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처분을 면한 아버지의 시간

내다 버리지 않은 시간들

by 봄책장봄먼지



내일쯤, 비가 오면



무심결에,

집사람의 전화 통화를 엿듣고 있습니다.


-뭐라고, 아니, 집에 있는 영감도 한강에 내다 버릴 판인데, 뭐, 새 영감 얻어 남도(南道)로 떠난다고? 너 정신 멀쩡한 여자 맞아, 환갑 지난 나이에 두 번 송장 치를 일 있냐. 정신 차려 이 여편네야…….

몇 년 전 홀로 된, 절친한 고향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로워서 그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 ‘외로우니까 사람이란다.’

-그래도 외로워서 그래. 이해해 줘……. 남편이 있는 너는 그 외로움을 이해 못 할 거야.

-미친X. 지랄하고 있네. 오죽하면 집에 있는 영감도 내다 버리고 싶겠냐고…….

-너희 남편이 너를 내다 버린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사람 일은 모른다……. 그래도 부부는,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거야…….


내일쯤, 비가 오면

마포대교로 산책을 나가

비 오는 한강을 보고 싶습니다.


2012. 9. 1.





우리 아버지, 젊었을 적에는 돈도 잘 벌어 오고 목에 힘도 주고 사셨으리라. 지금은 나이만 늘어가고 돈은 좀체 늘지 않는다. 목뿐 아니라 몸에도 힘이 슬슬 빠진다. 사람이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면 그 자리엔 외로움이 대신 쌓이는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글 속에는 ‘두 번 송장 치를 것을 각오하고 새 영감을 찾아 떠나는 어느 중년의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처럼 ‘외로워서’, 그리고 ‘사람이어서’ 우리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상에 젖은 서평만을 아버지의 글에 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시를 읽고 딸 하나가 딴죽을 걸기 시작한다. 엄마를 대신해서 밭다리로든 안다리로든 아버지의 글을 걸고넘어지며 엎어치기를 하려는 판이다.





자,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첫째, 이 시에서는 ‘새 영감을 얻어 남도로 떠날 여자’가 하나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마누라’에게는 새 영감을 얻어 남도로 간 친구가 없다. 둘째, 그 ‘마누라’는 ‘정신 차려, 이 여편네야’라는 말이나 ‘미친X’이라는 말은 결코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활자로 버젓이 적혀 있는 내용을, 사람들은 굳게 믿으려 한다. 아버지의 친척들은 특히나 ‘너희 아버지가 어디 거짓말을 할 사람이더냐’라는 식이다. 그들은 좀 배웠다는 우리 아버지를 철썩 같이 믿는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엄마는 아마 이 글을 읽으시고 기어이 자신을 ‘미친x’ 소리나 하는 ‘미친 여자’으로 만들어 놓아야 속이 시원하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 글에 나온 이 이야기처럼 대놓고 이리 말씀하고 싶으셨을 수도?



집에 있는 영감도 내다 버릴 판이라더니 정말 내다 버려지고 싶어서 그러슈? 예?



어쩌면 이렇게 따져 묻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묵묵히 참으시는 것일까? 아니다. 그러면 속병 나고 화병 나신다. 엄마의 복수가 이렇게 사소하게 끝날 수는 없다.




엄마는 아버지 글을 보시다 말고,

-사람이 글을 읽으면 감동이 좀 있어야 할 텐데...

-맨날 나 힘드네, 내가 바보였네, 이런 이야기만 쓰면 진짜로 삶이 더 힘들어지지 않나?

-네 글이 아버지 글보다 더 낫다, 야.

이렇게 아버지를 디스하신다.




사실 아버지의 글 속에서 우리 어머니는 술을 마시는 여자였다가 노래를 부르는 여자였다가 술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여자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언제 술 마시고 노래를 불렀어욧!


엄마는 억울하다. 술도 노래도 큰 관심이 없으신 분이시다. 엄마는 소리 높여 이의를 제기해 보시지만 아버지는 엄마에게 ‘자네, 이건 그냥 글이라네.’라고 답답한 소리만 하신다. (엄마께 솜방망이가 필요한 시점.)


따지고 보면 ‘그게 그냥 글’인 것만도 딱히 아니다. 위에 쓴 글처럼 저리 쓰면 사람들은 진짜인 줄 안다. 특히 친척들에게만 나누어 준 출판물이다. ISBN이 없는 비공식 출판물이라 하더라도 친척들에게 뿌린 이상 그 책은 공식 출판물이 된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욕 안 하는 엄마를 욕하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써 놓으셨다.



물론 안다. 사실 엄마는 평소 온몸으로, 온 생애로 아버지의 글감이 되어 주신다. 주방 보조로 차출되는 영예를 안은 남편의 모습이나, 제법 심부름 스킬이 늘어난 우리 집 아저씨의 모습, 코 고는 일 때문에 도저히 잠이 안 올 때면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우는 아내의 모습, 잠이 안 오면 두런두런 이불을 덮고 누워 자기 전까지 잠꼬대처럼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받는 노부부의 모습, 둘째 딸 시집보내고 이 묘한 감정이 무엇인가 싶을 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안심하는 예비 장인장모의 모습,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헤치며 이 끈적한 미래를 투명한 희망으로 만드는 아내의 모습 등. 아내의 일상, 더 나아가 아내의 삶 자체가 아버지에게는 이미 한 편의 시이고 한 권의 책이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의 아버지는 오늘도 아내의 삶을 사골 우리듯 우려내고 푹 고아 걸쭉한 활자들로 쭉쭉 뽑아 올린다.




작가님, 이번 글은 잘 좀 부탁합니다.



어머니는 안다. 자기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부탁해도 결국에는 기어코 쓸 아버지다. 때로는 없던 얘기도 만들고 조그마한 이야기도 부풀릴지 모른다. 그러므로 엄마는 혜안을 발휘하신다. 이왕 쓸 거면 ‘잘 좀 써 달라’고 너스레를 떠시며 아버지에게 청탁을 넣는다. 청탁의 대가는 꽤 쏠쏠하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뜨끈한 국물 한 대접을 매 끼니마다 잊지 않고 제공하신다.


그 뜨끈한 국물이 아버지의 혈액을 데우고 아버지의 심장을 데운다. 그 심장에서 나오는 뜨거운 기운은 결국 갓 지은 쌀밥 같은 고슬고슬한 글자들을 낳으리라. 그 글자들은 분명히 아버지의 시간에서 알맹이 가득한 알곡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엥, 아부지. 이거 엄마가 보면 또 안 되겠다고 그러겠는데요? 빼요, 빼. 이 부분은 위험합니다요.

가끔은 가차 없이 딸내미가 아버지의 글에 토를 단다. 아예 아버지 면전에 대고 리얼한 지청구를 늘어놓기도 한다.

-에이. 이건 진짜 아니다.


그때 부엌에서 걸어오시다가 아버지가 갓 낳은 종이 한 장을 어머니가 낚아채신다. 한참을 골똘히 읽는 듯하시던 우리 엄마,


-뭐, 그래도 이건 괜찮지 않나 싶다.


엥? 엄마, 이 시가 괜찮다고요? 나는 엄마의 너그러운 반응을 낯설게 쳐다본다. 그렇게 아버지 글에 당해(?) 놓고도요? 내가 되묻지만 오늘, 웬일인지 우리의 엄마는 아버지의 글을 모른 척 용인해 준다. 가끔, 아니 요즘따라 무척이나 자주 어머니는 아버지의 글을 허락하신다. 아버지의 시간이 쓸모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쓸데없는 태클은 자제하시려는 걸까.


당신 이제 '작가 마누라' 다 되었네그려.


'글쟁이 부인'을 해 먹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듯 엄마가 아버지의 말에 '작가 마누라' 같은 웃음을 짓는다. 자, 됐다! 엄마의 웃음이 우리 앞에 떨어졌다. 청신호다! 아버지의 이번 글은 1단계 무사통과다. 이 글에 들인 아버지의 시간, 이제 내다 버리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의 글, 오늘도 궤도에 무사히 진입 중이다

아버지의 시간, 폐기처분은 당분간 면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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