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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an 31. 2024

퍽퍽한 인생 레시피

"라면 끓이는 법에 대해 말해 보세요."


먹방 크리에이터를 뽑자는 것도 아닌데 교육을 논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라면을 끓이라고 내게 말한다. 숨은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기나 윤기 없이 몹시 메마른 인생을 살아온 백수다. 오랜 백수의 경험을 살려 저 질문의 심층적인 이면을 파헤쳐 보자.


"네. 저는 '라면이 끓기 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아이들의 열정과 동기가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라면을 맛있게 완성할 때까지 물심양면 지지하고 지원하는 안내자가 되겠습니다."


캬. 내가 생각해도 말 잘했네. 그런데 그때 질문자가 웃으며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은 모름지기 아이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는 라면을 끓이는 법에 대해서 질문했어요. 라면을 끓일 때는 물을 붓고, 불을 켭니다. 그리고 라면을 넣고 수프를 넣습니다. 그다음엔 라면이 익을 때까지 끓이면 되는 겁니다. 라면 끓이는 법 자체를 물어봤었는데 제 질문에 있는 그대로 답을 하지는 못하셨네요."


라면 하나도 못 끓여 본 사람 취급을 당한 후 물러난다. 당연히 합격 전화는 다른 이의 영광이 된다.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였고, 들러리들은 이내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난다.



면접은 이렇게 퍽퍽한 분위기가 집결하는 곳이다. 대개 면접에서는 여러 난감한 상황들이 자주 출몰하곤 하는데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자, 너란 사람은 누구니? (너, 내 자기소개서 잘 안 봤구나?)

-여기서 하는 일이 뭐~게? 맞혀 봐. (그건 너희가 더 잘 알 거 아니니? 아직 회사도 안 다니는 내가 어떻게 아니?)

-전에 했던 일이 뭐야? 우리가 시키려는 일이랑 좀 다른데? (내 이력서 봤으면 알 거 아니야. 일 안 시키려면 여기 왜 불렀어?)

-상사나 동료와 갈등이 생긴다면 어떤 방식으로 싸울래? (싸움 말릴 생각은 안 하고 회사 들어오기 전부터 싸움 붙이냐?)

-우리 회사는 8시 출근이다. 괜찮니? (너라면 괜찮겠니?)

-오래 다닐 사람이 필요해. 다들 걸핏하면 관두고. 쉽게만 일하려고들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왜 다들 쉽게 관뒀는지 너 보니까 알겠다.)

-너, 집이 그렇게 멀어 가지고 우리 회사에 다닐 수나 있겠어? (알면서 그럼 왜 불렀어? 이력서에서 내 주소, 너도 뻔히 봤잖아.)



조카들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날도 면접 하나를 망치고 집에 돌아왔다. 마침 집에서는 한창 경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경사에 맞는 표정으로 바로 얼굴을 고쳐먹는다.


"오, 먹는다. 먹는다. 잘 먹는데?"

역사적인 기념일이라 거룩한 의자에 아가들을 앉히고 여기저기서 동영상을 찍어대며 난리도 아니었다.

"어머, 자기 엄마, 아빠가 정성 들여 만든 거라고 잘도 받아먹네?"


기특해서 모든 식구가 웃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생애 첫 밥을 아이가 쭉쭉 받아먹자 갓 엄마가 된 동생도 흐뭇한 듯 웃었다. 재료 손질이며 다지기, 끓이기 등등 그 이유식을 거의 다 만들다시피 한 제부도 함께 웃었다. 참고했다는 이유식 책을 보니 그럴싸했다. 아이들이 하도 맛있게 먹으니 나도 먹어 보고 싶어졌다. 이유식 그릇에 조금 남아 있던 찌꺼기를 한두 수저 긁어내서 내 입으로 슬며시 가져가 본다.

"에잇. 이게 뭐야."


나는 복지관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며 일한 적이 있다. 만일 내가 아는 어떤 청소년에게 이걸 먹어 보라고 권했다면 그 녀석은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맛있냐?”

"병맛인데요."


내가 먹어 봐도 딱히 맛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가들은 처음 먹어보는 맛에 끌린 듯했다. 게다가 계량 수저와 저울을 사용해 과학적으로 제조했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다. 맛은 없어도 꽤 몸에 좋을 것 같긴 했다.



인생에는 맛이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할 때가 반드시 존재한다. 때론 더 맛이 없어야, 그리고 좀 더 퍽퍽해야 인생 건강에 좋을 때가 있다. 단지 입에 닿는 맛이 '병맛'이라는 이유로 인생이 나에게 내어 준 요리를 뿌리치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현듯 숟가락 위에 물을 붓고 거기에 가루약을 얹어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주던 엄마의 손가락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뱉어 버리고 싶을 만큼 쓰디쓴 약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더 건강해진다. 어른이 되어서도 쓴 약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종종 나타난다. 어른들은 수시로 복용을 감당해야만 한다. 맛없는 인생을 조금 더 견뎌 볼 것이냐, 맛있는 인생을 찾아 떠날 것이냐. 인생은 조금씩 더 어려운 선택을 우리에게 먹이려 한다.



오늘도 나는 면접장에서 내가 아닌 나로 잠깐 빙의하여 본다. 그러나 곧 면접이 끝나자마자 어색했던 그 옷을 집어던진다. 내 몸과 맞지 않은 옷을 벗고 아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건강한 이유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집에 와서 오늘도 거부당한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러고는 한층 더 쓴 레시피(조리법)를 일기장에 기록한다.



<퍽퍽한 백수 레시피>

1. 무일푼 2숟갈

2. 면접관 꼬투리 1꼬집

3. 짠한 기운 0.5g

4. 좌절 1컵

5. 개별 취향 따라 ‘그럼에도’ 1젓갈 이상



백수 이모는 더 맛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퍽퍽한 맛을 참아내기로 한다. 인생은 원래 팍팍한 거니까. 그게 퍽퍽한 내 입맛에도 곧잘 어울리니까.



아마도 '인생'은 좀 더 두고 봐야 맛이 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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