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Feb 07. 2024

저, 엄마 아닌데요?

애 보기가 쉬운 줄 알아?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이므로 언급을 피했을 것이다. 또한 굳이 그 세계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뭣도 모르고) 뭐 얼마나 힘들다고 유세냐 싶었을지도.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게 천국으로 가는 문인지 어쩐지는 아직 모른다.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고도 격렬한 육아에 빠져 본 2~3년 동안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영원한 세계 하나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힘들어 죽겠다고 투덜대면서도 안아 달라는 조카를 절대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아가들이 나에게 주는 그 찰나의 눈빛, 손짓, 몸짓 등에 끝을 알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오늘 '행복하게 사는 법'을 검색해 봤어요."

"우리 ○○, 많이 힘든가 보구나.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걸 보니."

“행복하게 사는 법을 검색했더니 무슨 카페 가입하라는 글만 왕창 있는 걸 보고 그냥 쌤한테 연락했어요.”

스물. 이 아이의 주변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또다시 재수를 준비하는 친구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번다는 친구들, 별다른 이유 없이 학교생활에 지쳐 일 년쯤 쉬고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친구들……. 일 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쉬어 가는 친구들이 있다. 나의 청소년 친구이자 지금은 스물이 된 이 친구는 여기저기 그 나이에 맞게 제 삶 속을 걸어가는 다른 친구들을 본다.

스물, 일찌감치 취업 전선에 당당히 입성했던 나의 복지관 제자 하나가 내게 문자를 보내온다. 자신이 묻고도 딱히 남들이 답해 줄 것 같지 않은 질문을, 그래도 한때 선생님이었다는 이유로 나에게 물어 온다.


"도대체 무얼 위해 내가 이렇게 빡빡하게 살고 있나 싶어요."

내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옛 제자의 말에 나도 문득 마음이 먹먹하다. 어른이 되면 고민이 좀 그치나요? 그게 진짜 궁금해요. 청소년 시절,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던 친구가 이제는 정말 그 '어른'이라는 것이 되었다. 이제 조금씩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그 녀석 역시 세상을 알아 가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말하던 그 '고민'이라는 것이 사실은 평생을 두고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녀석도 지금쯤 어슴푸레 깨달았을지 모른다. 열심히 달리고는 있지만 잠깐 고개를 쓱 돌려 주변을 살필 때면 모두 그 나이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제대로 잘 달리고 있는 듯 보일 것이다.

그 나이에 맞는 옷은 대체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 것일까? 나도 알 수만 있다면 그 옷을 당장 사고 싶다. 튀지 않고 세상에 적당히 스며들 수 있게 세상과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고도 싶다.


그나저나 그 녀석에게 나는 과연 무슨 말을 보태 주어야 할까. 휴대폰을 쥔 채 답장을 적고 있던 내 손가락이 한 글자씩을 쓰다 말고 자꾸만 멀뚱히 멈춰 선다. 사실은 나조차도 '나이에 맞게'가 무슨 뜻인지 혼란스럽다. 특정 나이가 되어도 그 나이에 자꾸만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할 뿐 그 턱을 성큼 넘어가지 못했다.



"어이구, 아들이 엄마를 닮았네요."

"네? 아, 네."

동생은 키가 컸다. 언니는 키가 작았다. 동생과 언니는 뒤바뀌어 버린 신장 탓인지 어릴 때부터 역할이 조금 뒤바뀐 채 살아왔다. 동생은 언니냐는 부담스러운 질문을, 언니는 동생이냐는 자존심 상하는 질문을 들으며 자랐다. 그리고 이제 키가 작은 언니는 동생의 키 큰 아이를 제 품에 껴안고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이제는 동생 대신 '엄마예요?'라는 말까지 듣는다.


"어머, 쌍둥인가 보네. 쌍둥이를 배 속에 품고 다니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꼬."

처음 보는 동네 할머니가 쌍둥이 조카들과 내 배를 번갈아 쳐다본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아랫배에 가져다 댄다. 애꿎은 내 똥배만 문질러 본다.


"저, 그게 아니라 사실 저는요, (저는 애를 배어 본 적도 낳아 본 적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변명거리를 주섬주섬 찾는다. 하지만 내 말은 이내 곧 잘린다.

"얼마나 좋을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둘씩이나 한 번에 얻고. 키우고 나면 얼마나 좋은데."

"그렇게 마구 좋지는 않다는 것 같던데…….(아직은 키우느라 힘드니까.)"

"지금이야 힘들지. 키우고 나면 쌍둥이가 두 배로 제 몫들을 하지. 이제 효도받을 일만 남은 거여. 팔자가 아주 좋구먼."


아직도 아들이 떡두꺼비인 줄 아시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앞에서 굳이 내 신원이 '이모'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한 번 보고 말 사이겠지. 나는 그냥 쌍둥이 유아차를 앞뒤로 흔들면서 팔자 좋은 쌍둥이 엄마인 척을 한다. 그간 몇 번이나 '전 이모입니다'라고 해 보았지만 아기띠를 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 '이모가 왜?'라는 눈빛만 돌아왔다. 그러니 잠시 팔자 좋은 척을 해 보자. 시원찮은 팔자에 ‘조카 복’이라도 왕창 있어서 다행이지 뭐야, 스스로를 위안한다.


십 대에는 '열공'을 하고, 이십 대에는 '열일'을 하고, 적어도 삼십 대에는 '육아'와 '시댁 욕'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 나이에 맞는 행복의 문턱을 성큼성큼 넘으며 살고 있을 줄로 믿었다. 그저 막연하게 나라는 인간이 변변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변변찮은 어른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일 줄로만 알았다. 십 대에도 이십 대에도 '열공'만 하고, 허구한 날 준비만 하다 끝날 줄은... 이렇게 시간이 내 인생을 삭제해 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현실은 생애 주기를 거스르는 쪽으로 나를 몰고 갔다. 임용고사 장수생(장기 수험생)으로 긴 수험생활을 하는 동안 내 기억에는 여러 학자의 의견이 띄엄띄엄 남아 있는데, 그중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이라는 학자분이 말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학자가 설명하는 발달 단계에 따르면 '성인초기'는 '친밀감 대 고립감'의 시기로 사회생활과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친밀감 획득에 실패하면 혼자라는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인중기(장년기)'는 '생산성 대 침체성'의 시기로 후배를 양성하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성취감과 생산성을 획득하지만, 남겨줄 것이 없으면 정체와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 직업이 없어서 경력을 쌓지 못한 사람, 그리고 결혼을 안 했거나 세상에 남길 자식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세상이 말하는 생애 주기에 따라 인생을 굴리지 않는 사람은 고립되거나 침체되는 것일까?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도태되는 것일까?



"아이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되죠?"

"어? 주민등록번호 모르는데요."

"엄마 아니에요?"

"얘는 이모예요."

이모가 대답하고 있을 때, 옆에서 쌍둥이 할머니가 끼어들어 이모 대신 대답을 해 준다. 내가 조카들을 데리고 다닐 때마다 이모 옆에서 '이 여자는 애들 이모랍니다', '이모라고요', '얘는 이모지 엄마 아니어서 몰라요' 등등의 변명을 해 주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건성으로 흘려듣는다. 내가 엄마든 이모든 사람들은 상관이 없다. '내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병원, 내 앞에 있는 이 간호사도 그와 같다. 어서 주민등록번호나 내어놓으라고 한다.


'엄마 사칭자'였던 나는 병원에서 받던 오해를 약국에서도 이어 간다.

"옴마."

조카들이 약국을 헤집고 다닌다. 만화 캐릭터가 추천하는 비타민과 주스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몇 개씩 손에 쥐고 또다시 나를 부른다.

"엄아아, 엄아아오오오!"

약국에만 들르면 사재기를 시작하려는 쌍둥이들이 콧물을 훌쩍인다. 그중 둘째가 나에게 자꾸 이상한 말을 한다. 가만히 들어 보니, "엄마! 엄마!"라는 소리와 얼추 비슷해 보인다. 거세게 소리를 지르며 자기를 안으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자기가 고른 주스를 얼른 따 달라고 온몸으로 외친다.


"엄마 아니야, 이모라고 해야지, 이모."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쌍둥이 할머니는 '엄마'라는 누명을 쓴 이모를 측은히 바라본다. 쌍둥이 할머니이자 '나'라는 딸을 낳은 우리 엄마는 이모가 처녀임을 공표해 주려고 애를 쓰신다. 노처녀 인증 작업에 한창이신 셈이다. '엄마'라는 누명을 쓴 나는, 그러나, 생각이 점점 달라진다.

'이 나이에는 차라리 엄마인 게 어쩌면 조금 더 편하겠네.'

할머니가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면 할수록, 아직 말문이 완전히 안 트인 둘째 조카는 웬일인지 '엄마'인지 '엄모'인지 모를 소리를 더 반복한다.


근데, 뭐, 어때? 엄마면 어떻고 이모면 어떻고 엄모면 또 어때?

"그래, 엄모가 주스 따 줄게. 잠깐만 기다려."

둘째가 주스를 먹으며 기분 좋게 자기 '엄모'를 바라다본다. '엄모'는 그냥 아가를 바라보며 웃어 준다. 뭐, 그냥 이렇게 사는 거다. 굳이 나를 밝히지 않아도 나는 우리 조카들에게 언제나 영원히 '어떤 이모'일 것이다. 영원히 너희들을 사랑할 어떤 이모.


'너희들은 그것만 기억해 주면 돼. 이모가 너희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거.'

앞으로 조카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든 좋다. 이모든, 엄마든, 할머니든, 혹은 삼촌이라 부른대도, 심지어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른대도 상관없다. 녀석들이 나를 무어라 부르든 이 이모가 너희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 변함없는 '사랑'이 조카들과 나를 연결하는 열쇠이자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열쇠일 테니까.


저, 엄마 아닌데요? 엄모인데요?

엄마는 안 되어도 '엄모'쯤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내 인생에서 검색한 '행복하게 사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묻던 내 청소년 친구에게 이제 조금은 답장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출처: GDJ@pixabay)

이전 09화 이모 역할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