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합니다.
이번 고백 성사의 주제는 '미움'입니다. 총 세 가지인데요.
첫째, 동료에 관한 미움입니다. 지적을 많이 당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을 피하게 돼요.
둘째, 친한 사람들에 관한 미움입니다. 제 시간을 지키고 싶은데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또, 본의 아니게 어두운 감정에 물들 때도 있고요.
셋째, 돈에 관한 미움입니다. 예전에 알던 저의 복지관 청소년들, 이제는 성인이 된 친구들인데, 저에게 자꾸 돈을 빌려 달라 해서요. 전 요즘 이기적인 선생이 되어 가고 있어요. 아, 이것도 사람에 관한 미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자, 이제 작은 창문 너머 신부님의 피드백을 들어 볼 시간이다.
"고백 성사 준비를 아주 잘해 오셨어요."
으응? 나 지금 칭찬받은 건가?
베풀라, 마음을 고쳐먹어라, 하느님이 지켜보고 계신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를 신부님(당시 성당은 크리스마스 핫 시즌이라 손님 신부님께서 고백 성사를 해 주셨다.)이
저 너머에서 이리 말씀하신다.
"잘하셨어요."
미움을 고백하는데 난데없는 칭찬이 먼저 쓱 들어온다. 죄를 고백하고도, 죄를 저지르고도 칭찬을 받아 보긴 처음이다. 중언부언하기 싫어 나의 '죄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적어 가 낭독했는데, 아마도 신부님께서는 '고백을 제대로 준비하는 신자'로 느끼셨나 보다.
물론 신부님께서 뒤에 보태신 말씀이 있었다.
성당과 멀어질수록, 신과 멀어질수록 미움은 늘어난다고.
네, 네. 안 멀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속으로 이리 다짐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는 죄를, 특히 미움의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며 그렇게 몇 주를 보냈는데 나는 고만... 새해가 바뀌고 나서도...
어제 또다시 '미움'의 죄를 짓고 말았다.
"쌤, ○○ 만 원만 빌려주시면 안 돼요?"
지난해부터 나를 조금씩 괴롭히던 일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다가온다. 올해 들어 첫 요청이니 좀 늦은 감이 없진 않다. 몇 월 며칠에 꼭 갚을게요,라는 메시지는 벌써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다. 처음에는 선생이 옛 제자에게 무얼 이런 걸 갚으라고 하나 싶었는데 이런 일이 잦아지다 보니 나에게도 제자에게도 방책이 필요해 보인다. 내가 이 아이의 경제관념을 망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이 아이의 지갑이나 호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이러다 좋았던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은 아닌가. 정말 이 아이가 말하는 '빌려야만 하는 이유'가 사실이 맞는 건가...(이제는 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복지관에 다닐 때 숱하게 겪었던 일인데도 아직 나는 갈피를 못 잡는다.)
아무튼 연말 즈음, 그 친구에게 "조금씩 갚아 나가는 연습을 한번 해 보자."라고 말해 주었고, 돈을 주는 나는 받을 준비를, 나의 돈을 가져가는 아이는 갚을 준비를 서서히 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주는 나'만 남았고, 단 한 번도 '받는 나'가 되어 본 적은 없다. 소소한 금액이지만 가랑비에도 옷 젖는다고, 내 통장 잔액은 슬슬 축축한 숫자가 되어 간다.
"다는 못 주겠다. 쌤도 요즘 일이 많이 없거든."
이리 말하고 조금의 돈을 부친다. "감사해요, 쌤."
이제는 언제 갚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는 나의 청소년 친구이자 이제는 성인이 된 친구.
옛 선생으로서, 알던 사람으로서, 주변의 어른으로서 바른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초라한 통장은 자꾸 내 마음에 빗장을 걸고, 또다시 내 마음은 미움과 나란히 설 채비를 한다.
아, 다시 고백 성사를 하러 가야 하나?
나는 곧 '죄의 목록'을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다.
이번 '미움 고백'까지 또 칭찬받을 수는 없겠지?
(먼 훗날에라도 이 미움이 '사랑'으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사랑과 미움이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 깨칠 수 있기를.... 아마도 그때가 되어서야 내 이번 미움은 칭찬을 받을 듯하다.)
(사진 출처: GDJ@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