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안 간 이모는 자매의 결혼 후 두 종류의 인간으로 변모한다. 조카들이 너무 예뻐서 '그래도 사람이 시집은 가고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인간, 혹은 '사람이 어떻게 저 정도로 아이에게 다 걸기를 해야 하는가. 시집 안 가고 말지'라고 마음먹는 인간.
당신은 어느 쪽인가? 2016년에는 한 명의 아이를 키워 내기 위한 값을 돈으로 환산하면 3억 897만 원이라는 뉴스도 있었고, 2022년에는 아이 한 명당 월평균 72만 원이 든다는 뉴스(한국에서 자녀 한 명 키우는 데 드는 돈 '월 72만원'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도 있었다. 당신은 2억 혹은 3억을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그 돈을 나를 위해 오롯이 사용할 것인가? 여기 아침부터 3억짜리 두 명, 합이 6억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없는 한 호구 이모가 있다. 그녀가 이모 역할을 할 때를 특히 주목해 본다.
"자냐?"
"네? 아니요."
이불 속에서 잠꼬대를 한다.
"일어났냐?"
"네. 아니요."
내 잠꼬대를 기상으로 해석한 아버지는 안심을 하고 방문을 닫는다.
"8시다."
아버지에게는 지금 육아의 산을 함께 등반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엄마는 오늘 바쁜 일이 있으시다.
"8시야.”
아버지는 한 번 더 8시를 알린다. 나는 시계를 찾아 눈을 힐끔 뜬다.
'7시 45분'
아드드드드드. 아직 8시는 아니라 조금 억울해하며 어제를 걷어차듯 이불을 걷어차니 아침이 오긴 온다. 눈을 비비기도 전에 몸을 반쯤만 추슬러서 펜을 들고 자리를 잡는다. 시간표를 채우는 일은 호구 이모의 꽤 중요한 일과다.
0500 일어나기, 스트레칭하기, 이불 개기
0600 도서관 향하고 있기, N5 일어 단어 훑기, 구○ 일어 학습지 5장
0700 영어 동화 2분 듣기, 추측해서 따라 쓰기
0730 책 읽기
아니 아니, 벌써 8시잖아. 오늘도 이렇게 계획은 계획으로만 남는구나.
-띠딕
-까ㄸ옥
-따라라라
그때 제각기 같은 앱의 알림 음이 동시에 세 번 울려댄다. 이건 SNS 가족 채팅방 속 동생의 알림이다.
"뭐래요?"
때마침 외출 준비 중이던 엄마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내 휴대폰을 챙겨 보면 되지만 주말 내내 가방 속에만 있던 휴대폰, 꺼내기도 귀찮다.
"설사한대."
"헐. 왜, 또? 뭐 먹었는데? 물이래?”
"어. 물처럼 한대."
"애고. 둘 다?"
"둘 다 그런지는 모르겠고, 병원 가 봐야겠다고."
나는 고 조그만 것들이 또 속이 아파 어쩌나 싶어 엄마와 함께 한숨을 쉰다. 아무래도 장염이 또 온 것인가 보다. 그 조카 녀석들 대신 100만 번이고 내가 대신 다 아파 주고 싶다. 평소에도 장이 안 좋아 ‘장 트러블메이커’인 나는 얼마든지 그들을 대신해 팡팡 싸 줄 수도 있다고 자신 있게 호언을 한다. 내 장은 화장실 고행에 이미 단련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 우리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제치다 만 이불을 쑥 책상 밑으로 집어넣으며 엄마를 올려다본다. 엄마와 나는 이미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엄마는 이미 문자를 치고 계시다. 이윽고 한 번 더 띠딕,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우리 집으로 그냥 데리고 와야겠네.
이번엔 내 휴대폰을 찾아든다. 엄마의 문자가 내 휴대폰에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야겠네.'라는 글자로 떠오른다.
"힘드시겄네유. 죄송하구먼유."
우리 집 '갑' 중의 '갑'이었던 동생은 아이를 낳고서 이유 없이 '을'이 되었다. 최근 들어 '죄송한디유'라고 시작하는 문장을 손끝에 달고 사는 동생이다.
자, 그러나 그건 그거고, 오늘 하루, 정말 거친 하루를 예상해 본다. 다시 펜을 쥔다.
0800 아부지랑 동생네서 아이들 데려오기
0820 애들 아침 먹이기, 옷 입히기
1000 소아청소년과 가기, 약국 가기
1100 꼬맹이 두 친구들 돌보기(본격 육아)
1300 억지로 재워 보기, 자소서 수정
1500 다시 육아 돌입
……
2100 이부지랑 조카 녀석들, 자기네 집에 데려다주기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은데?”
오늘은 약속이 있는 ‘할무니’를 대신해 두 육아 매니저('하부지', '이모')가 생애 만 1년을 넘기고 있는 연구 대상 1호와 2호를 골똘히 연구해 본다. 우선 한 명은 하부지가 맡기로 한다. 하부지는 유모차에 연구 대상 1호를 태운다. 나? 나는 아기띠를 장착한다. 허리에 안전띠를 하나 딸깍 매고 칭얼거리느라 잔뜩 화가 나 있는 연구 대상 2호, 둘째 녀석을 불끈 껴안는다. 내 가슴에 찰싹 밀착해 2호를 당겨 안고 어깨 뒤쪽 벨트를 보지도 않고 팔을 돌려 채운다. 머리카락이 벨트에 걸려 한 움큼쯤 뜯겨 나간다. 괜찮다. 이제 애 낳을 일도 없을 테니 산모 되어 빠질 뻔했던 머리, 지금 빠진다고 여기면 된다.
여름이 참 지독하게 생떼를 쓰던 그때, 나는 아파트 뒤꼍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을 걷는다. 아직 완벽하게 걷지 못하는 녀석 하나가 내 품에서 소란스럽게 잠잘 채비를 한다. 분유를 줘도 짜증, 우유를 줘도 짜증, 부채질을 해 줘도 짜증이다. 어찌해 달라는 것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은 아직 말을 시작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되돌아온 혼잣말을 계속해서 혼자서만 주고받는다. 아가를 얼싸안고 ‘둥둥둥,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자네, 자네, 우리 아가’와 같은 거짓말로 잠들 아가의 미래를 희망 삼아 예언해 본다.
2시. 내 시간표대로라면 아가는 지금쯤 잠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곳에 있다. 지금 나는 너무 뜨거워서 얼굴이 달궈지는 중이다. 태양처럼 지독한 한때가 내게 덮친다. 머릿결이 태양 아래서 바스락거릴 정도로 빠르게 말라간다. 유례가 없는 폭염이 마지막 남은 내 젊음을 한창 녹이고 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이모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듯한 자장가를 부르며 샛길 바람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빈다. 이모조차도 졸릴 만한 은근한 자장가가 계속되고 대낮, 뜨거운 태양만 빼고 잠시 정적이 찾아온다.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가를 내려다본다. 가슴팍에 폭 파묻혀 있던 아가가 입을 조금 벌린 채 두 눈을 조심스럽게 감는다.
'봐봐. 이렇게 사랑스럽잖아?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자고 있어서 그런가?'
그러다 조카를 쳐다보다 말고 그제야 나를 본다. 아기띠를 매고 조카를 잠재우고 있는 이모의 모습. 참 흔하지 않은 모습이다.
'너, 잘하고 있는 거야.'
이건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고, 이런 아가들이라면 호구가 된들 어떠냐고, 너의 희생 및 봉사를 크게 치하하노라고. 나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어 스스로를 조금쯤 칭찬해 본다.
나를 찾아 훌쩍 떠나지 못하고 가족 옆에 붙들려 있다고 때때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바로 호구 이모,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틀에 갇히거나 틀에 걸려 넘어지기를 수차례. 나를 아무 사 없이 받아 주는 곳은 이곳, 가족이라는 틀, 가족이라는 울타리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태양 빛은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올려다본 태양은 아직도 세상 한가운데서 뜨겁게 제빛을 뿜는다. 이모의 지독한 한때가 뉘엿뉘엿 넘어갈 채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