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모두가 바쁜 버스 정류장.
오후 6시 10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모여드는 시간. 일부는 지쳤고 다른 일부는 안도하는 표정들. 내일 다시 또 시작해야 한다고 해도 오늘은 잠시 끝났다. 그 잠깐의 안도감. 그리고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작은 기쁨. 나아가 6시 10분이 주는 달콤함들이 버스 정류장에 서성거린다. 칼같이 퇴근한 날에만 느낄 수 있는 경쾌한 발자국 소리들.
버스를 잡아 올라타는 발걸음의 반동들. 가끔은 퇴근 시간인데도 빈자리에 앉게 되는 행운까지 누린다. 일한 자만이 누리는 휴식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나는 버스. 나는 버스가 지나가고 또 지나갈 때까지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 사람들의 밝게 달아오른 얼굴들을 보고 또 본다.
“야, 이거 봄봄이 동생한테 쫄리겠는데?”
(여기서 '봄봄'은 나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난다. 동생이 번역한 책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내어놓을 줄 모르는 나다. 아니, 누가 한국말로 말을 걸어도 ‘어버버’하는 어리바리한 사람이다. 그에 비해 동생은 책까지 번역하고 있다. 그것도 쌍둥이를 키우면서까지 말이다.
“네 동생 대단하다야.”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언제 그렇게 ‘열일’을 해서 책까지 번역해 냈는지. 결과물이 있는 삶이란 참 좋은 것이다. 세상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언니랑 동생이랑 닮으셨네요!"
옷 가게에 가면 나보다 키가 큰 동생은 언니로, 키가 매우 작은 나는 동생으로 둔갑하곤 했다. 처음엔 내가 언니라는 사실이, 동생이 동생이라는 사실이 꽤 중요한 사실인 줄 알고 굳이 초면인 가게 점원에게 ‘제가 언니입니다’라고 항변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서로가 역할 가면을 뒤바꿔 쓴다. 가게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나는 잠시 동생인 척을 한다. 그게 더 속이 편하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혹시 그쪽이 동생입니까?'라고 물어오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내가 '동생보다 2년쯤 먼저 태어난 동생'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생은 나보다 키가 컸으며, 이미 중학교 시절에 나보다 먼저 사춘기를 앓았다.
동생은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자신의 생을 제대로 다스리고 있었다. 게다가 대학생이 된 동생은 자기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당당히 선언 혹은 부탁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나보다 더 훌쩍 '어른'이 되어 자기가 책임져야 할 두 생명까지도 돌보고 있다. 동생은 이제 어딜 가서든 '제대로 된 어른' 대접을 받는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께 이것저것을 해 달라 요청해 본 일이 많지 않다. 동생은 자신을 알기 위해,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을 해 보고 다녔다. 스케이트도 배워 보고, 서예도 배워 보고, 기타도 배워 보고, 플루트까지도 배워 보았다. 나는 피아노 하나를 배웠다. 지금은 손가락조차 그 기억을 잃었지만.
밤 9시. 옆에서 ‘우뉴우뉴우뉴’ 소리가 들린다. 동생 집은 다른 지역인 터라 평일에는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웠는데 그나마 여기서 가장 어린(?) 사람인 내가 자연스레 밤 시간 육아를 담당하게 됐다. 아직 젖병을 떼지 않은 쌍둥이 녀석들이 제공받아야 할 우유가 늦어지자 단체로 떼를 쓴다.
빨리빨리, 더 빨리! 적당한 온도를 맞추려다 보니 조금 시간이 늦어진다. 아이들 눈은 그렁그렁하기까지 한다. 곧이어 우유가 알맞게 데워지고 아이들이 드디어 젖병을 받아 든다. 갑자기 평화로운 시간이 도래한다. 원래부터 울음소리가 없었던 현장에 온 듯하다. 고요 속에서 내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만지는 조카 녀석의 꼬물꼬물한 손가락을 바라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말 못 하는 갓난아이가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가가 배고픈 것을 엄마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러므로 말을 못 하는 아이는 울어야 한다. 아기에게 울음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 여전히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어른 하나가 있다. 그 어른은 바로 나다. 그래, 솔직히 나조차도 내 배가 고팠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우는 법도, 소리 내는 법도 몰랐다. 그저 ‘조용한 사람’으로만 살아남았다. 나는 내 인생에서도 지나치게 ‘조용한 사람’이었다. 조용한 사람들은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친구들! 혹시 독서 모임 안 할래?”
자다가 봉창 두드리니, 갑자기 웬 책이야, 뭔 일 있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이 의외로 쏠쏠했다.
“난 요새 이런 책 읽어.”
“난 애들 키우느라 책은 거의 뭐. 그래도 하면 좋겠다. 애들한테도 좋고.”
“저번에 ○○○가 쓴 책 빌려 읽으려고 두 달을 기다렸어.”
내 친구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책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육아에 바쁜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한 손에 젖병을 물리고 다른 한 손으로 아가를 안은 채 기어코 책을 펼쳐 든 날이 있었다. (쌍둥이 조카 육아로 두 손이 다 자유롭지 못할 때는 심지어 발가락으로만 책장을 넘길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책을 읽고 싶다.)
직장을 관둔 시기와 조카들이 세상에 나온 시기가 조용히 맞물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육아의 주요 인력으로 우뚝 서고 있었다. 나의 존재 의의를 ‘육아계’에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사실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더 자주 자문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나에게 대답했다.
“우선 책을 읽어.”
조용한 내가 ‘나’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책을 폭식하는 일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친구들에게 미친 척 제안을 하나 건넸다. 그리고 그 제안은 상상 이상으로 아주 수월히 친구들의 마음속에 침투했다. 나는 바로 스터디 룸을 예약하고 우리만의 작은 공간에서 우리만의 책을 나눴다. 우리는 서로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했다. 가끔은 같은 책 속의 구절구절을 구구절절 함께 읽었다.
“저녁 먹고 가자!”
토요일 오후, 애가 있는 친구들은 집에 들어가 빨리 육아 인력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하였다. 부인을 애타게 기다릴 애 아버지들에게 살뜰한 ‘주말육아’를 선물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내 동생의 두 번째 번역 책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야, 이거 언니인 네가 좀 쫄리겠는데(졸리겠는데)?”
친구는 가감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해 준다. 우리 앞에는 오랜만에 고기가 놓여 있고, 더더욱 오랜만에 맥주 한 잔씩이 놓여 있다. 십 년, 이십 년 전보다 우리 친구들은 식구가 늘었다. 친구들은 남편도 생겼고 아이들도 하나둘 생겼다. 식구를 늘리지 않은 친구도 나를 포함 둘이 있었다.
“어, 무지 쫄린다니까. 나, ‘쭈그리’야. 크크.”
친구가 너무 호탕하게 말해 주어 나도 모르게 호탕하게 같이 따라 웃는다. 자신을 ‘쭈그리’라 인정하는데도 기분이 왠지 좋다. 누군가 대놓고 사실을 말해 준 것이 오히려 더 기쁘다.
그래, 사실 나는 좀 ‘쫄리다.’ 세상에 보여줄 패가 적다. 이미 내 패는 깔 대로 다 깐 상태다. 누가 봐도 내 인생은 뻔하다. 번듯한 직장도, 그럴듯한 남자 친구도, 숨 막힐 듯한 외모나 재색도 겸비하지 못하였다. 이대로 혼자 살다 혼자 추레하게 늙기 딱 좋게 생겨 먹었다. 이제 내 앞날이 너무 뻔해서 더 이상 내 패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없다. 나조차도 내가 가진 패에 관심이 없다. 나는 내 패도 내 편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좀 쪼들릴 때, 또 구석에 숨어 있을 때 나를 찾아내 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마치 자기 앞의 인생인 양 심각하게 고민해 주는 가족들이 있다. 그리고 잘난 통찰력을 내 인생에 발휘하려고 낑낑거려 주기도 하는 ‘동생’이라는 존재도 내 곁에 있다.
“멋있다, 네 동생. ‘○○○ 옮김’이라니! 옮김!”
“어. 내 동생 잘나가지?”
그런데 한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너는 이제 ‘지음’ 하면 되잖아!”
“응?”
“봄책장봄먼지 지음.”
“봄책장봄먼지 지음?”
“응! 너도 곧 할 건데, 뭐.”
친구는 내 이름 뒤에 ‘지음’을 보태 준다. 이 친구는 아무것도 없는 나를 보고 늘 ‘내 글이 좋다’며 ‘너도 글을 써 봐.’라고 주야장천 말해 주는 친구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는다. 책을 함께 읽을 친구들도 만난다. 같이 웃어 주고 같이 울어 주는 친구들의 마음도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마음을 구석구석 긁어내 본다.
이모야, 이모야, 뭐 하니?
(……)
죽었니, 살았니?
살았다!
나는 이렇게 또 살아남는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