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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10. 2024

망하지 않기 위한 목차

비혼일지(가제) 계획 중

'에이징 솔로'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네 나이에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으면서, 회사까지 그만두면 어쩌려고 그래? 인생 망칠 작정이야?"


'지극한 염려인지 노골적 비난인지 알쏭달쏭했다'는 저자. 그 문장을 들으며, 내 이야기를 써 놓았나, 싶었다. 결혼 안 한 여자를 보는 통속적인 시선이 저러하구나,라는 자각이 들어 갑자기 재작년에 쓰다 만 비혼일지를 다시 한번 정식으로 연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제부터 이모사용법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원래 있던 책의 개정판 및 두 번째 시리즈의 복합본이다. 이 연재가 마무리될 즈음 비혼일지를 본격 써 보려고 한다.)



비혼일지.. 어떤 목차를 정하면 좋을까.

휴대 전화 메모장을 불러와 본다.


1. 둘이 잘해 봐

-꽤 폭력적이었다. 나이 든 두 남자와 여자가 수강생으로 등록한 것을 보고 강사 선생님은 계속해서 둘이 잘해 보라고 한다. 남자도 여자도 서로 기분 나쁘다. 심지어 강사 선생님은 따로 카톡을 하여 정말 별로냐고 묻는다. 별로이고 안 별로이고를 떠나서 저는 그냥 잘해 볼 생각이 없다니까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2. 짚신도 짝이 있대

-1번과 좀 이어지는 내용일 수도 있겠다. 팔다 팔다 팔리지 않은 신발이 있다는데 그게 짚신이래. 그리고 그 짚신도 짝은 있대. 사람들이 말한다, 넌 짝수가 되어야 한다고. (홀수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저는 짚신이 아니에요. 짚신이면, 제가 지푸라기로 만들어져 있다는 뜻인데, 저,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3. 어디에 내어놓아도 안 빠져

-이건 동생에게 우리가 하던 말. 동생을 추앙하는 우리 가족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내가 어떤 문장을 꺼내 들자, 가족들이 빵 터졌다. 이 이야기를 솔로인 친구에게도 전했다. 친구가 또 다른 명언을 전해 왔고, 그 이야기를 다시 가족들에게 전하자 웃픈 얼굴로 배꼽이 들락날락했다. 그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나 혼자 벌써 재밌어지는걸?)


4. 아이를 길러 봐야 어른이 되지

-제가 아직 철없는 것 인정? 어, 인정해요. 그런데 아이 있는데도 어른 아닌 사람, 저 많이 봤어요. 뉴스에서도 많이 나오던데?


5. 아니, 네가 뭐가 부족해서?

-이건 전지적 우리 엄마 시점. 마지막 남아 있는 주변의 나이 든 누구가가 시집을 간다 한다. 그 소식을 물어 오신 우리 엄니는, 이번에는 진심, 화가 나셨다. 키도 너보다 작고(내가 작은데 나보다 더 작아서) 너보다 엄청 잘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집 딸내미가 결혼한다고. 좀체 다른 집 시집, 장가에 별 감정이 없던 엄마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내 뿔이 나셨다.

-근데 참, 결혼이랑 키가 무슨 상관이어요?


6. 나이 들어서 아프면 어떡해?

-나이 젊어서 아파도 문제는 문제  아닌가요?

-나중엔 간병인 로봇도 나올 거예요, 도운 워리.


7. 일이랑 결혼했다는 그 노처녀 팀장 어디 있어요?

-면전에서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내 이야기였다!! 그 사람은 그 노처녀가 나인 줄 모르고 내뱉은 거다. 아하, 사람들은 나 없을 때 나를 이렇게 부르는구나. 내 정체성이 노처녀? 내 정체성은 나이나 성별로만 한정 지을 순 없다고 생각하는데.



8. 할머니 세 명이 모여 살기로

-주변에 나처럼 나이 든 솔로인 사람들이 꽤 있다. 그중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자기 동생과 자기와 나와 같은 동네에서 가까이 뭉쳐 살자고 했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엄마, 너무 걱정 말아요."


9. 귀여워만 하면 되는 이모라고?

-조카들 태어나고 1년 4개월을 조카육아에 오롯이 매진한 나. 새벽에도 계속 일어나 쌍둥이 조카에게 분유병을 물려 주며 졸았던 나. 조카들 트림하게 하려다 나 혼자 트림하며 또 졸았던 그때의 나. 귀여워하는 일도 보통 정성으로는 못 해요.


10. 이모는 고모 못 이기겠더라고요

-조카들 겨울옷을 사러 갔다가 매장에서 들었던 말. 자신은 고모인데 상대방 이모를 못 당하겠더라고. 그냥 월급을 들이붓더라고.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다름없어서 낄낄거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건 싸움이 아니다. 승부도 없다. 이모도 고모도 이기지 않는다. 이기는 자는 그럼 누구? 이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놔야지!(계속해서 말하지만 목차를 쓰다 보니 나 혼자만 재밌음.)




그 외 생각해 본 목차들

11. 모아 둔 돈 있을 거 아냐?

12. 왜 안 해요, 결혼?

13. 철들지 않은 늙음

14. 결혼과 채소

15. 사회적 이모들

16. 시간이 왜 없어?

17. 너는 좋겠다, 네 맘대로 살고

18. 나이 들어서도 결혼할 수 있어!(야 너두!)



목차를 다시 훑어보니, 마구 적어 놓은 그것들에 왠지 웃음이 난다. 남들은 나 보고 뭐라 하는데 나는 나 보고 하나도 뭐라 하지 않고 살아온 이 상황이, 난 그저 재밌다. 걱정이 많은 나인데 내 걱정은 하지 않으니 남들이 외려 버선발로 뛰어나와 내 걱정에 여념이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흥해도 제가 흥하고 망해도 제가 망해요. 아니, 걱정해 주시니까 저 꼭 망하지는 않을게요."



망하지 않기 위한 인생 성공의 기준이 '옆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옆에 누가 있는지보다는 안에 누가 있는지

내 안에 진짜 내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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