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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02. 2024

타임머신 편지의 방문

봄맞이 옷 정리를 하다가, 과거의 나를 만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편지'라는 형식으로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온 것이다.


동생이 행여 타지에서 외로울까 봐 '엄청난 부지런함'을 발휘하여 일주일에 두세 통씩 편지를 부치곤 했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쪽이었다. 대개는 답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만큼은 동생도 내게 답장을 해 주었다. 나는 손 편지, 동생은 이메일로.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동생이 캐리어에서 육중한 부피로 무언가를 꺼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동생에게 보낸 내 편지들이었다. 언니가 쓴 것이니 무거워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낑낑대며 그것을 굳이 다 챙겨 왔던 것이다.



그러나 동생이 시집을 가면서까지 챙겨 갔던 나의 편지가 돌고 돌아 우리 집 붙박이장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내가 '반송'이 된 것이다! 동생은 누군가 써 준 편지를 다시 들춰 보며 감상에 빠질 성격은 아니었고, 나와 달리 정리와 정돈에 일가견이 있는 터라 내 편지들이 좀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동생의 배려도 있었다. 자기 언니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언니의 글'을 되돌려 주겠다는 큰 뜻을 품었던 것. (굳이 '반송'에 좋은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나 역시 내게 편지들이 무작정 반가웠다, 마치 과거의 내가 다시 나에게 편지를 보낸 것처럼.


그런 편지를  아주 오래 그냥 묵혀만 두었다.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며 이사만 하게 했다. 그러다 오늘 다시 나의 눈에 들어온 편지들. 고것들을 보니 직접 우체국으로 가 두세 통씩, 혹은 대여섯 통씩, 그간 써 놓았던 편지를 한꺼번에 부치던 옛 시절의 내 발걸음들이 떠오른다. 동생을 걱정하며 동시에 나의 이십 대를 걱정하던 시절의 발걸음들. 발걸음들엔 아직 희망이, 기쁨이, 즐거움이, 약간의 불안만큼이나 기대가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동생은 그 시절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편지들도 무사히 귀국했다.


살면서 '무사'가 다행인 순간들이 제법 많다. 늘 힘이 되어 주는 쪽은 동생이었는데, 그때만큼은 내가 잠시 '힘이 되어 주는 쪽'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잘하는  하나 없지만 '편지 쓰기'만큼은 질리지도 물리지도 않았던 과거의 나에게 감사를 전한다. (긴 문장, 긴 호흡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었다.)



과거에서 시간 여행을 온 나의 편지들. 그들방문이 뜻밖의 추억을 준다.


반송된 과거의 나,

오늘은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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