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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Feb 06. 2024

이모 역할론

'본격적인 쉼’보다 ‘일시적인 쉼’을 허락해 달라고 이 세상에 민원을 내려던 이모.


그러나 세상은 이모의 민원 처리는 잊고, 이자에게 ‘크리스마스, 새해, 돌잔치, 어린이날’과 같은 청구서를 들이민다. 그동안 조카들에게서 남들보다 두 배 더 많은 사랑을 배 터지게 받아먹었으니, 이제 받은 것을 도로 갚을 때가 되었다며 이모를 채근한다. 가만히 청구서를 바라보던 백수 이모, 지갑에 손을 넣고 조용히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백수 이모를 대신해 기념일에 뛰어 줄 교체카드들을 고민한다. 잔액이 얼마 안 남은 체크카드 녀석 하나가 벤치 앞에서 몸을 푼다. 아마도 이 녀석이 오늘 간택될 듯하다. 자, 이제 잠에서 깨자. 서둘러 마트로 출동할 시간이다. 4층 유아 코너, 장난감의 세계로 가자!



백수 이모의 발걸음은 4층 장난감 판매대 앞에 오래도록 머무른다.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참 많다. 리모컨으로 조정할 수 있는 애벌레가 있는가 하면, 앞과 뒤에다 손을 슬쩍만 갖다 대도 저절로 움직이는 강아지도 있다. 이모는 오래된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고민 중이다. 눈에 보이는 선물을 하지 않으면 선물이 아닌 것만 같다. 마음은 아무리 보여 줘도 눈에 뜨이지 않을뿐더러 손에 쥘 수도 없다. 이모는 눈앞에 전시된 장난감 세계에 압도당한다. 신기하고 멋지고 괜찮은 것들은 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내 것이 될 수 있다. 이모는 사랑하는 생명체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들을 깨닫는다.


사랑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구나.

그것도 좀 많이 필요하구나. 참 이상하다. 그간 초라한 딸의 모습은 어떻게든 잘만 뒤집어쓰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린 조카들에게 못난 이모가 되는 것은 왠지 더 힘이 든다. 부모님에게 못난 딸이 되는 건 목에 돌덩이가 걸린 느낌 정도인데 조카들에게 못난 이모가 되는 건 왠지 가슴에 불덩이를 지니는 느낌이다.


부모님들도 나를 키울 때 이런 불덩이를 지니고 사셨을까. 부모님의 둘째 불덩이는 그래도 제법 자리를 잡았고, 장성하여 가정도 이루었다. 어디에 가든 제 몫을 해내고 살고 있다. 반면 나의 부모님에게는 골치 아픈 첫째 불덩이가 있다. 바로 나다. 자리를 잡길 바라시지만, 아직 부모님과 한집에 기거하고 있다. 장성만 하였지 가정을 이룬 것도 아니고, 어딜 가서 제 몫을 해내고 사는 것도 아니다. 여태껏 평생, 그 불덩이 하나를 쭉 지니고 사셨을 테니 내가 봐도 우리 부모님, 좀 안되셨다.


백수 이모는 사랑하는 두 생명체들에게 딸랑이와 양말 1개씩을 건넨다. 얼굴에 붉은 기가 남아 있는 두 조카 녀석들이 두 팔을 바동거린다. 이모가 손에 쥐여 주는 딸랑이를 잡았다 놓쳤다가를 반복한다.

“다음엔 이모가 더 좋은 것 사 줄게.”

녀석들이 웃는 것 같다. 내 선물이 꽤 마음에 드는 건가. 엄마나 아빠가 준 ‘생명’이란 선물 외에 타인에게 받는 첫 선물. 녀석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지금은 녀석들의 시선과 녀석들의 웃음이 진짜라고 믿고 싶다.



생애 처음이라는 말이 붙으면 모든 게 색다르다. 그리고 아름다워야만 할 것 같다. 첫눈, 첫사랑, 첫인상, 첫 키스, 첫아이, 첫 손자, 첫손가락, 첫발, 첫대목, 첫 무대, 첫음절, 첫마디, 첫 단추를 끼우다, 첫 삽을 뜨다……. 우리 집 두 꼬마 녀석들의 첫 어린이날, 첫 크리스마스, 첫 새해, 첫 생일, 그리고 아이들이 끼우는 인생의 첫 단추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들은 누구보다도 값진 단추를 달아 주고 싶다. 이모인 나도 조카들에게 좋은 단추들을 건네고 싶다.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처음 조카들이 내게 왔을 때 나는 한창 볼멘소리 중이었다. 엄마는 일주일마다 친정집에 찾아오는 딸과 사위를 위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시곤 했는데 그때 동원되는 요리 보조 인력이 항상 시집 안 간 딸내미였다. ‘엄마가 사위 생기니까 내가 귀찮아졌잖아?’ 베란다 장독에서 고추장을 푸면서 푸념 아닌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난 푸념을 한 바가지쯤 늘어놓고 있었다. 동생도 자기 딴에는 시집과 친정집을 번갈아 찾아다니는 것이 고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일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제 좀 덜 와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장인어른, 여기.”

그때 갑자기 말수도 없는 사위가 장인어른에게 다이어리를 하나 선물한다. 뭐지? 다이어리는 펼쳐진 채 아버지의 손으로 들어오고, 나는 그 옆에서 빼꼼, ‘뭔데? 뭔데?’ 하는 마음으로 어깨너머의 다이어리를 훔쳐본다. 그 다이어리는 다름 아닌 ‘산모 다이어리’였다. 거기엔 조카 녀석들의 심장이 작은 별 크기 하나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고만 울컥 울음을 터트리며 주책을 부렸다. 쓸데없이 남 일에 호들갑을 떨었다. 왜 울어? 동생이 나에게 묻다 말고 갑자기 나를 따라 울었다. 이건 너무, 너무나 감동적이잖아? 나의 말이 너무 작위적인 대사 같아 웃기면서도 뭔가 치밀어 올랐는지 어머니도 금세 내 눈물에 전염되셨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저 먼 별나라의 손님들. 그 손님이 오신다는 소식만으로도 우리 집 여자들은 괜히 두근거렸다. 어제는 우리 집에 ‘사위’라는 사람이 생긴 것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은 우리 집에 사위가 생겼다는 사실이 갑자기 너무나도 좋았다. 동생 혼자였으면 꿈도 못 꿀 선물이 나에게도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물론 사위가 생겼으므로 여전히 나는 엄마의 조수다. 그리고 육아의 보조 인력으로 투입되느라 귀찮은 일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 그날을 떠올린다.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 사진 하나, 잘 보이지도 않는 점 하나로 불쑥 찾아온 그 녀석들. 그제야 알겠다. 조카들은 나에게 두 번 다시없을 첫 조카들이다. 그리고 그 조카들에게도,


나는 첫 이모다.

조카들이 태어나 처음 만나는 이모, 그리고 평생에 걸쳐 하나뿐인 이모가 바로 나다. 그 이모가 때론 백수 이모일 때도 있고, 지나치게 호구 이모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를 ‘이모’라는 이름으로 선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별 볼 일 없었던 삶, 그럭저럭 우걱우걱 여태 버티며 살아오길 잘했다. 이모가 될 수 있어서, 아주 작은 크기의 이모 역할이라도 할 수 있어서.


살아가는 동안 조카들에게 언제나 ‘이모’는 줄곧 ‘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웬만하면 다행인 쪽이길 기원해 본다.


그렇게 매일매일 나는 조카들에게 ‘이모’라는 선물이 된다. 아이들은 그 선물을 보며 늘 유쾌한 웃음으로 화답해 온다.

잊고 있었다. 그 자체로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소박한 선물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조카들의 첫 이모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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