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 잘 듣는 순수 배양균이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고

by 봄책장봄먼지
나는 이스트다

‘불평 없이 말 잘 듣고 통솔하기 쉬운’ 이스트로 살아왔다. 내 안에는 여러 첨가물이 들어 있다. ‘공무원=최고의 안정적 직업’이라는 공식을 첨가물 삼아 20대를 소진했고, 스스로 일군 생산수단이 없어 고만고만한 직장들에 내 노동력을 내다 파느라 30대를 다 보냈다. 사회가 만들고 자본이 이끄는 대로 철저히 시스템 안에서만 부대꼈다.



반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던 빵집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달랐다

그는 이스트가 될 뻔했지만 결국 천연균이 되었다. (혹은 되어 간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저같이 나이 먹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있어야 말이죠.’라고 말하던 서른의 대졸 신입에서, 이제는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는 시골빵집 사장님이 되었다. 그가 ‘순수 배양균’ 같은 삶에서 ‘천연균’의 삶으로 건너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빵집 주인 이타루는 균을 존중했다

균이 어디에 있고 싶은지 언제 나타나고 싶은지 꾸준히 살폈다. 한마디로 자연의 섭리를 따랐다. ‘자연은 항상 날씨, 시간과 함께 순환하면서 평형을 맞춘다.’고 보았다. 사람의 시계를 균의 시계, 곧 자연의 시계에 맞췄다.



둘째, 자기만의 생산수단을 마련했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 하는 곳에 자신의 노동력을 떼어 팔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빵집을 차리려고 제빵 기술을 익혔고, 믹서와 오븐 등 제빵 관련 기계를 구했다. 또 할 수 있는 한 근처 농가에서 재료를 구입해 불안정한 시장에 좌우되지 않으려 애썼다.



셋째, 이타루는 이윤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처럼 ‘이윤’을 ‘잉여가치’의 관점에서 다뤘다. 불필요한 것을 더하느니 ‘뺄셈’의 방식으로 빵집을 운영하기로 했다. 설탕도 빼고 버터도, 우유도 뺐다. 심지어 불필요한 노동시간도 다 뺐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과도하게 가져가면서까지 영업의 이익을 남기고 싶어 하진 않았다. 돈은 돈을 부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섭리에서 벗어난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빵집 경제뿐 아니라 지역 경제도 훼손한다고 보았다.



넷째, 소상인의 연대를 믿었다

부패하는 돈 대신 ‘지역 내 순환’을 택했다. 생산자와 신뢰를 쌓으며 원재료를 가까운 곳에서 정당하게 들여왔다. 그리고 이를 고객에게도 합당한 가격으로 판매하고자 했다.



다섯째, 장인정신으로 빵집을 경영했다

천연 누룩균을 채취하려고 정체불명의 균을 직접 시식하는 모험 혹은 위험을 불사했다. 장소가 필요하면 장소를 옮겼고 물이 필요하면 물을 바꿨다. 이타루는 장인의 마음으로 오로지 ‘제대로 된 빵’을 생각했다.




물론 모두가 시골빵집 주인처럼 살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도시의 경제에 맞춰 배양되고 있고, 때때로 영양제를 맞거나 식품첨가물을 먹으며 꾸역꾸역 자본주의의 흐름을 따른다.


다만 우리는 이때 ‘선택’을 할 수는 있다. 우리 삶에서 정말로 ‘더하기가 필요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 썩기 위해, 또 돌고 돌며 잘 순환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는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자본론을 굽는 일. 미래에는 선택이 아닌 필수의 삶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순수 배양균’으로 살아가더라도 언젠가는 비료 없이, 생명력 강한 날것 그대로의 ‘천연균’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만의 자본론을 잘 구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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