 시간을 조금 더 주시면, 팀에서 열심히 논의해 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전체 원고를 보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말이라 정신이 없어 이렇게 늦게 연락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망했다. 조금만 더 기다릴걸……. 

게다가 ‘글맛’이라니. 내 글맛이 좋다, 라니……. 이제야 내 글맛이 평가를 받다니.   


계약서 사인 후 삼 개월쯤 지난 시기,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당장 계약하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받은 메일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메일이었다. 게다가 제법 규모가 크고 내가 정말 꽤 괜찮게 생각하는 출판사였다.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글맛’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메일을 받으며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있다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속이 쓰리다. 벌써 5년 가까이 된 일인데도 말이다.)

앞선 계약을 파기해야 하나 어쩌나. 그게 가능은 한 것인가. 다급한 마음과 어지러운 정신으로 친히 내 소재가 되어 준 쌍둥이 엄마, 내 동생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동생은 온몸으로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였다. 그리고 나를 나무랐다. 좀 더 자세히, 좀 더 천천히 투고를 해 보지, 뭐가 그리 급했냐고. 아니면 나한테라도 글이나 계약서 등을 미리 보여 주고 상의라도 해 보지 그랬냐고.     


그러나 결국 나는 내 첫 선택에 책임지기로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도 했다. 워낙 바쁜 출판사라서 어쩌면 그 출판사는 내 답장을 기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답장을 보냈다. ‘이미 나는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으며, 아쉽고 고맙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라고 정성 들여 답장을 썼다. 

‘아, 나, 조금은 글맛이 좋구나.’ 조금, 아니 많이 억울했다. 그걸 나도 몰랐다니. 그렇게 내 첫 책은 아픈 손가락, 아니 뼈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물론 좋은 이야기가 오갔어도 결국엔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놓친 고기가 아쉬워 뒤늦게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나, 편집자로서 작가님들께 꼭 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글을 아주아주 조금 먼저 써 봤다는 이유, 팔리지도 않은 에세이 한 권을 내 봤다는 이유로 시건방지게 조언을 해 드리고 싶다.     

세상엔 분명히, 내 원고를 좋아하는 곳, 작가로서의 나를 알아주는 곳이 있다. 단 한 곳이라도 분명히 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시라고, 나도 그 조급해지는 마음, 너무 잘 안다고. 그런데 세상의 때와 나의 때가 딱 적절한 타이밍에 만나지는 않더라고, 아주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함부로 내 책, 내 글자를 스스로 무가치하게 취급하지 마시라고. 내 책은 내가 가치를 인정해 줄 때 다른 곳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법이라고.     


사실 나는 일련의 계약 사건을 겪으며 조금 억울했다. 너무 급하게 마음먹었던 내 선택에 스스로 원망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설픈 편집자 새내기로서 지금 나, 작가님들이 조금 덜 억울해할 출판사를 만들고 싶다.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 출판사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동안 작가님들의 원고를 내 원고처럼, 내 아픈 손가락이었던 그 원고처럼 정성 들여 잘 닦고 잘 정돈하고 잘 포장하고 싶다. 



편집자로 싸 놓은 ‘책’이라는 포장지를 뜯어 작가님의 활자들이 독자의 세상에 펼쳐지는 순간,      

세상 구석구석에서 독자들의 놀랍고도 뜨거운 함성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헐값에 넘길 원고’란 결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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