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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31. 2024

기특한 걱정

할아버지는 "바깥을 내다보는 스타일~"

할머니는 "요리하는 스타일~"

엄마는 "짜증 스타일~"

이모는...


"걱정 스타~~~일~~~"


조카가 나의 스타일을 정해 줬다. 그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가 평소 즐겨 입던 스타일임에는 틀림없다.

"조심해, 조심해!!"

조카들에게 '사랑해' 다음으로 즐겨 쓰는 말이 "조심해"라 그런지 나는 '걱정 스타일'로 지정되었다.


인정한다. 알게 모르게 걱정을 제법 많이 한다. 걱정을 하는 일 자체보다는 걱정을 덮어 두거나 묵혀 두는 일을 더 즐긴다. 서랍 속에 고이 모셔 놓았던 걱정들이 한꺼번에 토사물처럼 쏟아져 내리면, 이걸 어느 칸에 어떻게 다시 정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채로 손톱만 무뜯는다. (다시 안 넣어도 되는데 되는대로 다시 걱정을 내 서랍에 도로 집어넣는다.)



그런데 지난 주말, 걱정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해 들었다.


"걱정과 근심은 '초대'예요."

성당에 갔다가 보좌 신부님의 강론 말씀에서 우연히 이런 문장을 듣고는 옆길로 새려던 내 마음이 강론 말씀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거예요."


걱정과 근심이 뭐 좋은 거라고 자꾸 초대를 해 주시나 싶기도 하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의 초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가까이 신에게로 가면 조금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사적으로 보자면) 사실에 가깝긴 하다.  



그런데 이것을 개인적 관점으로 다시 한번 해석해 본다.

걱정과 근심이 '초대'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로의 초대'일 수도 있다.(어느 '라떼'의 노래 제목, '나에게로의 초대'처럼.)


걱정을 하면,

1. 늙는다.

2. 불안감이 높아진다.

3. 시간을 허비한다.


하지만 걱정을 하면,

1. 나의 적나라한 고민이 제대로 발가벗는다.

2.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드러난다.

3. '나'가 어떤 사람인지 차차 알게 된다.



요즘 나의 걱정은 "할 수 있을까."이다. 문장의 주어는 물론 '내가'이고.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계속 이 일을 해도 될까. 자꾸 걱정을 하다 보니 나의 근황을 스스로 파악하게 된다. '아, 나는 지금 작년과 똑같은 일을 하기로 한 내 선택에 불안한 상태구나.' '아, 그간 나는 새로운 변화에 주저하면서 살아왔구나.' '아하, 나는 알고 보니 꽤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구나.' 등등.

걱정을 하다 보니 자꾸 '나'라는 사람 안으로 파고든다. 파고들다 보니 기어이 나를 만난다.


물론 아무리 '나'를 만나는 일이라 하더라도 밑바닥 걱정들을 싹 다 긁어모아 피폐해지기보다는 훨훨 날려 보내며 걱정과는 거리를 두고 싶은 게 인지상정. 하지만 걱정을 아예 하지 않는 삶에서는 변화도 발전도 '그다음'이란 것도 없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나를 다그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자, 자기 걱정을 하며 어느 정도 '나'를 알아 갔다면?

이젠 다음 단계의 걱정으로 레벨 업을 해 보자. 아래의 문장은 지난 주말, 미사를 드리며 들었던 보좌 신부님의 마지막 강론 문장이다.

"자기 걱정은 내려놓고 이젠 기특한 걱정을 보는 건 어떨까요?"


스타일을 '걱정' 콘셉트로 정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젠 세상 밖으로 그 콘셉트를 넓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령 제주도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이'가 자기 몸에 들러붙었던 나머지 낚싯줄을 대체 언제 제거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든지,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겨 해외 원조 등 기부금을 좀 더 넉넉히 낼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한다든지, 좋은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을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알릴 수 있을지 걱정한다든지, 또는 어린 청소년들의 귀갓길이 어떻게 해야 안전할지 걱정한다든지...


걱정을 하다 보면, 특히나 '기특한 걱정'을 하다 보면,

아주 소량이나마 '나'는 '더 나은 나'라는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



나도 '나 걱정'만 하는 스타일에서 이제는 걱정의 레벨을 조금 더 높여 '남 걱정'을 기특하게 한번 해 봐야겠다. 걱정은 '매몰'보다는 '확장', '기 빨림'보다는 '기특'이라는 단어와 어울릴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엔, 또 어떤 걱정을 집어들어야 하지?

내일 뭐 먹을까 걱정? 아시안컵 4강 진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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