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는 아니다. 주변에서 무려(?) 두 번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서 한 번쯤 글로 써 보고 싶었다. 두 사례는 주인공이 친할머니냐 외할머니냐의 차이였을 뿐 스토리의 골자는 같다.
어느 날, 손주에게서 할머니1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아, 우선 할머니1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자면, 아들+며느리+손자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꾸준히 이들과 어울렸고, 평소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동행한 적이 많았다. 자식들 곁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김치를 포함하여 늘 아들 내외의 음식을 책임지기도 했다. 이 할머니1이 손주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 가기로 했어요."
그렇구나. 할머니1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짐까지 쌌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이미 가족과 함께 제주도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알고 보니 아들 내외가 손주와 예비 손주며느리, 그러니까 자기 가족끼리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할머니1: " 아니, 가족끼리라고 해서 나도 가는 줄 알았지."
이번엔 두 번째 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2가 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가족, 이번 설 연휴에 해외여행 가려고."
할머니2는 열심히 손주 육아에 매진해 온 분이다. 지금은 손길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만큼 손주들이 제법 큰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손주들을 학원에 바래다주기도 한다. 이 할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가족 아니냐?"
이때 딸 옆에 있던 어린 손주가 한마디를 한다.
"아니요, 할머니. 그렇게 가족 말고, 이렇게 우리 넷. 우리 가족끼리요."
할머니1과 할머니2의 이야기가 모든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아는 할머니3도 이 글에 추가로 등장시켜 본다.
할머니3: "할머니1, 할머니2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죠. 나는 가자고 해도 안 가거든요. 물론 자식들이 같이 여행 가자고도 안 해요. 서로 불편하기만 하죠. 그냥 각자 거리 두고 사는 게 가장 편해요. 근데 할머니1이랑 할머니2는 뭐 하러 그런 기대를 했데?"
오늘은 설날이다. 가족의 정의와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불현듯 떠올려 보고 싶은 설날.
할머니3의 말대로 다른 가족을 꾸렸다면 원가족에서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이긴 한다. 다만 육아 등으로 손이 부족할 때 물심양면 애썼던 할머니2나 아들 내외와 항상 함께였던 할머니1의 마음도 조금 이해는 간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만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가족은 덧셈도 어렵고 뺄셈도 어렵다. 덧셈이 많아지면 심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자꾸 더하다가 가족의 경계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홀로서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가족의 경계에서 가족을 자꾸 '빼기'만 하다 보면 가족 안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았을 '사랑'이라는 것이 점차 그 부피를 줄일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깍두기 이모'인 나는,
가족 안에서 덧셈도 뺄셈도 해 보지 않은 터라 그들의 입장을 관망만 할 뿐이다. (내가 뭐라 주장할 처지는 아니다.)
오늘은 설날이다.
'꾸역꾸역' 가족을 보러 가다 체할 것 같다면 쉼표를 넣어도 좋겠고,
없느니만 못하다면 마침표를 찍는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 같고,
혹 '헐레벌떡' 달려가서 얼른 대문을 열고 "나, 왔어!" 외치고 싶다면 느낌표 가득 넣어 가족을 만나면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부탁과 위로의 한마디.
"할머니1, 할머니2.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여행을 같이 가든 안 가든, 언제나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그런데 아마 다음 여행도 이런 식일지 몰라요. 그런데 그 식은 좀 자연스러운 세상의 흐름, 시간의 흐름일 듯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할머니 자신을 더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와 가장 친한 가족, '나'부터 챙기자고요!할머니1과 할머니2,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