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기계가 심심풀이로 내어놓은 답변. 기계는 내 목소리를 대강 분석한 후 나의 성격까지 매몰차게 판단해 주었다. (정확히는 어떤 근거였는지 모르겠다.)
'뭐 이래?'
당시에는 믿지 않았지만 10년, 20년이 흐른 후 가끔 돌아보면 저 기계에 신기라도 있었나, 싶다. 'F형 과몰입러'인 나는 내 감정의 날씨가 내 안에서 촉발되지 못하고 외부의 영향을 쉬이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 미디어에조차 재빨리 반응한다는 것.
<파리올림픽 출전 불발. 10회 연속 진출 실패>
<한국 구기 종목 왜 이러나>
기사의 제목을 보며 씁쓸해지던 어느 날 아침. 나의 '감정 날씨'는 금세 가라앉고 말았다. 카타르에서 열린 경기라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에 열린 23세 이하 대표팀의 8강전.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를 맞아 극적인 승부를 펼쳤으나 끝내 4강 진출 좌절. (이 아시안컵에서 3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자동 출전이고 4위를 하면 다른 대륙-아프리카-의 '기니' 팀과 겨뤄야 한단다. 그런데 우리는 4강 진출마저 실패한 것. 40년 만의 본선 진출 실패이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어찌어찌 중국과 일본은 이겼지만 축구를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좀... 경기력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적인 느낌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계속해서 거머쥐었기에 그다음 스텝을 기대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들은 소식은...
그렇구나, 하고 말면 될 것인데 눈물을 흘리는 이영준 선수를 비롯하여 여러 선수들의 뒷모습이.. 마음에 박힌다. 어린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을꼬.. 전술, 전략의 실패였을까, 해외파 모두를 차출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패인을 분석하는 유튜브도 괜히 챙겨 보고 앞으로 축구협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까, 괜히 내 일도 아닌데 심히 몰입하여 걱정을 한다. 지난 금요일..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더니 기운이 빠졌다.
그게 뭐라고.
그러나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수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침나절만 우울하고 말면 그뿐이지만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종사하지 않더라도 축구를 목숨처럼 아끼는 팬들도 상당하다. 그들의 마음 날씨는 아마 나보다 훨씬 더 깊은 기복이 있을 것이다.
나의 '과몰입' 날씨는 이렇게 스포츠에 무디지 못한다. 곧 파리올림픽이 열린다. 48년 만에 200명 이하로 참가한다고 한다. 구기 종목의 인원이 많이 줄었고, 금메달 목표도 5개. (최소 인원으로 향하는 파리올림픽…금메달 기대 종목은? - 이투데이 (etoday.co.kr)) 아시안게임이 아니니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세계 무대는 만만치 않겠지.
하지만 나는 나의 '감정 날씨'가 어떤 날씨가 되든 그날들을 맞이할 준비, 혹은 그들을 응원할 마음의 준비만큼은 다 되었다. 신나게 소리 지를 것이고 아쉽게 탄성을 내지를 것이다. 시상대 위에 오른 선수와 함께 웃을 생각이고, 시상대에 오르진 않았어도 자신만의 무대에 최선을 다할 선수들의 경기도, 비록 방구석에서지만, 열심히 응원할 것이다.
스포츠 경기 기사 밑에는 '자기 직업이라 그냥 열심히 한 것일 뿐이고 금메달 따면 선수 본인 혼자 좋은 건데 뭐 하러 저렇게까지 몰입해서 응원을 하나'라는 식의 댓글이 가끔 달린다. 나도 모르겠다. 내 일도 아니고 그냥 그 선수 혼자 잘되는 일이라는데, 그냥...
근데 남 잘되는 거, 그것만으로도 꽤 좋은 거 아닌가?
최선을 다하는 그 열정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누군가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공식적으로 응원하는 것만으로 상당히 감정이 일렁이는 나로서는 세계적인 스포츠가 내 일상의 활력소를 넘어 내 삶의 든든한 탄력이 되어 준다. 이기고 환호하는 누군가의 표정을 보면 저절로 나도 환해진다. 지고 나서 눈물을 훔치는 누군가의 어깨를 보면 화면 밖에서라도 그들을 토닥여 주고 싶어진다.
스포츠는 나에게 '날씨'의 척도이다.
그래서 나는 100년 만에 열린다는 파리올림픽을, 내 집 안방에서 손꼽아 기다린다. 항상 날씨가 푸르를 수는 없다. 그러나 선수들의 마음 날씨, 건강 날씨는 언제나 맑음이었으면 좋겠다. 흐린 날도 있겠지만 비 갠 아침처럼 화창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