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챘겠지만 나는 단단히 걸려들었다. 조카라는 늪에 허우적대기를 5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조카들, 그것도 쌍둥이 조카에게 내 모든 사랑을 자진하여 헌납하고 있다. 나는 아무도 못 말리는 조카중독자다.
<조카중독자의 중독 현상>
1. 조카와 대화할 때 내가 발화하는 문장의 어미는 죄다 '사랑해요, 호니(혀니)'이다.
(참고로 내가 발화하는 문장의 끄트머리에 '사랑해요 호니, 사랑해요 혀니'라고 말하는 부분은 조카만 보면 나타나는 이 훈이모의 자동어미이다. 귀여운 쌍둥이 조카를 볼 때면 이 자동어미가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발사된다.)
*훈이모=봄책장봄먼지(이름에 '훈'이 들어가서)
2. 거의 백수에 가까운 쥐꼬리 용돈벌이로 살아가면서도 백화점만 가면 6층 유아아동 코너에 꼭 들른다.(물론 요새는 들르기만 하고 구입은 못 한다마는..)
한창 조카 선물에 맛 들였을 때 일이다. 바람막이 점퍼 두 개를 구입하던 중 자신이 고모라는 젊은 직원이 이리 말한다.
"제가 고모인데요, 제 조카의 이모는 월급의 70퍼센트를 조카에게 들이붓는 것 같더라고요. 아우, 그쪽 이모는 정말 못 당하겠더라고요."
훗. 자신이 고모라는 점원의 말을 들으며, 나는 조금쯤 이모들을 대표해서 암, 그렇고 말고 고모랑 이모랑 맞짱 뜨면 당연히 이모 압승이지. 의문의 1승을 저 혼자 좋아라 한다.
3. 휴대폰 속 플레이리스트는 죄다 만화 주제곡이 점령했다.
출처: 음악사이트 bugs
조카님들께서 요청하실 때 바로 틀어 주려고 조카님들 최애 노래들은 항상 재생목록 상단으로!
4. 아기를 낳아 본 적 없건만 휴대폰에 아기 사진만 가득하다.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휴대폰이 늘 내게 하는 말. 그렇게 조카들을 찍어대더니.
5. 조카들과 같이 보던 만화를 이제는 내가 더 재밌게 본다.
"이모는옴파로스의 비밀이 더 재밌는데. 그거 보자."
"아냐. '달나라를 구해 줘' 볼 거야. 토끼 나오는 거!"
조카와 벌써부터 리모컨 경쟁이 필요하다.
자, 그럼 요즘 부쩍 나타나는 이모의 금단현상도 짚어 보자.
<조카중독자의 금단현상>
1. 지나가는 다섯 살만 봐도 쌍둥이 조카를 떠올린다.
나도 다섯 살짜리 친구들 있는데! 나도 나도 다섯 살이 귀엽다는 거 엄청 잘 아는데!! 나도 조카 있따아~!! 여러분, 저도 조카 있어요~!! 이런 마음으로 귀가하다가 '아, 집에 가는 길에 동생네 들러서 우리 집 다섯 살 꼬마들 얼굴 보고 갈까?'라고 자동으로 생각한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다섯 살 정도의 어린이 목격'이 조건 자극이 되어 '보고 싶음(침)'이 조건반응으로 줄줄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