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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n 11. 2024

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 나의 하루들

요즘 너 왜 그러니

-왜?

-왜는 왜야.


그렇다. '왜는 왜야'였다. 아니, '왜'라는 질문은 아무 때나 벌컥 내지를 말은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새벽같이 일어나 된장국까지 끓여 놓으신 어머니께 아침 인사로 건넬 말은 아니었다. 

"왜?"


쟁반에 밥상을 간단히 차려 책상에서 우걱우걱 먹으며 오늘 업무를 되새기고 있었다. 줌을 열어 강의를 연습하고 있는데 엄마가 어느새 방문 앞으로 쓱 다가와 얼굴로 인사를 건네신다. 나도 고개를 돌려 안녕하슈, 라고 말하고 곧바로 내 일로 다시 복귀하려는데 엄마가 인사 후에도 나를 계속 쳐다보신다. 얼른 당신의 볼일을 보러 가셨으면 하는데 나를 보신다. 나는 지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신경이 곤두섰고 오늘은 할 일도 많아 괜히 뾰로통한 상태이며, 금요일의 큰 업무를 앞두고 스트레스로 억눌린 상황이라 누구에게든, 특히 이런 아침에는 다정할 형편이 아니다. 평소의 곱고 순하던(?) 딸내미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만큼 내 심정이 녹록한 상태는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


"왜?"


엄마는 날카로운 '왜'에도 불구하고 내 방에 건너 들어와 방 베란다까지 넘어가신다. 그곳에서 창문 밖으로 감나무를 쳐다보며 "어머, 감이 다 떨어졌어." 안타까운 탄성을 슬쩍 내지르신다. 

'그랬더라고.' 

'올해도 감이 잘 안 열리려나?'

'안 떨어져야 하는데.'


등의 말을 맞장구로 보내 드려도 좋았으련만 아침 여섯 시도 안 된 시간이라 나의 사회적 자아는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다. 감이 떨어지든 말든, 이라는 사춘기 같은 마음이 일어나기까지 하는 아침이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게 귀찮기도 하고 지금 나는 한창 내 일에 집중하는 중이어서 하던 일에 흔들리고 싶지가 않다. 멀리까지 출근을 해야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뭉개지기 시작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나하고만 말을 하고 싶은 아침이다. 나, 이기적인 걸까.



내 사랑 조카들을 쳐다보다가 

"이모, 왜?"

심드렁하게 대꾸할 때가 있다. 

"왜긴. 그냥."

그냥 넘 예뻐서, 그저 넘 좋아서 쳐다볼 때가 있다. 아니 많다.


물론 우리 엄니가 나 태어나고 몇십 년이나 지난 지금, 이제 와서 다 큰 내가 너무 예쁠 리도, 다 늙어가는 딸내미가 너무 좋아서 쳐다볼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나를 뭉근히, 은근히 쳐다보는 그 시선에는 적어도 내가 조카들을 쳐다볼 때의 다정함이 몇 스푼쯤은 끼어들어 있지 않았을까. 당신이 끓여 놓은 된장국을 맛있게 먹는 모습, 아침 일찍 돈 벌러 가겠다고 꾸역구역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 어느새 저리 컸구나, 싶은 모습.


그냥 다 기특해 보이고 안쓰러워 보여서 눈인사를 오래고 건네신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왜??"

(이 안에서는 '왜 계속 쳐다보는데?! 이런 마음이 숨어 있었을지도...)


가끔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최대한 자주자주, 많이 많이,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그것이 다짐만으로는 버거울 때가 있다. 뾰족한 날들이 늘어가면 나의 가시에 누군가는 찔릴 테고 그 누군가 중에 가장 많이 찔릴 사람은 바로 나일 텐데, 때로는 알면서도 내 가시를 내가 파먹는다. 더 깊이 쑤시고서야 멈춘다. '가시중독'이 된 못된 나를 일기장에서 뒤늦게 만나기라도 하면 그제야 '어이쿠, 또 이런 내가 튀어나왔네.' 싶어 뒤통수가 심히 겸연쩍어진다.



혹시 다음 날 아침,

한 번 더 엄마가 나를 다정히 쳐다보신다면


"왜" 대신에,

"왜, 내가 그렇게 예뽀?"


이렇게 넉살 좋은 미소를 장착해 봐야겠다. 

(근데 그게 잘 될지는 그날 아침이 되어 봐야 알 것 같다.)




사진: Simone Secci@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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