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대를 말리러 공원으로 나섰다

가을은 토란대가 바스락거리는 계절

by 봄책장봄먼지


토란대를 말리러 공원으로 나섰다. 이 행사는 해마다 9월 혹은 10월이면 우리 어머니가 주최하는 행사다. 일정은 미리 알려 주시지 않는다.


토란대가 나올 때가 됐는데...



라는 엄마의 혼잣말이 들리면 우리 가족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늘 농수산에 좀 가야겠어요."

라는 문장이 엄마의 입에서 공기를 타고 입술 밖 음성으로 터져 나오면,


이젠 정말 짐을 싸 들고 가야 할 때가 왔구나, 하며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이때 말하는 짐이란 대개 이렇다.


-커다란 토란을 담을 큰 비닐 몇 장
-토란대를 말릴 돗자리 2개와 우리가 노닥거리고 간식을 먹을 돗자리 1개
-돗자리 밑에 깔 신문지(어제오늘의 기삿거리를 담은 신문)
-노닥거릴 때 먹을 점심이랑 간식거리, 과일 등 먹거리
-토란대와 과일을 깎을 과도
-토란대를 자르고 다듬다가 손에 초록 물이 들지도 모르니 일회용 장갑 여러 장


트렁크 가득, 두 손 가득 우리는 이고 지고 공원으로 '토란대 산책'을 나선다. 도착하여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산책길 벤치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벤치 3개 중 하나는 우리 짐 차지다.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양반다리를 한 뒤, 본격적으로 토란대를 가르고 자르고 다듬는다.



이게 뭐예요?


온갖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과 호기심 어린 눈짓을 건네받는다.

"이게 뭐예요?"

사원증을 목에 걸고 어느 와이셔츠 차림의 청년이 우리 어머니에게 이 나물의 정체를 묻는다. 다른 몇몇 사람들은 점심시간 이 낯선 풍경을 자신의 사진기에 담아 간다.(아마 그날 우리 엄마는 이름 모를 사람의 인스타쯤에 뒷모습이 잡혔을지도 모르겠다. 토란대를 배경으로 하여.)


'이게 뭐예요'라는 청년의 질문이나 '토란대는 그렇게 얇게 까면 안 된다'뭇 아주머니들의 훈수를 듣다 보니, '아, 다 깠다.'라는 지점에 이른다. 드디어 손을 털려는 찰나, 엄마는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아버지가 긴 막대를 가지러 간 사이, 엄마는 돌아다니는 긴 나뭇가지를 주어 와 토란대 사이사이를 벌려 그들의 간격을 조절한다. 그들이 잘 마를 수 있도록 토란대 앞면, 뒷면, 옆면 등 이곳저곳에 가을 햇볕을 고르게 펴 바른다.



나는 드디어 내 할 일 하나가 끝났음에 안도하며 작은 상 하나를 돗자리 위에 편다. 이 상은 1년에 한 번, 토란대나 가지, 고추를 말릴 때면 나오는 작은 상이다. 나는 허리 앞으로 바짝 상을 끌어당기고 거기서 미리 챙겨 간 노트북을 펼친다. 토란대가 부스스 마른 소리를 낼 때까지 나는 토란대를 말리러 온 내 소회를 몇 개의 글자로 변환해 본다.


"토란대를 말리러 공원으로 나섰다. 이 행사는 해마다 9월 혹은 10월이면 우리 어머니가 주최하는 행사다. 일정은 미리 알려 주시지 않는다..."



첫 문장이 흰 도화지 같은 모니터 속에서 오른쪽, 오른쪽으로 밀려 나가며 글자의 길이를 더한다. 흰 여백이 검은 선들과 한데 뒤섞이며 토란대 다듬는 이야기로 거듭 피어난다.


그런데 이 한 꼭지의 이야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어느덧 3시가 된다. 이 3시는 우리 가족에게 늘 하원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지척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쌍둥이 마중을 나선다.



소풍 온 것 같다.
응, 소풍이야!


다섯 살짜리 쌍둥이 두 녀석이 토란대로 들이닥친다. 녀석들은 우리가 깔아 놓은 돗자리 위에 덥석 눕는다. 저희들끼리 희희낙락 지껄이는 소리가 이모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귀를 살랑살랑 간지럽힌다. 생기 가득한 녀석들의 등장으로 토란대는 더 속도를 내며 무럭무럭 바삭해진다.


토란대를 까던 이모와 쌍둥이 조카는 옹기종기 모여 블루투스 스피커로 '개굴개굴 개구리'나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모두 모두 모여라 바나나 차차', '헬로 헬로 반가워요 카봇, 럭키 날려, 펀치 날려~', 혹은 '번개~파워' 따위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김하온의 '붕붕'과 이하이의 '누구 없소'도 듣는다. 우리 둥이 조카들은 이모에게서 힙합을 알았다.)


이모, 먹어.


기분이 좋은 탓인지 초코송이와 고래밥이라는 귀한 간식을 이모에게도 나누어 준다. 소풍이 꽤 즐거웠나 보다. 게다가 벤치 근처에는 바로 놀이터도 있다. 뱀 모양 미끄럼틀과 탐험을 위한 무지개 사다리도 있다. 아이들은 이모에게 쉴 틈을 주지 않으려고 달리기 놀이를 제안한다.






그러나 소풍은 소풍이고, 이 쌍둥이 녀석도 토란대 말리기 가업에 차출된다.


노동은 대를 잇고 토란대는 우리 엄마, 곧 쌍둥이 할머니의 바람대로 해와 바람 사이사이에서 분주히, 꾸준히 일광욕을 즐긴다.




내 고장 9월은

토란대가 익어 가는 계절

일곱 식구의 양식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가을 하늘이 토란대 사이사이로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은박 돗자리가 가슴을 열고

이 나물 저 나물을 가득 품으면


우리가 바라는 풍성한 식탁이

붉고 푸른 색채로 돌아오리니


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향긋한 토란대 나물을 가득 마련해 두렴.


(이육사 님의 '청포도'라는 시를 응용.)




이렇게 우리 가족의 가을은 풍성하게 익어 간다.



이 토란대는 물기를 빼고 햇볕을 머금은 후 우리 집 어느 서늘한 곳 혹은 냉동실쯤에 잘 보관되어 있다가 음력설의 육개장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혹은 그 바로 보름 후 정월대보름에 봄나물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여 오곡밥과 함께 우리 집 밥상에 오를 수도 있다. 지금의 이 토란대는 아마도 꽤 정직하고도 먹음직스러운 먹거리로 우리의 체온을 따뜻하게 데워 줄 것이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우리 엄마의 가을 행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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