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도 잘 적지 않던 '자랑 이야기'를, 이 브런치 지면에다 대놓고 하려 한다. 이럴 일인가 싶은데 어쩌면 이럴 일이다. 오늘만큼은 자랑을 '일삼는', 즉 '일로 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무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뿌듯해서 내 뇌세포 속에만 담아 두기 아까워 자랑을 해 본다. '하루 15분 독서'라는 오픈채팅방(주최: 경험수집잡화점)이 있다. 거기서 오늘 읽은 책의 제목과 읽은 책의 분량 및 독서 시간을 인증한다. 그러다 작년 5월에는 급기야 '읽은 분량' 분야에서 한 달에 5245쪽을 읽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2023년 12월에도 3073쪽을 읽어 (분량 분야에서) 2위에 오르는 아주 기분 좋은 결과물을 얻었다. 시상식으로 치자면 나는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이나 은메달을 딴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금빛 역영(力泳)을 펼친 카타르 도하의 김우민 선수, 황선우 선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눈부신 레이스에 압도되곤 했다. 나도 이 선수들처럼 알게 모르게 열심히 '독서 역영', 아니 역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 개헤엄'쯤은 친 것이 아닐까? (아, 참고로 난 수영을 못 한다.) 물론 수영 선수들처럼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 것도 아니고 뉴스 머리기사를 장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꾸준함으로 치자면 나의 독서, 꽤 끈질긴 레이스였다고 스스로(는) 으스대 본다.
"근데 그럼 뭐라도 주는 거야, 그거?"
'어? 어.. 엄마...' 내가 자랑을 했더니 엄마가 내게 다짜고짜 이런 말씀을 하신다. 물론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사진 출처: 경수점 수료증 하지만 이렇게 무려 수료증을 받는다! 수료증 10개를 모으면 커피(?)를 준다고도 했던 것 같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모으고 있다.)
어느 날엔 하루에 12분만 읽을 때도 있고 어느 날엔 하루에 책 한 권을 다 읽어 치울 때도 있다. '완독'이라는 표시로 인증을 할 때도 있고 인증을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날도 있다. 누가 무척 알아주는 일이 아닌데도, 나는 꾸준히 '책 읽기 인증'에 열을 올린다. 특히 채팅창에 '완독'이라는 글자를 쓰는 순간에는, 마치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해낸 사람처럼 스멀스멀 자부심, 혹은 '독서부심'이 차오르곤 한다. 그것 하나를 얻었다면 독서인으로서 상당한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방금 자랑했다시피) 하루에 책을 15분 이상 읽는다고 인증한 지 어언 600일이 되었다. '우레'의 박수 소리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600일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채팅방에서 '축하 인사'를 여럿 받았다.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시간을 내어 보내 준 이모티콘은 꽤 귀여웠고 선명하도록 따뜻했다.
그제는 600일이었지만, 곧 700일이 와 줄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여기에 또 자랑을 하러 올지 모른다. (1000일이 되면? 그때도 또 와야지. 세상에, 1000일?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던가?)
이게 이럴 일인가 싶지만 내가 넘긴 600개의 책장들, 내가 찍은 600개 발걸음들이 꽤나 자랑스럽다. 내가 하는 내 칭찬은 나의 하루를 '기특'과 '기쁨'으로 채운다. 책장을 넘기는 그 기쁨은 나를 결코 기만하지 않는다.
오늘 밤에도 잠시 후 나는 나를 인증할 생각이다.
봄책장봄먼지/602/지지 않는다는 말/1/299/140/완독
(이름/누적 날짜/책 제목/시작 쪽/마지막 쪽/읽은 시간/완독)
소소한 인증들이 이렇게 나의 길을 만든다.
그 길을 혼자, 혹은 같이 걸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