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책장봄먼지 Feb 26. 2024

매일 글 쓰니까 살이 쪄요

12월 21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는 아니고 하루 빠지고) 매일같이 글을 썼다. 글쓰기 모임에도 의기양양 석 달째 참가를 하고 있다. 새해 다짐이 원래 그렇지 않던가. 검을 들었으니 그저 무라도, '브런치 글쓰기 무'라도 썰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무'가 잘 썰리지 않는다. 깍두기도 해 먹고 무나물도 해 먹고 동치미도 담가 먹으면 좋으련만 썰기조차 어려우니, '매일 글쓰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닌 듯하다. 

물론 '매일 글쓰기'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글쓰기 푸념을 이곳에 한 바닥 잔뜩 늘어놓아 본다.


1. 글쓰기 소재 고갈

보통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아, 곧 있으면 오늘이 끝나는데 마감 전까지 대체 무얼 쓰지?' 그래서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급히 메모를 해 둔다. 원래 평소에도 메모는 자주 했으나 메모 정리를 제대로 해 두지 않는 아주 '못된' 습관이 있었다. 이 습관 고치는 데는 '글쓰기 소재 압박'만 한 특효약이 없더라는... 아, 그리고 비책 가지 더. 자구책, 궁여지책으로 '돌아보고 내다보고' 시리즈를 일주일마다 일요일에 써 보기로 하였다. (오호, 일요일 소재는 이렇게 저렇게 때울 수가 있겠군! 그리고 수요일이나 목요일에는 그동안 읽었던 청소년 소설을 독후감으로 써 보는 거다!) 매일 쓰다 보니 노하우는 조금 생기나 보다.



2. 그 나물에 그 밥 전략

매일 쓰니 번뜩이는 글맛이나 자극적인 서사 따위는 내게 없다. 하루하루 계속해서 쓰다 보니 내가 글을 쓰는지, 글이 나는 쓰는지 모를 정도로 나와 글이 뒤섞인 듯하고, 매일 쓰는 글이 어째 똑같은 기승전결과 비슷비슷한 뉘앙스를 주는 듯하다. 한마디로, 내 글은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좀 '질리는 맛' 같다는 느낌이랄까. 석 달째 '매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보니 읽으러 오시는 분들도 '이거 전에 했던 이야기 아니야?'라고 고개를 갸우뚱하실 것만 같다. 뭔가 좀 새로운 전략이 없을까? 내 삶에서 요즘 서사가 줄어들어 그런 걸까? 



3. 입만 살아 있는 글

어느 날 문득 내 글을 나 스스로 피드백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입만 살아가지고, 아니 글만 살아가지고..."

청소년 소설에 관한 독후감을 쓸 때 특히 그러했다. 청소년 소설에 관한 애정이 평소 큰 편이다. 작년에는 '한 주에 한 권씩 청소년 소설 꼭 사기', '한 주에 두 권씩 (책 빌려다가) 청소년 소설 읽기', 뭐 이런 원대한 계획도 세웠다는 후문. (그런데 잘 지키지는 않았다는 소문.) 졸작이지만 청소년 소설도 딱 두 번 써 보았다. 응모하여 시원하게 미끄러졌지만. 자, 각설하고.. 

그런데 청소년 소설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쓴 나의 독후감이 약간 공중의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하다 보니 내가 이제는 '청소년들과 만나지 않고 있어서'라는 중대한 결론에 다다랐다. 청소년들과 한창 뒹굴며 직장생활을 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으로부터, 그 청소년들로부터, 내가 지녔던 청소년에 관한 애정과 문제의식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그 거리를 좁히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목소리를 내거나, 나의 작은 일상에서 무언가 실천하는 방식으로라도 나의 글을 나의 삶으로 옮겨 올 순 없을까, 고민'만' 깊어진다.



이렇게 푸념이 많은데도 매일같이 글을 쓴다. 브런치에 쓴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만 같다. 부담을 가지고라도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1. 몸이 살찐다

자꾸 앉아서 글을 쓰니까 살이 진짜 찌긴 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건강한 돼지'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데 몸의 부위 가운데 '뇌'가 특히 살이 찐다. '잡다한 생각'들로 살이 찐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민하게 뇌세포를 굴려 댄다. 그러다 보면 몸과 더불어 '마음'도, 좀 더 고귀한 어휘로 표현하자면 '영혼'도 살이 찐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고도 귀여운 문장이 떠오르고, 쌍둥이 조카의 볼멘소리에도 필기구를 급히 들게 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늦은 하루를 시작했다는 말끔함을 글로 쓰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면 이른 하루를 시작했다는 뿌듯함을 글로 쓰며 영혼의 살을 찌운다. 글을 쓰면 이렇게 몸도 마음도 살이 찐다. 



2. '오늘'이 살찐다

오늘 있었던 일, 흘러가 버려 증발되고도 남았을 일에 이제는 어지간하면 의미를 부여한다. 떠나려는 오늘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정말? 갈 거야? 뭐 더 없어? 글 쓸 소재 부스러기라도 좀 없냐고? 말 좀 해 봐. 오늘 내가 뭐 했니? 언제 기뻤지? 언제 뾰로통했지? 말 좀 해 보라고." 이렇게 '오늘'을 달달 볶다 보면 '오늘'의 이야기가 갑자기 풍성해진다. '오늘'을 괴롭히는데도 '오늘'은 살이 빠지지 않고 통통해져서 나의 기록과 추억으로 남는다.


3. 관계가 살찐다

매일 글을 쓰니, 나의 브런치가 살이 쪘다. 요즘 한창 덩치를 키우고 있는 나의 브런치는, 올해만도 벌써 50개가 넘는 글을 발행했다. (작년에는 달랑 8개의 글 발행.) 내 브런치가 살이 찌니 가끔 놀러 와서 공감을 꾹 눌러 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계신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은 무려 댓글까지 달아 주시기도 한다. 이름 모를, 얼굴 모를, 취향 모를 그분들이 자신과 결이 안 맞을 수도 있는 나의 브런치에 와서, '그래도 매일 글 쓰니 수고하네'라는 듯이 툭툭 나의 '브런치 등'을 두들겨 주신다. 이 느슨하고도 의외로 단단한 '브런치 연대'의 끈. 이 끈으로 나는 조금씩 관계를 살찌운다. 



자, 그럼 앞으로도 매일 글을 쓰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뾰족한 수, 신의 수, 별다른 수는 없다. 그저 나부터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 자체를 신명 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쓴다면, 그것이 조금씩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리고 끝내는 열매를 맺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거룩한 열매가 나의 땅에 떨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사계절을 쓰는 일, 내 삶 전체를 쓰는 일과도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열매를 품고 글을 쓰는 것과 같다.


적어도 한 명의 독자가 있다면.

즉,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매일 쓰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글은 충분하고 온전하다. 


작가의 이전글 돌아보고 내다보고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