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물었다.
-너 MBTI가 뭐야? 난 ISTJ.
-난 INFP.
세상에. 우리 I 빼고 완전 달랐네? 꽤나 잘 통하고 취향도 비슷한 친구가, 알고 보니 매우 다른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BTI가 성격을 규정하는 절대적 장치인 것은 아니지만 나도 친구처럼 제법 놀랐다. 우리가 그 정도로 달랐다고?
그러나 그 의문은 금세 해결되었다. 원인 파악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동거인이신 부모님께 실험(?)을 해 본 결과 두 분이 모두 ISTJ셨던 것이다! ISTJ와 평생 합을 맞추며 살다 보니 ISTJ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이들과 한 집에 살면 약간의 고충이 있긴 있다. 오늘과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아니, 푸바오 가는 길에 사람들이 막 통곡을 하고 그러던데? 어디 멀리 떠나는 것처럼 곡소리를 내더라고."
오랜만에 동생 포함 가족들이 모인 자리였다. T형에다 J형인 이분들은 푸바오를 보내며 빗물처럼 눈물을 흘리는 그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런가? 나는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던데...'
오늘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났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여러 '푸덕(푸바오 덕후)'분들이 배웅을 나갔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푸덕'도 아니고 푸바오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 푸바오의 귀여운 영상을 보며 웃음을 짓곤 했다. 푸바오 환송 영상 속에서 눈물의 인터뷰를 하시는 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푸덕'인 그분들이 모두 F형이고 죄다 '과몰입러'여서 그런 걸까?
푸바오의 성장 서사에 몰입하고 공감한 부분은 물론 있을 것이다. '푸멍'을 하며 많은 위로를 받고 푸바오의 동작 하나하나에 세간의 시름을 잊고 그 대신 미소의 주름이 얻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 배웅을 나가신 분들에게 푸바오는 그냥 단순한 '곰'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이자 '오랜 친구'가 아니었을까. 왜, 자연을 보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고 차분해지고 다시 기운이 나기도 하고. 또 마찬가지로 '오랜 친구'를 만나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도 위로를 받고 기운을 얻고 친구가 웃어 주면 그게 또 묘하게 힘이 되고.
푸바오가 그분들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전제는 'F형'과 '과몰입러'에게 꽤 치명적인 슬픔이다. '회자정리'라지만 '거자필반'을 믿고만 싶은 마음. 그게 F형이나 과몰입러의 감정 서사가 아닐까.
오늘 F형(감성형)인 나는 '푸덕(푸바오 덕후)'분들께 과몰입하여, 푸바오의 안전과 행복과 건강을 기원해 보련다. '과몰입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저래'의 대명사가 되거나 '오지라퍼'의 이름으로 불릴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과몰입러'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세상을 살맛 나게 만들 수도 있다.
F형 과몰입러,
내일은 또 어떤 일들에 감성적으로 과몰입해 볼까나?
(사진 출처: OpenClipart-Vectors@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