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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06. 2024

흑역사 제조 목차

구상 중

구상 중이기만 한 것들을 활자로 늘어뜨리면 어떻게든 글 하나로 이어지지 않을까? 그래, 글쓰기 소재 고갈로 머리를 쥐어뜯을 미래의 나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보자! 그래서 지금부터 흑역사일지 목차를 꾸리려 한다. (재작년인가, 블로그에 써 놓았던 글을 다시 한번 다듬거나 보태고 뒤바꿔 볼 예정이다.)


흑역사라면 넘치고 넘친다. 내향적인 사람이라 어디 나서는 일은 적지만 외려 그래서 흑역사 제조가 더 수월했다. 흑역사 뚜껑을 열다 보면 뜨끈뜨끈한 흑역사 국물에 손이 델 정도다. 그 국물에 한바탕 어푸어푸하였던 기억들을 몰래 끄집어내어 대놓고 씹고 뜯고 맛보려 한다.



1.누가 보면 염소인 줄

발표불안이나 무대 위 공포증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선생 혹은 강사라는 자가 말끝에 양을 매달고 "안녕하세요오오오오오..... 저는 누구입니다아아야야양양~~~"

이게 심해지면 사회불안공포증 같은 것이 되는 건가 싶은데 아직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2. 얌전한 고양이 술 부뚜막에 제 발로 먼저

꺼내는 손길마저 부끄러움에 붉어질 판인 아주 몹쓸(?) 기억. 직장 내 연수 뒤풀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빙 둘러앉아 한 잔씩 마시라고 강권을 하는데(완전 '술 권하는 사회') 사회적 요령이 부재했던 나는 곧이곧대로 주는 술을 넙죽넙죽 다 받아 마셨다. 그리고 곧 블랙아웃. 그사이에 대체 나는 어디서 무얼 한 걸까. (다음 날 내가 입고 있던 옷은 또 왜 처음 보는 옷인고? 으잉?)



3.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빚은 참극(?)

"제가 대신 낼게요."

호기롭게 카드를 댄다. 아저씨가 훠이훠이 물러가라는 손짓으로 나를 내쫓는다. 나를 지켜보던 아이는 어리둥절. 착한 척하려다 심장 시뻘게진 이야기가 곧 시작된다. (고등학생 때 본의 아니게 아주머니 '삥'을 뜯었던 사건도 덤으로 고백하려 한다. 개봉 박두.)



4. 저기요, 제 허벅지에서 손 좀 치워 주실래요, 이 미친X아?

노출증 환자를 맞닥뜨린 사건.

"넌 좋겠다. 통통해서. 블라블라블라."

위의 문장은 지극히 순화한 문장이다.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용어를 쓰던 미친 아저씨1과 버스에 앉아 불량 접촉을 시도했던 미친 아저씨2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당시 나는 어버버거리며 신고조차 못 했다. 

(근데 이거 과연 나의 흑역사인가? 당황해서 제대로 맞대응을 못 한 것이?)



5. 오빠, 이번이 벌써 100번째 편지네요

아, 그... 그만. 왜 그렇게 많이 썼을까.... 

할 줄 아는 거라곤 편지 쓰는 일밖에 없어서 짝사랑하는 이들에게 '손 편지'라는 사랑을 남발하고 다녔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낼까. 나의 모자라고 찌질한 부분까지 모두 활짝 개봉하며 건넸던 나의 편지들... 그들은 그것들에 조금이나마 환호했을까, 아니면 수백 통의 종이 선물에 숨이 막혔을까?




이 밖에도 흑역사는 많다.

누런 니 사건, 오른손잡이 편입 사건, 예쁜 애 옆에 있던 안 예쁜 애 사건, 조카에게 팽 당하기 사건, 걸스카우트 왕따 사건, 한 권의 책이 되어 버린 퇴사 사건, 대필 사건, 옹졸한 여행 사건, 동네 춤꾼 사건, 반년 뒤 답장하기 사건, 내 마음대로 심부름 재해석하기 사건 등등. 너무 많아 말하기 아프고 쓰기 아플 지경이다. 왜 이런 흑역사들을 쓰레기통에 고이 접어 버리지 않고 되레 재활용하려 하느냐고? 나 혼자 보기 아까워서도 아니고 타의 귀감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지금은 그저 흑역사가 '한도 초과' 상태라서 폐기 및 재활용이 필요한 상태이다. 이 모든 역사를 털고 나면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흑역사 목차를 쓰다 보니, 나 참 잘(?) 살아왔다. 흑역사가 많다는 것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은 아니란 소리! 무언가 작은 발자국이라도 남기며 살아왔다는 소리다. 돌아보니 내가 꾸려 온 흑역사가 제법 많다. 엘리트 코스 밟으며 실수 없이 완벽하게만 살았다면 지금쯤 재미도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실수는 하고 볼 일이고 흑역사는 제조하고 볼 일이다. 


5월 중순쯤, 이 흑역사 일지를 브런치에도 각색 및 연재하며 내 인생 전반전을 되돌아보려 한다. 울고 웃었던 흑역사들이 나에게 '글쓰기'라는 통로가 되어 줄 것이니, 과거의 나에게 미리 감사를 전해야겠다. 



고맙다. 앞으로도 흑역사, 잘 좀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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