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나는 나쁜 사람이었던 거다.
청소년들을 사랑해서 청소년 소설을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공공연히 외치며 '청소년 소설 입덕 중' 매거진까지 발행했던 지난날. 하지만 오래전 알던 청소년이 청년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자립을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이젠 내가 도울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 같은데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서포트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않아 취업에도 제한이 있는 녀석들이다. 한때나마 그들의 선생이었던 나는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심란하고 괴롭고 고단하기까지 하다.
"한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사회복지계를 떠난 지 오래라 어떤 방식으로 이 아이에게 어떻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할지... 아니 내가 마련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할 텐데..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안다. 주변에 기댈 어른이 없다. 부모라는 울타리 없이 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될지 나는 물론 상상조차 못 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엔 '마지막'이라는 말이 덧붙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지만 '마지막'은 매번 듣는 말이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사실 지난달에만 네 번의 현금과 기프티콘을 보냈었고, 이 금액의 범위는 내 허리가 휘청할 정도였다. 겨우내 제대로 된 일거리가 없었던 터라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이 친구들의 아프다는 소리에 차마 눈감지는 못해서 몇 차례 계속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 문제는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나의 소소한 지원으로는 어떻게 해 볼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
이 밑 빠진 독은 대체 언제쯤에야 화수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기댈 사람이 없으면 나한테 기대하며 손을 빌렸을까. 알면서도 전화가 오거나 카톡이 오면 마음부터 덜컥, 깜짝 놀란다. 또?? 아니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또? 이런 마음이 든다. 게다가 너무 지치고 힘든 날에 전화가 오면 슬그머니 그 전화를 부재중 전화로 남겨 버리기도 한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다른 사람의 석 자를 받아 주자니, 정말 마음이 부대낀다. 무언가 세상의 시험에 드는 기분이다.
그래, 난 시험에 들었다. 그래서 고백성사가 필요한 하루하루이다.
"저기, 신부님. 제가 요즘 나쁜 사람이 된 것 같거든요. 아니, 나쁜 사람인 걸 확인하는 하루하루예요. 청소년이었던 그 친구들의 연락이 이젠 부담스럽고 괴로워요. 어디 로또라도 된다면 마음 편히 돕겠는데요. 저기 신부님. 그, 그쪽에게, 그러니까 그 하늘 쪽에 어떻게 돈..벼락이라도 보내 주실 수는.. 없는지.. 아니, 아니요 아니요, '벼락' 말고요. '돈'이 붙은 벼락이요. 그 벼락 한 줄기라도.. 네? 벼락 맞을 소리 하지 말라고요?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느님이 함께하신다고요? 허헛... 그럼 지금 전 지금 아무와도 함께하고 있지 않는 거겠네요? 제 안에 요새 작은 악마가 자라고 있는 기분이거든요. 이것도 기분 탓일까요?"
어떤 기분이 들 때는 '기분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은데
이렇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일 때는..
아무래도..
정말 나쁜 사람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게 맞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