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Jan 30. 2024

부록1_온종일 너와

너의 소식을 듣고 너를 기다린다.


내 일정을 급히 다 접고 너만 기다린다. 얇은 바지 하나만 입고서 너 온다는 거리에 선다. 찬바람 가운데를 서성이는데도 어쩐지 춥지가 않다. 네가 갑자기 온다고 해서다.


온다고 하니 문득 더 보고 싶은 너.

그런데 아침에 무얼 잘못 먹었던 걸까. 30분 거리의 어린이집을 오가느라 멀미가 났던 걸까. 등원하자마자 너는 이모네로 하원.


제 아빠의 차에서 내리는 너를 온몸으로 받아 내린 후 네 두 손을 내 두 손에 꼭 안고서 이모 집으로 향한다.


"이모, 놀자."

응? 배 아프다고 하지 않았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네가 하는 말. (평소에도 늘 이모만 보면 하는 그 말.) '놀자'라는 단어를 들으니, 어린이집에서 토했다는 녀석치고 조금은 씩씩해 보여 그래도 안심이다.


온종일 우당탕탕.

망가진 음악 테이프 필름을 꺼내 집 안 이곳저곳에 이어 붙이며 레이저 광선 피하기 스파이 놀이를 하고, 검정콩을 죄다 쏟아 콩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콩 줍기 놀이도 하고, 평소 만들어 놓은 고유어 카드로 보물찾기 놀이도 하고, 정전기 부스터를 이용한 풍선 공중 부양 놀이도 하고, BBC Earth 방송 틀어 자연과 먹거리를 좋아하는 널 위해 심해 다큐멘터리와 푸드 팩토리 다큐멘터리도 혼을 빼고 보고.


그렇게 꼬박 해가 지고 밤이 다 지도록 놀아 놓고,

이제 그만 집에 오라는 제 엄마의 전화에,

"오늘 이모랑 많이 못 놀았단 말이야."


(읭? 지금까지 난 온종일 뼈 빠지게 너랑 놀았는데 그건 다 뭐고?)



너와 온종일,

그렇게 온종일.

푹신하고 통통한 네 뱃살, 내 뱃살 서로 껴안고 서로 부둥키고 서로 키득거리며,

온종일 그렇게 너와 하염없이 뒹굴뒹굴,

한없이 너와,



그렇게 오직

너와 온종일,

너로만 물들었던

우리의 하루

이전 06화 이모의 지독한 한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