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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16. 2024

길게 느껴지셨나요

슬픔의 길이_140416

이틀 전 성당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이 지면에 빌려와 이야기를 적어 본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세월호가 있습니다.

위태로운 배를 타고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는 청소년, 청년 들."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저 누군가의 아픔을 기억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때때로 나는 누군가의 아픔이 보기 힘들어서 채널을 돌려 버렸다.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누군가의 지난 아픔이 다 뭐라고.


"미사 시간에 너무 세월호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요. 세월호에 예비 신학생이었던 박○○도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매해 기억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내년에도 그럴 겁니다."


서로 같이 신부가 되자고 약속했는데 한 사람만 남아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로 데려가셨다.


신부님은 내년에도 기억하겠다고 하셨다.

'그래, 나도 한 번은 해 보자. 딱 하루도 못 하나.'


나는 운 좋게도 딱 하루만 기억해도 된다.

어떤 분들은 365일 내내 기억이 난다.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일상이 그 기억이다.

그런데 나는 그 하루도 어려웠다.


몇 년간 나의 4월 16일 다이어리를 돌아봤다. 내 일상을 사느라 바빴고 나의 과거를 기억하는 일조차 버거웠다. 어쩌면 내 일상 자체는 투정 덩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고가 났을 때 생각했습니다. 대체 하느님은 어디 계셨냐고."

강론 말씀에서는 신부님의 고백이 이어졌다. 고백 뒤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던 그분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발만 동동 구르며 가족의 마지막 연락을 받았던 그분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오늘부터 그냥 일 년에 딱 한 번이라도 이 생각을 해 보려 한다. 내가 무얼 어떻게 할 수는 없더라도... (무책임하게 또 잊고 살겠지만) 딱 4월 16일만 이렇게 해 보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무서웠을까, 무서웠을까.'


그 아픔을 아주 조금이라도 기억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부디'라는 말을 그 앞에 붙이며 부디.. 부디..

부디 편안히 쉬기를.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영상을 하나 보여 주셨다. (나는 이 영상의 존재조차 모를 정도로 무심했다.)


https://youtu.be/got5xW4Sudc?si=7PvUOT1FZNzP942F


미사를 드리다가 오열을 하고 말았다.(물론 내가 '순간적인 F형 과몰입러'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영상이 점점 길어지자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게 길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 (내가 이 생각을 했다는 건 나도 모르게 이 영상을 긴 영상으로 느꼈다는 소리일지 모른다. 똑같은 이름은 있었어도 똑같은 삶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영상이 끝나자마자 폐부를 찌르는 신부님의 질문.


"영상이 길다고 느껴지셨나요?"

"여기에 내 이름이 있었다면 길게 느껴지지 않으셨을 겁니다."



슬픔의 길이.

다른 사람이 함부로 잘라낼 수 없는 길이.


(그러니, 년에 번은 영상을 보아도 좋겠다. 조금은 더 그 이름들을 기억해도 좋겠다. 조금이나마 남은 분들의 길이가 줄어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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