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랑이다.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또 구태의연하게 조카들 이야기냐고? 글쎄, 그것보다 원초적인 사랑을 먼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오늘 우리의 백수 이모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 속 주인공은 사랑했던 누군가를 찾고 있다.
자꾸 네가 생각나. 너를 보내고 알았어.
아무것도 재미가 없었어. 하루하루가 괴로웠어.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몰랐던 거야.
함께 있을 땐 영원할 줄로만 알았지. 내 착각이었어.
너만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모는 오늘도 가진 건 몸뚱어리뿐이라며 몸이 부서지도록 집 안 환경미화에 동참한다. 꽃무늬 바지 뒷주머니에 휴대폰을 쑤셔 넣고, 귀에도 이어폰을 쑤셔 넣는다. 함께 청소 중인 부모님은 이 여자를 가만히 지켜만 보신다. 또다시 백수이고도 천하태평으로 노래나 불러 대는 첫째 딸. 아마 대견해서 몸 둘 바를 모르시겠지. 그러나 이 이모는 노래라도 불러야 한다. ‘참 속도 좋다’라고 보이기라도 해야 한다. 이모는 자기 귀에만 들리는 멜로디 반주에 맞춰 사랑 노래를 재잘거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사랑 노래 속 ‘그대’가 ‘돈’으로 들린다.
자꾸 네(돈)가 생각나. 네(돈)가 없어 하루하루가 괴로웠어. 곁에 있을 땐 몰랐어. 다시 돌아와 줘. 너(돈)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어. 너(돈)만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대'가 떠나고서야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깨닫는다.
"집구석에만 있지 말고 좀 나와. 날씨 죽인다야."
친구는 백수일 때 더 자주 볼 수 있으니 외려 잘 됐다며 일단 만나자고 나를 꼬인다. 하지만 이미 백수 속은 속이 아니다. 죽이는 날씨에도 침묵하는 자가 백수다.
"바빠, 나. 청소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백수의 시간은 백수만의 시간이 아니다.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백수의 시간을 가져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 장난해? 청소한다고 안 나온다고?"
"나 이따 어린이집에 애들도 데리러 가야 해. 부모님들만 가시면 두 명 감당하기 힘드실 거야. 동생도 오늘 늦는다고 하고. 제부도 늦을 것 같고."
"야, 툭 까놓고, 그 아이들이 네 애들이냐?"
나는 '육아 동참'이라는 사실을 핑계 삼아 약속을 새로 만들지 않는다. 집 밖에만 나서면 '그대(돈)'가 아쉬워지고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나를 전혀 돌아다보지 않는 '그대(돈)' 생각에 손을 벌벌 떨며 '카드깡'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쉴 때 너, 남자 한번 만나 볼래?"
아직도 내게 그런 말을 해 주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쉬고 있고 놀고 있는 사람을 구태 만나려고 하는 자가 있을까?
"음. 난 괜찮우."
누군가를 새롭게 만난다는 것도 나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너 진짜 남자에 관심이 없나 보구나."
실망하는 목소리가 내 가슴 밑바닥까지 전해진다. 친구의 소망인 '친구끼리의 가족여행'을 끝끝내 실현해 주지 못할 것 같다. 자식을 낳으면 사돈이 될 수도 있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우리의 이야기는 너풀너풀 과거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우리 집 환경미화를 모두 마치고 나는 그냥 나만을 위해 비어 있는 유일한 내 자리, 내 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켠다. 오늘도 뉴스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스에서는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국민들이, 특히 취업이 절실한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정규직이라도 있어야 가지.'
'몸이 바빠야 입이 바쁘다'라는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큰이모께서 나에게 자주 해 주시던 말씀이다. 몸이 바쁘도록 일을 해야 입안에 들어갈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바쁠 정도로 일을 해 돈을 벌면, 정작 입이 먹고 즐길 시간이 많지 않다. 반면 입이 먹으러 갈 시간이 남아돌 땐 당연하게도 돈 구경이 힘들어진다. 돈과 시간, 그리고 '놀고 있는 몸'과 '먹이를 찾아 나서려는 입'의 팽팽한 줄다리기. 물론 어느 쪽을 포기해야 할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일단 직장인이나 되고 나서나 생각할 문제다. 지난 시간들을 곱씹으면서 ‘난 언제쯤 몸이 바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이런. 세상이 내게 거는 말은 주로 이런 종류다. 내 통장에 아직도 내 사랑, '그대(돈)'가 있는 줄 알고 그를 불러내려 했다. 그러나 사랑은 떠났다. 바리바리 구석구석 자기 짐 하나까지 모조리 다 싸서 떠나 버렸다. 나는 은행 기계가 토하듯 뱉어낸 내 카드만 도로 받아 들고 은행 문을 나선다. 그때다. 백수에게도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들이 있다.
-띠딕.
은행을 나서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무슨 소리인지 확인해 보니,
○○○님께서 3___________*** 계좌로 ○○○,○○○원을 송금하셨습니다.
동생님께서 육아에 매진하는 나에게 응원의 용돈을 보낸 것이다! 입꼬리가 차츰 승천한다. 입꼬리에 필러를 채워 웃는 인상을 만들어 주는 시술까지 나오고 있는 요즘, 공짜로 입꼬리가 올라갔으니 나는 백수 이모면서도 공짜로 돈을 번 셈이다. 나는 '뭘, 이런 걸 다'라는 메시지 위에 신나게 춤을 추는 이모티콘을 함께 얹는다. 내 마음에 '그대'가 가득 들어온다.
언니도 아니고 동생한테 얻어 쓰는 용돈이라니, 좀 그렇겠다고? 오, 아니요. 원래 언니 같은 동생이었어요. 오늘부터 동생을 언니라고 부를 참인걸요. 게다가 예수님도 서로를 사랑하라고 했다. 돈과 나는 좀 서로를 사랑할 필요가 있다. 자, 그럼 오랜만에 '그대(돈)'와 함께 뭐부터 질러 볼까나?
돈이 금세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곧 가라앉겠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다.
돈이 있어 좋긴 좋다. 백수에겐 역시 ‘돈’이 진리다.
세상, 너는 돈이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서 때때로 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