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내 1년 치 양식이다."
50년 전에서 건너온 원고 뭉치는 아버지의 나이만큼이나 낡았다. 시골집에서 용케도 불쏘시개가 되지 않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종이 뭉치. "작은 아재의 것이면 가져가소."라는 전언이 있어 아버지는 고향에서 50년 전의 아버지를 데려왔다. 누렇게 바랜 종이는 세월을 먹어 푸석거렸고 다소 쾨쾨했다.
그 원고는 50년 전에 써 놓았던 아버지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오래된 노트북에서 한 자 한 자 한글파일로 변환되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돋보기안경을 추어올리며 '1년 치 양식'을 꼬박꼬박 챙겨 드시던 아버지는 드디어 A4 크기 170여 쪽, 글자 포인트 10, 줄 간격 160%에 이르는 거대 파일을 만드셨다.
긴 세월을 건너오면서 초고는 많은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다. 일부 주인공의 이름은 송 씨였다가 허 씨였다가 함 씨가 되었고, 주인공의 로맨스는 우정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를 반복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아버지의 고향이 있었다. 아버지는 바다의 소리를 늘 그리워하는 섬사람이다. 어느 도시 한편에서 숨죽이며 자라나던 아버지의 양식은 그렇게 우여곡절의 수정을 거쳐 마침내 내 앞으로 왔다.
"아, 뭐 또 쓰고 있긴 허지. 연말에 한 권 정도 나올 것 같으이."
(연말=2023년 겨울)
'소사 소사 맙소사'였다. 170쪽이 넘는 원고를 아직 1/3도 편집 안 했던 지난여름, 나는 아버지의 통화를 엿듣고 말았다. 글자를 손보고 문장을 다듬고 목차를 제대로 완성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아버지는 곧 있으면 책의 꼴이 나올 것 같다고 주변에 호언과 장담을 뿌리고 다니셨던 것이다. 당시 나는 한창 일하랴 바쁜 상황이었고, 책 크기도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떤 글꼴로 내지를 채울지, 어떤 표지로 아버지 소설을 포장할지 아무것도 의논하지 않은 시기였는데 뜻밖의 통화를 듣고 나니 저 이야기는 나를 향한 압박인가,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아부지, 그때까지 절대 다 못 하죠."
뒤늦게 볼멘소리를 했지만 서둘러야 했다. 원고 전체를 통으로 다 보고 이야기하려 했는데 그러다가는 아버지의 '김칫국'이 도를 넘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돌아가 한 꼭지씩 아버지와 함께 편집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아부지,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꼭지씩 편집 회의를 합시다."
아버지의 꿈 시계는 벌써 저만치 앞서가 있지만, 보조자인 나의 시계는 더욱 냉정하다. 아버지의 이 원고를 요리조리 교정하고 책 형태로 편집해서 독립출판물 형태로 만드는 게 우선 1차 목표이다. 100권이든 200권이든 인쇄하여 주변에 퍼트리고 세상에 내놓는 게 2차 목표이다.
이리하여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늘도 나는 외출 길에도 아버지의 초고를 챙겼다. 전철에서 책 읽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는 나지만, 요즘엔 그 대신 아버지의 A4를 꺼내어 빨간펜을 긋고 스토리에 관한 의견도 메모해 둔다. 몇십 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섬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아버지의 50년 전의 양식.
아버지의 1년 치 양식은 그렇게,
아버지의 손을 거쳐 어느덧 나의 양식이 되어 간다.
아버지를 배불렸던 글자들이 이제는 나의 양식을 책임진다.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편집자, 그렇게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