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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n 12. 2024

축하 공연은 처음이라

80+

왜 하필 내가 너무 바쁘고 매우 긴장된 터널 속을 지나고 있을 때...


생신이실까, 싶었다. 


조금만 날짜가 뒤쪽이었다면 정말 즐겁게, 마음 편하게  축하해 드렸을 텐데. 세상이 내 위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못난 심리를 애써 가둔 채 생일잔치를 치러야 했다. 


가족들이 생신 전 휴일에 옹기종기 모였다. 그런데 동생네(쌍둥이 조카네) 식구들이 각자 무언가 한 짐씩 들고 우리 집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뭐가 저리 많아?' 

제부 씨는 우리 집 수전을 새로 교체해 주려고 장비를 가져왔고 쌍둥이 조카들도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왔다. 대체 저것이 무언고?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와 덕담과 웃음이 오간 후 선물 증정이 있었다.

그런데 조카들의 선물은 다름 아닌..



그간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무려 바이올린 연주곡을 준비했다. 중간중간 삐삑거리는 '요상한'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어떤 노래인지 어떤 음계인지 대략 짐작이 갈 정도의 수준이었고 꽤 훌륭한 연주였다. '어머니의 마음(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이 연주될 땐 다들 갑자기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뒤이어 피리를, 정확히는 리코더를 꺼내더니 

요를레이요를레이 느낌으로 현란하게 리코더를 연주하는 우리 쌍둥이들...


 

"내 평생 생일날에 누가 이렇게 축하 공연 해 주는 건 처음이네."


아부지는 생일 선물로 받은 둘째 딸내미의 용돈 반절을 손자들에게 턱 하니, 티켓값 명목으로 내주신다. 

"잘 들었다~ 평생 처음이야."

"근데 할아버지, 이거 도로 주시면 할아버지는 생일 선물이 없어지잖아요."

할아버지 선물까지 되레 걱정하는 조카.



왜 하필 6월, 내가 한창 바쁘고 마음이 뻑뻑할 때 우리 아부지는 태어나신 걸까, 라고 말도 안 되는 볼멘소리를 해 댈 때. 우리 쌍둥이 조카는 집에서 리코더를 연습하고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어떤 곡이 좋을지 심사숙고하고 일곱 번 여덟 번 넘게 같은 곡을 반복했다. 할아버지 평생의 첫 축하 공연을 위해. 


그러는 동안 이 이모는, 이 딸내미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아, 한 게 있긴 있다.

볼멘소리와 '심부름은 귀찮아'라는 퉁퉁거림.

흠.. 한 게 너무 많아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오늘은,



우리 아부지의 고마운 생신 날이다. 

그리고...


"아부지, 생신 축하드려요!!! 사...ㅅr.. ㅅr 랑 ㅎr ㅂ..ㄴi ㄷr"




사진: Patti Black@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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