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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15. 2024

비 오는 월요일엔... 쿵푸팬더

동네 영화관에서

비가 왔고 평일이었고 게다가 월요일이었다.


"쿵푸팬더4라는 영화가 주말에 파묘를 제쳤대."

엄마가 먼저 이 뉴스를 내게 알려 주셨다. 나는 만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엄마가 그 기사에 먼저 반응하실 줄은 몰랐다.

"보고 싶으셔?"

나는 운을 띄웠다.

"티 멤버십으로 1+1 영화 티켓 끊을 수는 있어."

다시 한번 운을 띄웠다.

"파묘 제칠 정도면... "

"근데, 엄마. 만화 영화야."

"판다 나와?"

"동물들이 마구 나오겠지?"


이쯤에서 내가 엄마를 말렸어야 했을까. 엄마는 갑자기 방 안에 혼자 계셨던 아버지에게로 가서 아버지를 꼬이기(?) 시작하셨다.

"자기도 보러 가. 자기 동물 좋아하잖아."

동물 다큐멘터리 장인급이라 쌍둥이 손주들까지 동물 이야기만 나오면 할아버지를 찾는다. bbc 얼스와 bbc 와일드 채널까지 두루 섭렵하신 우리 아부지.

"그,, 근데 엄마, 그 동물이 그 동물이 아닌데.... (만,, 만화라니까.)"


내 볼륨은 사실 크게 높지 않았다. 쿵푸팬더1을 워낙 재밌게 봤었고 그 정도의 유머와 이야기 퀄리티라면 부모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파묘'도 '댓글부대'도 '웡카'도 안 보신 우리 부모님에게 결국 만화영화를 권해 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없네? 월요일이라 그런가?"

도착하고 보니 사람이 너무 없다. 나란 사람은 성장 서사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만화 영화를 애정한다.

"영화에 그럼 동물만 나와? 사람은 안 나오고?"

"읭? 그.. 그렇지. 동물만 나와. 근데 아까 만화라고 내가 얘기했는데.."

"그럼 완전 만화 영화야?"

'어,엄마. 그걸 지금 물으시면... 아까 뭐 들으신...'


하지만 모든 어른이 만화 영화를 사랑할 수는 없는 법. 영화관에 도착하여 즐겁게 팝콘을 때만 하더라도 나름 설렜던 우리 가족은... 점차 영화의 실체를 알게 되고... 게다가...


"사람이 정말 너무 없어. 우리뿐인가 봐."

엄마의 말에 뜨끔하다. 이상하다. 맨 앞자리에 5명쯤은 있던데. 109석 가운데 우리가 예약하고 나니까 99석쯤 남았었는데... 취소했나.. 주말에 그렇게 흥행했다고 했는데...


"이러다 우리끼리 보는 거 아니야?"

다시 한번 뜨끔하다. 오는 날이다. 평일이다. 그리고 월요일이다. 그리고... 만화 영화다. 아이들도 평일 월요일에는 학교나 어린이집 다니느라 바쁠 것이다. 바쁘지 않은 반백수 혹은 너무 프리한 프리랜서 셋이서 이러다 이 극장을 통으로 전세 내는 것은 아닐까.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의자(왼쪽), 팝콘 주문용 무인 단말기가 없는 영화관(오른쪽)


우리는 결국 전세를 냈다.

 


나 좋자고 부모님께 만화 영화를 강권한 꼴이 되려나. 부디 영화라도 재미있기를.. 두 손을 모으며 조용히 영화를 기다린다. 영화의 시작은 어찌 되었든 늘 설렌다. 이따금 키득거리며 재밌게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쌔근쌔근한 소리...


"아버지 자?"

나는 엄마에게 작은 소리로 묻는다. 물론 여기는 지금, 작은 소리로 떠들든 큰 소리로 떠들든 아무도 안 듣는다. 영화관은 한 시간 반 동안만큼은 우리 차지다.

"응. 아버지 조네."

그러다 곧 주무실 듯하다. (영화를 비교하는 일은 무례한 일일 수도 있지만) 만화 영화 '코코'를 재밌게 보셨던 우리 아버지 취향에 아무래도 '쿵푸팬더'는 무리였던 듯싶다. (나는 세밀한 액션과 화려한 영상이 즐거웠는데 말이다.)


"엄마, 쟤는 똑같은 판다가 아니고 아까는 아들 판다, 지금은 아빠 판다야."

쿵푸팬더 시리즈를 안 보셔서 비슷하게 생긴 판다만 보고 헷갈리실까 봐 등장인물을 설명해 드리며 몇 차례 엄마에게 말을 걸어 보려는데... 어느 순간 느껴지는 고요한 기운... 바로 내 옆에서도...


엄마마저 아버지에 이어 쌔근쌔근.



여차저차해서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나고, 엔딩 장면에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베이비 원몰타임이 남자 가수 버전으로 울려 퍼지며 영화관은 이내 불을 켠다. 출입문은 우리 셋을 위해서만 열린다. 왠지 머쓱하다.

"숙면하셨쎄요?"

나오는 길에 물으니 아버지는 영화가 좋다, 나쁘다 말은 없으시고 그저 숙면하셨냐는 나의 물음에 고개만 넌지시 끄덕이신다.



그래, 그거면 됐다. 아버지 표는 현장 경로로 7,000원에 구매했고 나랑 엄마는 1+1로 9000원에 예매. 한 사람당 5,000원에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쿵푸팬더'라는 백색소음(?)을 들으며 무려 두 사람이 숙면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은 좀 괜찮더라."

다행이다. 그래도 처음과 끝은 보셨으니까. 그거면 영화 다 본 거지, 뭐.



나 혼자 재밌던, 

비 오는 어느 월요일 오후의 '쿵푸팬더 여행'이었다.

(혹은 쿵푸팬더 자장가였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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