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책임자였던 차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암요, 당연하죠, 라고 생각했다. 나는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일을 엮어 나가야 했다. 먼저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은 나와 같은 직급이긴 했지만, 관련 업무로는 7개월, 아니 이 직장에서의 경력은 5~6년이 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선배처럼 대하며 그와 부드럽게 잘 섞여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잘 따라 달라’는 차장님의 당부는 동료와 내가 무난히 잘 지내길 바라는 당부였을 것이다.
‘그래 원래 부족한 사람이 더 맞추고 그래야 관계가 더 잘 굴러가는 법이지.’
처음에는 이런 마음이 잘 들어맞는 듯했다. 동료에게서 ‘잘하실 거예요.’와 같은 격려나 ‘고마워요.’와 같은 감사 인사를 더러 받기도 했다. 나이가 더 많은 신입을 데리고 일하는 ‘고참’처럼 그녀는 나의 직장 생활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었다. 관련 일에 물리가 트인 데다 발까지 넓었던 동료는 나를 데리고 이 일 저 일을 시도하기도 했고, 그녀 덕분에 이곳에서 이 사람, 저곳에서 저 사람과 약간의 친분을 맺을 수도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나는 가족들에게 나의 ‘다행스러움’을 전했다. 나의 동료인 그녀가 얼마나 내게 친절한지 말하기가 입 아플 정도라며, 문득문득 그녀를 칭찬했다. 그녀의 친절은 칭찬받을 만했다. 그 사례를 들자면 또 한 번 입이 아플 정도인데, 한번은 워크숍에 가서 내가 배가 아픈 적이 있었다. 그런 나를 저 혼자 은근히 챙겨 주며 나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한 적도 있었고, 또 그녀가 휴가를 맞아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잘도 알고서 캐릭터가 새겨진 손수건과 볼펜, 파일 홀더까지 나에게 선물해 주곤 하였다. 그뿐 아니라 내가 어설픈 첫 책을 낸 후에는 ‘제 꿈에 선생님이 두 번째 책을 냈더라고요.’라며 나의 창작 활동을 더 독려해 주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었다. 자기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 내 책을 신청해 주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는 굳이 나까지 안 챙겨도 되는 상황에서 겸사겸사 내 이름을 새긴 볼펜까지 선물해 주기도 하였다.
그랬던 그녀가 서서히 굳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의 기지개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모든 감정의 신호를, 그저 아주 좋은 방향으로만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 참는 데 한계가 있는 거였다. 워낙 잘 참는 나로서는 타인의 그 한계치를 추측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좋은 사람을 동료로 두었다고, 강단이 있고 할 말을 잘하며, 주변 사람을 극진히 챙기는 사람이라고, 이 직장에서 뼈마디가 굵은 베테랑이며, 내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동료라고 나는 어딜 가나 그녀를 추어올렸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세뇌했다. (‘세뇌’가 필요할 때가 온 것임을 모르고서 말이다.)
직장 내 관계를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일을 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나의 부족함이 누군가에게 조금씩 누가 될 때마다 ‘그 사람은 능력자이자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부담을 주었다.
그즈음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틀 안에서 나는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그녀 뒤에 찰싹 매달린 채 ‘대롱대롱’ 내 직장 생활을 연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