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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11. 2024

잘생기고 착한 사람 만나게 해 주세요

얘야, 너의 기도는 이루어졌다(?)

"이모가 결혼한다면 어떨 거 같아? 이모보고 결혼하라고 할까?"

동생이 조카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대답이 없다. 한참 말을 고르다 입을 연다.


"결혼하라고 할까, 말까?"

갑자기 이모에게 선보라는 소식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동생이 조카들을, 곧 자기 자식들을 시험한다.


"난...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뭐? 왜?"


그럼 이모가 우리한테 신경 못 쓰잖아..


두 녀석 다 자기 엄마의 질문에 당황하며 '안 된다'를 소심히 외친다. 그러나 녀석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당분간, 당분간이라 함은... 100년(?) 정도라 두자. 그 '당분간' 동안 이모가 결혼할 같은 것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결혼'에 관해서만큼은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우리 쌍둥이 조카... 그런데!


녀석들이 변했다...



결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소신 있게 밝힌 지 어언 10개월... 그간 자기 엄마에게 얼마나 세뇌(?)를 많이 당한 건지... 조카들의 반응이 점점 달라진다.


-아니, 이모가 너희 신경 써 주다가 좋은 사람 못 만나도 돼?

-아니, 너희들이 크면 이모한테 신경도 못 써줄 텐데?

-아니, 이모한테 좋은 사람 생기면 좋잖아. 안 그래?


그.. 그런..가, 싶어진 우리 조카 녀석들. 지난한 설득 작업이 있었던 걸까. 어느 날 조카들의 소신이 구부러지는 소식이 저 멀리서 들려온다.


"(동생 왈) 이모님, 이모님 둘째 조카가 첫영성체 때 이렇게 소원 빌겠대요."


쌍둥 어미: 처음 영성체 모시고 하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하니까, 첫영성체 모시고 자기 자리에 와서 드릴 기도를 미리 잘 생각해 놔야 해. 뭐 사 주세요, 이런 거 말고.
쌍둥 조카2: 가족 건강하게 해 주시고, 저희 이모 잘생기고 좋은 남편 만나게 해 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세요.


헉, 조카야..... 너마저?


쌍둥 어미인 내 동생은 강조한다. 여기서 '잘생기고'가 중요해. 어쩌지, 난 잘생긴 사람은커녕 착한 사람 만날 생각 같은 것도 없는데... 아니 심지어 사람 만날 계획조차 없는데? 조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은 이모다. 조카들을 위해서라면 나의 온 영혼을 내어놓아야 한대도, 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한대도 나는 기꺼이 그럴 것이다. (세상에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해 준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러나, 이것만은 안 되겄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라고 전해 주세요, 나는 동생에게 문자를 한다. 조카들의 마음은 마음으로만 받기로 한다. 그런데 어째 뒷맛이 쓰다. 조카들의 소원을 못 들어주다니! 나는 그런 이모가 되긴 싫은데!!?



잘생기고 착한 사람... 흠....

분명 그런 이들을 내 주변에도 아직... 있긴 있을 것이다. 종종 보고 들은 것 같긴 한데... 어디 있더라... 그래 어디인가 있어. 내가 봤어... 분명 있긴 있어. 아주 가까이... 십 년 가까이 내 주변을 아주 오래 맴돌고 있어.... 느낄 수 있어.... 그들은 바로.....


-저, 잘생기고 착한 사람 만났어요.
-응? 뭔 소리야?요즘 누구 만나?
-이미 만났더라고요.
-응??
-세상 잘생기고 세상 착한 친구들, 이미 있잖아요.
-대체 누구?
-우리 조카들이요.


우리 조카들이 있잖아요!! 잘생기고 착한!!


이런 대화를 동생에게 전달해야겠다. 아마도 동생은 어이없어하겠지? 그리고 조카 녀석들까지 이모는 못 말린다고 혀를 찰 테지? (그럼 차선책으로 나 자신이라도 '잘생기고 착한 사람'이 되어 이 삶을 잘 살아 내는 수밖에.)



아무튼 꿈은 이루어진다 했다. 지금부터 나는 잘생겨질  미래 향해 더욱더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 누군가의 기도 속에서 나의 미래가 염려의 빛을 띠지 않으려면 부단히 나 자신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래, 앞으로 잘생기고 착한 사람이 될 테야!

(나는 나는 자라서 잘생기고 착한 사람이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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