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Jan 17. 2024

맨몸으로 효도해요

"엄니를 2시간 거리까지 모시고 갔다 왔어. 왕복 4시간 넘게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해서 하마터면 저녁 약속 가기 귀찮을 뻔."

"차로? 이렇게 눈 오는데?"


내 차는 아마도 먼 미래의 시간 속에서나 등장하거나, 혹은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면허는 여전히 장롱 속에 보관 중이고 신분을 확인할 때나 겸연쩍게 얼굴을 디밀 뿐이다.


"아니, 그냥 전철 타고 엄니 모임 장소까지 같이 갔다 온 건데?"

"크크. 그게 모셔다 드린 거야?"


그래, 맞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폼 나게 부모님 모임 장소까지 '드라이브 쓰루~' 하듯이, 자연스레 내려다 드리고 와야 그게 '모셔다 드리다'에 버금가는 제대로 된 효도일 것이다. 

자, 나를 돌아보자.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기에 나는 아직도 맨몸으로 효도 중인 걸까?



"언니, 차 가지고 왔어요?"

"읭? 나 면허도 없는디?"

수년 전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간 적도 있었다. 아, 사람이 서른만 넘어도 응당 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구나. 나와는 조금 다른 결로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말면 그뿐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각자 조금씩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면 그뿐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맨몸 효도'에 나섰다. 15분 거리의 은행에 가서 버스비를 신청하고 왔다.

"저희 아버지랑 어무니, 버스비 신청하러 왔어요."

다름 아닌 만 70세 이상 어르신 버스비 신청. 다른 시(市)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는 일인데 우리 시는 좀 뒤늦게 '어르신 차비'를 지급한단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버스비를 따로 지원해 준다는데 마다할 일이랴. 우리 가족은 서둘러 은행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해당 은행 계좌가 사장된 지 오래라 새로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우리 시는 분기별로 최대 4만 원까지 지급해 준다고 한다. (옆 동네는 5만 원.) 우리 동네 버스에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신나게 장을 보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내 친구가 네가 뭐 한 게 있다고 매일 발마사지를 받냐고 그러더라, 크크크." 

이건 우리 엄마의 말씀이자 엄마의 웃음소리다. 

"왜 한 게 없어, 손주들 밥 챙기느라 다리, 허리 아프게 맨날 서 계시는구먼. 김치부침개 하나를 해도 김치 쪽 짜서 국물 따로 모셔 두고, 부추랑 양파랑 당근이랑 아주 미세하게 쫑쫑 썰어서 엄청 맛있게 만들어 주잖아. 그래서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소원 빌라고 하면, '김치부침개 먹게 해 주세요~' 이 소원 빌잖아. ㅋ"



나의 밤 루틴은 바로 이것, 엄마의 발을 요리조리 오밀조밀 마사지해 드리는 것.

밤이 되면 엄마의 이불 속에서 두 다리를 끌어와, 한쪽 발씩 쭉쭉 '발 마사지'를 해 드린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뜨나, 웬만하면 엄마의 이불 속으로 손을 내민다. 발바닥을 위아래로 쓸며 정성을 다해 '모신다.'


온종일 분주했을 엄마의 발을 꾹꾹 눌러 드리면서 엄마의 하루를 이리저리 보듬는다. (발 마사지의 꿀팁. 꼭 바디로션을 듬뿍 발라 줘야 쓱~ 미끄러지듯 잘 문질러진다.)


불면이 깊으신 엄마지만 나의 발 마사지로 뜻하지 않게 엄마의 '귀여운 콧소리'를 득템할 때가 있다! 그 소리가 잠꼬대처럼 들려올 때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오늘은 엄마 재우기 드디어 성공! (이런 날이 많진 않다. 더욱 정진할 예정이다.)



자동차로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부유한 딸내미는 아니라지만, 맨몸으로는 얼마든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딸내미라 (억지로) 자부해 본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엄니, 아부지, 다시 한 번 믿고 맡겨 보시죠?"

차로는 못 모셔도 '맨몸'으로는 언제든지 잘 '모시고' 다니는 딸내미다.






 







작가의 이전글 다음 신호가 주는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