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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14. 2024

다음 신호가 주는 위로

위로일지를 쓰려고요(이것이 나에게 위로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파란불이 3초 남았을 때 소년은 저 멀리서 좌도 우도 보지 않고 냅다 내질렀다.

"어, 어?"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성당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년의 잽싼 발걸음을 동시에 목격하고는, 2초, 1초... 빨간불.

"오, 건넜네."

"휴, 성공했구먼."

일면식도 없는 (청)소년의 무사 횡단에 응원과 안도를 보내고 눈으로는 다시 그를 좇았다. 구부러진 오른쪽 길모퉁이로 들어서는 것을 보니, 소년은 우리와 비슷한 목적지로 향하는 듯했다.

"근데 안 바쁜가 봐."

"누구?"

나는 조금 전까지 너무도 바빠 보였던 그 소년의 한층 부드러워진 속도가 조금 낯설었다.

"아니 저 앞에 가는 아까 그 청소년. 엄청나게 빨리 달려온 것과는 다르게 아주 여유롭게 걸어가는데?"

"그러네."

소년은 신호가 금세 바뀌곤 하는 어린이 보호 구역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을 살피지도 않은 채 무조건 뛰어들었다. 아슬아슬한 횡단보도 곡예를 보고 놀란 것은 되레 길 가던 우리 가족이었다.



파란불이다, 뛰어야 한다, 언제 다시 파란불이 들어올지 모른다,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이 기회다.

혹, 이런 오작동 같은 사이렌이 소년의 몸에서 울려 퍼졌것은 아닐까. 파블로프의 개처럼 파란불이라는 종소리가 울리면, 우리의 몸이 침을 질질 흘리며 '냅다 달리기'로.


살면서 이런 조건 자극과 조건 반응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파란불이니까 뛰어야 하고 1분 전철이 들어온다니까 에스컬레이터 위를 날듯이 뛰어가 하고, 이번 버스 놓치면 10분 기다려야 하니까 다음 버스 타려면 뛰어야 하고... 파란불의 조급함은 생(生)에서도 이어진다. 들어오니까 저어야 하고 시간이 되었으니까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나이가 되었으니까 어서 나이대로 살아야 하고.

그런데 과연, 나는 제대로 달리고 있었던 게 맞을까. 혹시 이런 것들이 '마음속 착시'는 아니었을까.



1월이 되고 나서 나에게도 그런 '3초짜리 파란불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작심삼일이어서는 안 돼, 매일 글쓰기 모임을 신청했으니 매일 써야 해, 일단 하기로 한 것은 다 해야 해, 늦잠 들면 안 돼, 게을러 보여도 안 돼, 언제 제대로 쓸지도 영어지만 영어 공부는 늘 그렇듯 '새해 다짐 목록'에 넣긴 넣어야 해. 

그렇게 다짐 또 다짐. 앞으로 제대로 먹고살려면 무조건 파란불에는 달려야 해, 빨간 불안이 들이닥치기 전에 레디, 셋, 고... 불안은 훠이 훠이, 그러니까 달려야 해, 발도 달리고 손도 달리고 몸에 달린 모든 것은 다 달려야 해, 빨간불이 들어오기 전에.


2023년 연말에는, 2024년의 주제별 기준을 세세히 정해 놓고 당차게 2024년의 문을 열어젖혔다. 무어라도 할 수 있을 듯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낙관을 끌어당겨 2024년 1월에 들이부었다. 새해라는 '파란불'이 들어왔으니, 3, 2, 1. 자, 이제 달려야지! 달려, 달려! 어? 아니, 사람아. 근데 달리지 않고 갑자기 해?

그러다 문득 마음이 오늘 잠깐 멈췄다.



새해 들어 보름 가까이 달리다 보니 내가 세웠던 기준, 내가 하려던 다짐, 내가 마음먹었던 어떤 작정들. 어디까지 달릴 셈이었고 언제까지 파란불일지, 가늠을 잘 못 하게 되었다. 빨간불이 오기도 전에 나는 새해라는 파란 불안을 부여잡고 '뭐든 열심히'만 해 보자는 주문에 걸려 매일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고(저기요, 올해부터 꼭 7시간씩 열심히 자기로 했잖어요, 잊었나요?) 일어나자마자 정해 둔 아침 루틴으로 나의 강박을 시작하고(파워 J형 인간을 부러워하면서, 나 같은 파워 P도 언젠가 J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애꿎은 기대를 하며..)...



아직 그 어떤 빨간불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행여 '어떤 때'가 되어 파란불이 멈추면 어쩌나. 다시 움츠러들 나의 날들에 대비하여 나는 달릴 수 있을 때 달려 두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파란불은 짧았고 인생의 빨간불들은 점멸하듯 길고도 오래오래 이어지곤 했으니까.

달리지 않으면 언제 또 넘어질지 몰라, 이러면서 뻐근한 어깨로 아침을 열고 충혈된 눈으로 하루를 닫았다. 



"다음 신호에 건너 주세요. 다음 신호에 건너 주세요."

횡단보도의 초록 숫자가 줄어들 때 이런 경고성 멘트를 보내는 횡단보도들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교차로 횡단보도 등에서는 각별한 주의를 요하느라 이런 녹음된 목소리가 우리의 달리기를 만류한다. 그 만류를 들어서 나쁠 것이 하나 없을 텐데 나는 이따금 오늘 아침에 본 그 '달리기 소년'이 된다. 3, 2, 1. 저것이 마지막 파란불일 것이다! 놓쳐선 안 돼!!



"먼저 달려가시든가, 나는 뛰어. 다음 신호에~"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굳이' 뛰지 않는다. 별명도 '김태평'이다. 그는 바로, 평소에도 엉덩이가 무겁기로 (우리 집에서만 소문난) 동생이다. 이 양반은 (성질은 불같은 구석이 있으면서도) 횡단보도 건너기에 있어서만큼은 충청도 양반처럼 아주 태평하고도 여유롭다.


"뭐 하러 뛰어? 다음 신호가 있는데?"

응? 그러게. 나 지금 엄청 급한 일도 없었는데, 왜 뛰었지? 파란불만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갑자기 움직이다 보면 챙겨야 할 것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건널목을 건넌다. 달리기 전 스트레칭도 없었으니 몸도 마음도 경직된 상태일 때가 많고. 그런데도 빨리 가야지, 어서 건너야지, 일단 뛰고 봐야지, 신호에 내 삶의 시계를 맞춘다.



1월 하고도 보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끼익, 내 마음에서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린다. 숨차게 달리다 보니 파란불 앞에서 외려 새파란 겁을 집어먹는다. 뭔가 마음속에서 깜빡거린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울리는 그 신호를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조금 천천히, 다음 신호에.'

지금은 어떻게든 달려야 할 새해,라는 강박과 편견을 오늘 하루라도, 아니 잠깐이라도 걷어 내자.

온갖 다짐과 기준과 목표가 난무했던 나의 새해 시계를 조금 뒤로 늦추어 놓고, 다음 신호를 기다려 보자.


신호가 바뀌면 무작정 달리는 대신 왼쪽 오른쪽, 차가 오나 안 오나,

한 번 더 살피면서 천천히 걸어봐야지.


다음 신호를 기다릴 때까지, 

나는 다음 신호가 주는 위로를 톡톡히 누릴 작정이다.


다음 신호 다음에는 또 다음 신호가,

어김없이 다가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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