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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16. 2023

알록달록 알쏭달쏭 책 이름 짓기

사람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한다. 그 출생신고 난(欄)에는 이름이 딱 들러붙는다. 비슷한 이름들이 유행을 타고 거세게 일어났다 도로 자취를 감추곤 하는데, 2023년 인기가 있었던 아기 이름을 살펴보자면, 여자 아기는 '이서', '지아', ‘서아’, ‘아린’, ‘하윤’, '지안' 순으로, 남자 아기는 '이준’, '하준', '도윤', '은우', '서준' 순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출처: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


내 이름은 훈민. 어렸을 적부터 ‘너희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냐?’는 친구들의 장난 섞인 물음을 받을 정도로 나는 한글의 옛 이름인 훈민정음과 인연이 있었다. 나는 남자 이름 같다는 놀림도 꾸준히 받았다. 학원이든 병원이든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마다 “아니, 여자였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이 이름은 우리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다. ‘백성을 가르치다(訓民)’라는 뜻의 나의 이름, 나의 제목. 지어 준 사람도 있고 지어 준 명분도 있다. 그 이름이 내게 운명이 되려고 그랬는지 교사는 못 되었어도 강사는 되어 봤다. 심지어 국어를 연구하는 곳에서 일도 해 봤다. 흔한 이름은 아니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태어날 때부터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정과 의리가 듬뿍 쌓인 이름이라서 나는 ‘나’라는 사람의 표지에 붙은 이 제목, ‘훈민’을 참 좋아한다.    


우리의 표지인 이 ‘이름.’ 과연 어떻게 지어야 사람들에게 자주 불리고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까. 이름 짓기, 즉 ‘제목’ 짓기. 사람의 제목을 짓는 것에도 사연이 있고 정성이 있듯, 사실 책의 제목을 짓는 일에도 온갖 고민과 정성이 필요하다.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가 된다면 내가 편집하는 첫 책만큼은 내가 스스로 책 제목을 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쭉 해 왔다. 편집자들의 로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작가님과 계약할 당시, 내 마음에 드는 제목을 은근슬쩍 밀어붙이기로 했는데, 처음엔 내 제목을 두고 다들 반응들이 영 시원찮았다. 

“책 제목으로는 좀 그렇지 않아요?”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유행 타는 제목 같은데.”

“글쎄요.”

“더 생각을 해 봐요. 저희도 고민할게요.”

대표님도, 작가님을 연결해 준 기관의 센터장님 및 선생님들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제목이 뭘 나타내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누군가의 아류 같다거나 혹은 유행을 따르는 듯한 제목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치 아기의 이름이 유행을 타듯이.)   

  

“이 제목으로 된 책이 시중에 있었다면 당장 샀을 거예요.”

하지만 나의 이 제목, 누군가에게는 이런 후기를 남기는 제목이었다. 사실 이 제목은 출판편집학교를 수강할 때 내가 실습 교재로 만들었던 책의 제목이다. 앞선 문장은 어느 수강생 동기가 내게 건네준 말이다. 이런 거한 칭찬의 말에 힘입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 가면서까지 나는 이 제목을 혼자 사랑해 왔다.

그러나 대접은커녕 내가 밀어붙이려던 제목은 작별을 고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나도 곰곰이 몇 번을 더 다시 생각해 보니 제목이 좀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팔랑귀’여서 그렇다.) 그렇게 출판 계약서상에만 가제로 올라 있던 그 제목이…….     


(대표님 왈) 생각해 봤는데, ◯◯ 작가랑 이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작가님 왈) 구관이 명관이라고 저도 그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그 제목이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제목은 사람의 이름처럼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인연을 맺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구석 한편에 먼지 쌓인 채 넘어져 있던 제목이 갑자기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이 편집자 앞으로, 그리고 작가님 앞으로, 세상 앞으로 불려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학교 밖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


이것이 그 책의 제목이다. (부제는 ‘열아홉 자퇴사용설명서’다.) ‘제목’은 갑자기 불려 나간 것에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지만 이 이름은 세상의 물결을 타고 2쇄를 찍고 작가님을 강연의 세계로 초대하기도 하였다. 제대로 된 나의 첫 편집 책이 내가 불어넣은 제목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첫아기’ 같은 이 책의 이름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또 앞으로 나의 책들이 만들어 낸 '속세의 이름'들이 어떤 유년기와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시절을 보낼지 벌써부터 정말 궁금하다. 부디 오래오래 장수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름이기를. 욕심을 내자면, 거기에 더해 (작가님들을 위해서라도) 이름 운에 더해 재물 운까지 얹혀 있는 녀석이기를, 꽤 거한 욕심으로 바라고 또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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